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 "예술위 50주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은 숙명"

대담=최석환 정책사회부장 겸 문화부장, 정리=유동주 기자, 사진=김휘선 기자 2024. 1. 22.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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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투초대석]현장 의견 반영한 개혁안 마련..문화예술 후원 확대 추진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하 문예진흥원)으로 시작해 지난해 50주년을 맞은 국내 최대 문화예술 지원 기관이다. 문체부가 정책적으로 순수예술 지원방향을 결정하면 문화예술인들을 현장에서 도우면서 격려해주는 역할을 한다. 지난해 1월부터 예술위를 이끌고 있는 수장이 정병국 위원장(사진)이다. 5선 국회의원을 지낸데다 문체부 장관까지 역임한터라 문화예술계 안팎에선 의외란 반응이 적지 않았다.

머니투데이는 지난 10일 서울 사무실이 있는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정 위원장을 만났다. 취임 후 1년간의 소화와 성과, 향후 계획을 물었다. 특히 내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건립 30주년 앞두고 준비가 한창인 특별 행사에 대해서도 설명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정 위원장은 '예술가의 집' 카페 한 켠에서 직접 갈아둔 원두로 내린 커피를 나누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정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어떻게 맡게 됐나.
▶취임한지 벌써 1년이 됐다. '문예진흥원'을 '예술위'로 바꾸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처음엔 제안을 고사했는데 제대로 (독립적인 성격의) 운영될 수 있도록 외풍 막는 바람막이 역할을 해달라'는 요청에 '그렇다면 내 역할이 있을 것 같다'고 수긍이 돼 와서 일하게 됐다. 그간 정권과 위원장이 바뀔 때마다 열심히 일한 사람들만 다치는 구조였다. 그러다보니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는데 와서 보니 직원들이 위축돼 있기도 하고 새로운 일 하기를 주저하는 분위기였다.

-처음부터 어려운 상황이었다.
▶국민들이 양질의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게 목적인 만큼 일단 14차례 간담회를 열어 현장 목소리를 충분히 들었다. 다 똑같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공통되는 부분을 우선 개혁 대상으로 삼고 전문가 협의를 거쳐 개선안을 만들게 됐다. 이를 국민들에게 공개했고 의견을 받아 최종안으로 정리한 뒤 (다시) 4차례 공청회에서 나온 얘기를 반영해 개혁안을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이 밤샘하다시피 하면서 2~3년 해야 할 일들을 1년만에 해냈다.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었나.
▶대표적인게 문화예술 지원산업에 대한 심사제도를 전면 수정한 것이다. 문화예술인들이 마음놓고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심사위원 풀을 개편하고 44개나 되는 사업을 17개로 대폭 축소했다. 특히 심사위원 풀의 경우 이전엔 기준만 맞으면 분야별로 무작위로 뽑아 심사를 시켰는데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20년간 제도도 변하지 않고 10여년간 내려온 풀이 그대로 있어 활동을 하지 않거나 문제가 있던 전문가들도 걸러지지 않았다. (현장에서) 개선해달란 요청이 많아 내외부 추천을 받아 심사위원을 할 수 있도록 바꿨다. 심사위원 검증위원회도 둬서 2차례 검증하고 3년마다 재편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심사 결과에 대한 책임도 지도록 했다. 앞으론 예술위 직원들이 직접 책임지고 심사를 할 수 있는 영국식 모델을 시도해볼 생각이다. 오래 일한 만큼 관련 업무엔 최고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직원들을 상대로 전담 심의관 공모도 하고 있다.

-'예술가의 집' 리모델링도 그 일환일텐데.
▶예술위 청사로 사용하고 있다 2010년 12월을 기점으로 예술가들의 창작과 소통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하지만 10년 이상 지나면서 노후화된데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공간 활용에도 문제가 생겼다. 이에 '예술가의 집'이란 명칭에 맞게 리모델링한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열린 공간으로 만들었다. 1층엔 청년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이고, 2층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카페다. 카페 수익금은 예술가들을 위한 후원금으로 전액 사용하고 있다.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지난해 올림픽공원에서 창립 50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아트 포레스트 페스티벌'도 의미있는 행사였다.
▶ 문화예술에 대한 대국민 후원 인식 확산을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개최했다. 공연 티켓을 구매하면 자동으로 문화예술에 기부가 되는 새로운 개념의 '기부 축제'였다. 성악가 조수미와 같은 최정상급 아티스트를 비롯해 가수 이찬혁·리베란테 등 대중적인 인기가 있는 스타들이 함께 무대를 장식하면서 9000여명의 관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당일 현장에서 260명의 '예술나무' 후원자를 찾았고, 2000명은 후원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 축제를 통해 쌓인 민간 재원은 문화예술후원 공감대를 높일 수 있는 사업으로 환원할 계획이다. 예술영재를 키우거나 소외된 청년을 위한 치유 프로젝트와 같은 사업들은 기존 문예진흥기금으로는 하지 못한다. 이런 영역을 후원 사업으로 추진해 문화예술 커뮤니티의 선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캠페인을 앞으로 지속할 예정이다.

-문화예술 후원을 늘려가는게 중요하다.
▶정부 예산이 아닌 사회적 후원이 너무 약하다. 실제 2~3% 정도밖에 안 된다. 문화 콘텐츠산업이 우리의 전략산업이 될 정도로 중요해졌는데 그에 비해 후원은 따라 주지 않고 있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이 문화 및 콘텐츠산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단 사실이 이제 많이 알려졌다. 아직도 척박한 문화예술 후원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높여가기 위해 10여년간 해온 '예술나무' 캠페인을 꾸준히 전개할 생각이다. 문화예술의 가치에 공감한 이들이 후원에 동참하고, 모인 후원금은 또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내는 일에 투입해 선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역할을 수행하겠다.

-내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개관 30주년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나.
▶올해 먼저 특별전시를 계획 중에 있다. 한국과 이탈리아의 외교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고,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개관 30주년을 축하하는 차원에서 오는 4월 중순부터 9월 말까지 12세기 건립된 몰타 기사단 수도원이었던 베니스 오르디네 디 몰타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역대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 한국관 참여작가 39명의 '하이라이트 전시'와 '아카이브 전시' 등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해 약 100여점을 전시하게 된다.

-한국관 개관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는데.
▶1933년 한국관이 없을 때 백남준 선생이 독일관 초대 작가로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수상자로 초청된 만찬 자리에서 베니스 시장이 더 이상 국가관을 만들지 않겠단 방침을 밝히자 백 선생이 "한국관을 지어주면 남북이 공동으로 전시하겠다"는 요청을 했는데 베니스 이를 선뜻 받아들인게 한국관 개관의 발단이 됐다. 이후 백 선생이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신한국인상'을 받아 청와대에 초청됐는데 당시 비서관이던 제가 맞이했고, 그 자리에서 한국관 얘기가 나와 만들어졌다. 면담을 끝내고 나오면서 백 선생이 품에서 박카스 한 병을 꺼내 "긴장되고 답답해서 혼났다"며 시원하게 마셨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한국관 개관 스토리를 가장 정확히 알고 있어 30주년 행사도 예술위 50주년도 오랜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IFACCA(국제예술위원회 및 문화기관 연합)와 문화예술세계총회를 다녀왔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가진 첫 대면회의였다. 가서 보니 이젠 한국이 중심이 돼 있었다. 한국 문화예술에 대한 높은 관심을 확인했다. K-컬처의 토대가 된 한국 문화예술정책의 저력과 한국의 리더십 발휘에 대한 다른 국가와 기관들의 기대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의 예술 지원 규모와 시스템에 대해 들으면 다들 놀란다. 쉽게 만날 수 없었던 아프리카나 중남미 예술정책 전문가를 만나고 교류의 물꼬를 튼 것도 큰 의미가 있다. 전세계 400여명의 문화정책가와 연구자, 예술가들이 모이는 10차 문화예술세계총회를 내년 말이나 2026년 초에 개최할 예정이다.

- 우리 문화예술의 위상이 많이 높아진게 사실이다.
▶물론이다. 작품 수준이 올가가고 관객층이 넓어지면서 수준도 같이 높아졌다. 뮤지컬의 경우, 10여년전만해도 다 외국에서 가져왔는데 이젠 창작 뮤지컬이 해외로 나가고 있다. 대중 예술도 최정상급일 뿐 아니라 클래식 등 순수예술도 콩쿠르에서 한국인이 휩쓸고 있다. 실질적으로 상만 타는게 아니라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해외 미술관 관장은 물론 연출 총감독을 맡는 등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다.

- 예술위가 운영하는 아르코미술관도 50주년을 맞았다.
▶전시할 공간이 굉장히 부족했던 시절인 1974년 미술회관에서 출발해 1979년 마로니에공원에 들어선 이후 젊은 예술가와 미술단체 등에 전시 장소를 제공하면서 한국 미술의 기초 생태계를 키우는데 기여해왔다. 당대 사회나 미술 현장과 가까이서 호흡하고, 관람객과 교류해왔단 얘기다. 50주년전은 미술관을 통해 교류한 미술인들의 네트워크와 협업에 방점을 둔 기획전이다. 문화예술 지원기관으로서 미술관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올해 외부 기관 및 기획자와도 협업을 확대하고, 후속 지원의 일환으로 보다 많은 예술가들에게 미술관 전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릴 것이다.

-문화예술누리카드 운영에도 변화가 있나.
▶경제적 취약층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인데 전달체계 개선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현재는 광역 단위 문예회관에서 맡아 하고 있는데 현장에선 사회복지사들이 취약층을 가장 많이 만나고 그분들을 잘 알고 있다. 사회복지사들을 활용하는 체계에 대해 연구 중이고 교통 등 일반 복지가 아닌 순수 문화예술에 더 쓸 수 있도록 하는 방향도 검토하고 있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과 인연은.
▶두번째 임기라서 그런지 현안을 잘 파악하고 있다. 특히 예술위를 맡아 현장에서 들은 의견을 종합해 알게 된 정보를 이미 유 장관은 알고 있는 수준이다. 그렇다보니 제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과 해답이 유 장관과 일치할 때가 굉장히 많다.

대담=최석환 정책사회부장 겸 문화부장 neokism@mt.co.kr 정리=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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