[기자수첩] 공모주 폭탄 돌리기에 기관 수요예측 기능 완전히 사라졌다

배동주 기자 2024. 1. 2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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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가 상단을 10%밖에 안 올렸네요. 우린 이런 걸 착한 공모가라 부르기로 했어요."

공모주 투자를 주로 하는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지난 15일 코스닥시장 상장에 나선 우진엔텍의 확정 공모가 공시를 보고 이같이 말했다.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는 기업은 상장 주관사와 상의해 희망 공모가 범위를 제시하고,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을 진행한 뒤 이를 반영해 최종 공모가를 확정하는 절차를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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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주 기자

“공모가 상단을 10%밖에 안 올렸네요. 우린 이런 걸 착한 공모가라 부르기로 했어요.”

공모주 투자를 주로 하는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지난 15일 코스닥시장 상장에 나선 우진엔텍의 확정 공모가 공시를 보고 이같이 말했다. 상장 주관사와 손잡고 희망 공모가를, 그것도 밴드로 제시해 놓고 또 약 10%를 올리겠다는 것인데도, ‘착한’이란 형용에 자동으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진엔텍의 공모가가 착한 이유는 딱 하나다.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 결과를 그래도 조금이나마 덜 반영했다는 것. 이날 우진엔텍은 공모가를 5300원으로 확정했다.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의 98.44%가 ‘5300원 이상도 좋다’고 써냈지만, 밴드 상단 4900원보다 8.2% 올리는 것에서 멈춰줬다.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는 기업은 상장 주관사와 상의해 희망 공모가 범위를 제시하고,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을 진행한 뒤 이를 반영해 최종 공모가를 확정하는 절차를 밟는다. 높은 가격에 사고자 하는 기관투자자가 많다면 상단에서, 수요예측이 저조할 경우 하단에서 공모가가 결정되는 식이다.

그런데 최근의 수요예측은 기관투자자의 공모주 청약 형태로 변해버렸다. 상장 첫날 가격변동폭 제도 변경으로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주가가 4배로 오르는 이른바 ‘따따블’이 가능해지면서 투자자들이 IPO 시장에 대거 몰리자, 기관투자자마저 더 많은 물량 배정을 위해 높은 가격을 써내고 있다.

여기에는 작년 6월 시행된 허수성 청약 방지 제도 영향도 있다. 주금납부능력을 확인해 과당경쟁과 허수 청약을 방지하겠다는 목적이었지만, 돈 없는 기관이 더 돈을 쓰는 구조가 됐다. 주금납입능력이 큰 기관이 신청하는 물량에 대응하기 위해 작은 기관은 높은 가격 제시로 대응하고 있어서다.

작은 기관들이 가격을 높여 많은 물량을 가져가는 것을 막기 위해 큰 기관도 이제는 더 높은 가격을 써내고 있다. 또 자금이 묶이면 다음 수요예측에 주금납부능력이 줄어들 수 있어 의무보유를 확약하지도 않는다. 기업가치와 시장 수요를 반영한 가격 발견이란 수요예측의 기능이 사라졌다.

올해 들어 수요예측을 진행, 공모가를 확정한 상장 추진 기업 5곳 모두가 공모가를 밴드보다 높여 확정했다. 작년 1분기만 해도 상단을 초과해 공모가를 책정한 기업이 15개 중 3개(20%)에 불과했다. 2분기도 35% 수준이었으나, 3분기 60%로 늘기 시작해 4분기 70%를 기록했다. 올해는 현재까지 100%다.

공모가가 부풀려진 채 시장에 오른 주식을 받아내는 것은 결국 개인투자자들이다. 기관은 가치를 부풀려 배정받아 낸 물량을 대부분 상장 첫날 팔아치운다. 개인들은 첫날 잘만하면 따따블까지도 간다는 기대를 안고 기관이 돌리는 폭탄을 받아 내고 있다. 투자가 아닌 투기가 일어나고 있다.

시장 일각에선 신규 상장일 가격제한폭(공모가의 60~400%)을 없애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금융당국이 IPO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내놓은 현재의 가격제한폭은 위로는 400%까지도 오르지만, 아래로는 40% 내리는 게 끝이다. 투자자들이 400%만을 바라보고 IPO 시장에 뛰어들고 있어 이를 제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IPO 시장은 한없이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만이 과열을 막을 수 있는 시장으로 변했다. 최근에는 확정 공모가가 기업과 상장 주관사가 제시한 희망 공모가 상단보다도 27.3% 높아진 경우까지 등장했다. 적정 기업가치로 제시한 수준을 30% 가까이 넘어섰다. 과열돼도 너무 과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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