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해 밝히는 한국 과학]⑥ 불 타지 않는 이차전지 상용화 이끈다

창원=이병철 기자 2024. 1. 2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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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철 전기연 책임연구원 인터뷰
위험한 전기차 화재, 유일한 대안은 전고체전지
해외 기업 앞서나가고 국내 기업은 따라가는 형국
전고체전지 상용화의 핵심, 생산 공정서 연구 성과
“국내 기업에서 활용해 산업 발전 주춧돌 되길”

환경오염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 세계가 전기차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휘발유, 경유 대신 콘센트에서 전기를 충전하고 운행 중 대기오염물질도 배출하지 않아 내연기관차를 머지않아 대체할 것이라고 기대를 모으고 있는 차종이다. 유럽연합(EU)도 2035년까지 내연기관차를 시장에서 퇴출한다는 계획이다. 미국도 2027년 이후 생산된 차량은 대기오염물질 제한을 두고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막대한 과징금을 부여할 예정이다. 내연기관차로는 달성할 수 없는 수준이라 시장에서는 사실상 전기차 전환을 강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전기차에 사용하는 리튬이온전지가 화재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전기차 차량 화재 사건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리튬이온배터리에는 액체 형태의 유기전해질이 사용되는데, 유기전해질에는 쉽게 불이 붙는다. 화재로 온도가 오르면서 불이 더 강해지는 ‘열폭주’ 현상도 일어나 한 번 전기차에 붙은 불은 진화가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실제로 2022년 남해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낸 전기차의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7시간이 걸린 사례도 있다.

전고체전지는 리튬이온배터리의 화재 위험성을 해결할 차세대 전지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화재에 취약한 액체 유기전해질 대신 고체 형태의 전해질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충전 용량이 작고 생산 단가도 비싸다. 미국의 전고체전지 기업 ‘솔리드 파워’가 올해부터 차량용 전지의 양산을 시작할 계획으로 가장 앞서 있고, 국내 기업들도 전고체전지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윤철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전고체전지 분야 국내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전고체전지의 상용화에 필요한 공정 기술을 개발해 생산 단가를 낮추고 성능을 높이는 연구를 하고 있다./한국전기연구원

국내 과학기술계에서도 국내 기업을 대신해 전고체전지 연구에 한창이다. 이미 세계적 수준의 연구 성과를 내고 있는 연구자도 있다. 황화물계 전고체전지 분야에서 월등한 수준의 기술을 갖춘 하윤철 한국전기연구원 차세대전지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이 그 주인공이다.

전고체전지는 유기전해질을 대신할 고체전해질의 재료에 따라 고분자계, 산화물계, 황화물계로 나눈다. 고분자는 전고체전지 기술 중 가장 오래 연구됐다. 비교적 제작이 쉽고 비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차량에 사용할 정도의 성능을 내지는 못한다. 산화물계는 고분자계보다는 높은 성능을 낼 수 있으나 여전히 차량용으로는 무리가 있다. 특히 산화물은 유연하지 않고 단단해 차량용 전지로 사용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가공이 어렵다보니 생산 단가도 비싸다.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자동차 산업에서 활용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하 책임연구원은 “프랑스에서 고분자계 전고체전지를 차량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있으나 단거리용으로 단기 대여용 차량에나 쓸 수 있다”며 “산화물계는 휴대전화나 이어폰처럼 소형 전자기기에나 적합한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전기차 산업계는 하 책임연구원이 연구하는 황화물계 전고체전지를 주목하고 있다. 황화물계 전고체전지는 이온전도도가 우수하고 상대적으로 가공도 쉽다. 대형 전지에 적합해 전기차 전지로 개발하기 적합하다.

전고체전지는 산업적 가치가 워낙 커 여러 기업에서 기술 개발에 나섰다. 솔리드파워는 이미 BMW에 황화물계 고체전전지 샘플을 보내 테스트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요타도 아직 공개하지는 않고 있으나 이미 생산 공정 기술까지 확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 전 세계 리튬이온전지 시장의 최소 40%를 차지할 정도로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으나 전고체전지 전환에는 다소 늦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SDI, 현대차가 대표적이다. 기술 수준은 높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직 생산 단계에는 이르렀다는 소식은 없다.

하윤철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의 연구실에서 개발하고 있는 전고체전지용 전극. 하 책임연구원은 최근 고체전해질과 전극을 이용한 전고체전지 완성품을 연구하고 있다./창원=이병철 기자

하 책임연구원은 지난해 11월 황화물계 고체전해질을 저비용으로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기술로 ‘2023년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서 최우수 기술로 선정된 바 있다. 전고체전지의 가장 큰 문제점인 비싼 생산 비용을 줄여 상용화 속도를 앞당길 기술로 평가받는다.

순도가 낮은 원료에 첨가제를 사용해 고성능의 고체 전해질을 생산할 수 있는 ‘특수 습식합성법’을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가격이 비싼 황화리튬을 사용하지 않고 간단한 용액 합성으로 고체 전해질을 만드는 ‘공침법’과 섭씨 200도 이하의 저온에서 고체전해질을 만드는 ‘습식밀링형도’ 개발했다. 특히 황화리튬은 1㎏에 수천만원에 육박하는 만큼 생산 단가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기술로 산업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하 책임연구원은 이미 전고체전지 관련 중요한 기술을 개발한 성과를 여럿 발표했다. 고체전해질 성능을 높이는 ‘용매 치환’ 공정과 전기 저항을 낮추는 ‘저온 소결’ 공정도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이 기술들은 대부분 국내 기업에 이전해 전고체전지 소재·부품·장비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이전까지 황화물계 전고체전지 소·부·장은 일본이 원천기술을 선점했던 상태다.

하윤철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이 연구하고 있는 고체전해질 소재. 하 책임연구원 연구진은 생산 비용과 과정을 개선할 수 있는 최적의 생산법을 찾고 있다. 고체전해질 생산 공정은 상용화의 가장 중요한 키다./창원=이병철 기자

하 책임연구원도 처음 전고체전지 연구를 시작하면서 일본 연구진의 논문을 보고 공부했다. 국내에서는 참고할 자료가 충분하지 않았으나 일본에는 이미 공개된 특허에서 관련 기술을 볼 수 있었던 덕분이다. 하 책임연구원은 “일본의 기술을 따라하면서 전고체전지를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다”며 “기술이 생각보다 쉽게 재현돼 우리도 전고체전지를 개발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하 책임연구원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다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우수한 성과를 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원래 그의 연구 분야는 전기화학으로, 금속 재련 과정에서 버려지는 폐기물에서 값비싼 재료를 추출하는 연구를 했다. 전기화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금속 회수 공정을 연구하던 그는 박사 과정에 진학해 전지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당시에더 리튬이온배터리 기술이 성숙 단계에 있다고 알려졌으나 전기차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다”며 “산업이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던 시기”라고 말했다.

박사 과정 중간에는 정보기술(IT) 분야로 잠시 눈을 돌리기도 했다. 박사과정 3학기를 마치고 특허 분석 솔루션 개발 기업에 취직해 기업의 특허 분석 업무를 맡기도 했다. 이 과정은 이후 일본 특허를 분석해 전고체전지 기술을 습득하는 데 도움됐다.

하윤철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이 자신이 개발한 전고체전지로 작동하는 소형 전광판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기업이 상용화해 국내 산업 발전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창원=이병철 기자

하 책임연구원은 앞으로 전고체전지 기술을 어느 국가가 선점하느냐에 따라 전기차 산업의 큰 물줄기도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리튬이온전지는 소형 전자기기에서 시작해 전기차로 활용 분야를 넓혔으나 전고체전지는 전기차 시장에서부터 활용되기 시작할 것”이라며 “이후에는 항공기, 개인형 모빌리티 같은 첨단 장비의 기초 부품으로 사용될 전망이다”라고 전망했다.

그는 자신의 기술이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되는 것에 큰 자부심도 갖고 있다. 하 책임연구원의 전기연 홍보관에 전시된 자신의 연구 성과를 보여주며 기술 이전이 이뤄진 기업을 하나씩 소개했다. 그는 “국내 기업과 협력해 산업을 육성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며 “앞으로 다가 올 첨단 기술의 시대에 한국 산업계가 선전하는 데 기여한다는 자부심으로 연구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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