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 | 서울 방배동 ‘미미치킨’[내 이름 걸고 추천하는 맛집](16)
2024. 1. 22. 05:30
맛있고 아름다운 옛날식 동네치킨집
이름은 ‘미미’. 의미는 알 수 없다. 40년 넘게 이어온 이름이라고 했다. 20년 전 가게를 인수한 지금의 주인 부부 역시 한참 전부터 내려온 가게 이름을 자신들 이름인 양 순순히 받아들였다. 치킨집인 것을 감안하면 미미(味味), 맛을 뜻하는 한자가 두 번 들어간다고 짐작할 뿐이다. 그렇다. 맛있고 또 맛있는 곳. 이것은 동네 치킨집 이야기다.
해 질 무렵, 서울 지하철 7호선 내방역 1번 출구를 빠져나오면 이미 그곳이 멀지 않음을 직감한다.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냄새만 맡아도 저절로 몸이 반응하는 음식. 코끝을 자극하는 고소한 냄새를 따라 열 걸음만 가면 눈앞에 그곳이 나타난다. 빨강, 파랑 네온등이 켜진 ‘양념치킨’이라는 글자와 그 아래 분주하게 치킨을 튀기고 있는 주인장의 모습. 자 이제 다 온 것이다.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서울 방배동, 이른바 ‘부자 동네’라는 서초구 한복판에 촌스러운 옛날식 네온간판이라니. 손바닥만 한 가게 앞 켜켜이 쌓아둔 플라스틱 의자와 허름해 보이는 실내 정경이 의심스럽다. 레트로가 유행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마주한 이 ‘레트로’는 인위적인 레트로가 아니다. 여긴 그냥 ‘옛날식’ 치킨집 아닌가. 문 앞에서 망설이는 사이 주인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속는 셈 치고 여길 들어가? 말아?
장면 1
2011년 가을, 허름한 운동복 차림의 아저씨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 앞장세운 건 유치원생 꼬마 하나. ‘늘그막에 얻은 아들인가?’ 새치가 허옇게 내려앉은 아비는 ‘프라이드’ 하나에 생맥주 한 잔을 앞에 두고 치킨 살을 바르느라 분주하다. 만화책에 정신이 팔린 아들 입에 연신 고기를 넣어주고 있었던 것. 가게 사장님 눈엔 그게 그리 짠~ 해 보였다고 한다. ‘애 엄마는 어딜 가고? 혹시 혼자서 키우나?’ 그러고 보니 무릎 나온 운동복이 눈에 들어왔고, 표정도 어딘가 청승맞아 보이는 게 아닌가. “아유, 애가 이렇게 책을 좋아하면 나중에 큰사람 되는데….” 강냉이를 평소보다 수북이 담아내며 말을 걸어봤지만 아이 아빠, 그냥 씩 웃고 말더란다.
그리고 며칠 뒤, 청승맞고 짠했던 이 부자는 예상치 못한 일행과 함께 가게에 들어섰으니…. “제가 출장 간 사이 애 아빠가 여길 왔는데, 사장님이 너무 잘해주셨다면서요?” 한바탕 마주 웃으며 긴 인연은 시작됐다. 만화책 읽으며 살코기 받아먹는 아들과 그 앞에서 맥주잔 부딪히는 부부의 모습. 이제 고등학생이 된 아이는 자주 보이지 않았고, 티격태격하며 치킨을 뜯던 부부는 집에 갈 때면 아들 몫을 따로 챙겨 돌아가곤 했다.
장면 2
2019년 봄. 그런 날이 있다. 무언가에 의해 마음이 무너진 날. 종일 괜찮은 척 버티느라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퇴근하는 길. 왠지 나도 그게 해보고 싶었다. 월급날 치킨 한 마리 사 들고 흔들흔들 골목길을 올라갔다던 그 시절 아버지들 정취 같은 것 말이다. 내방역 앞 빨강과 파랑 네온사인 간판을 보며 홀리듯 그곳에 들어갔다. “사장님, 저 프라이드 하나 포장이요.”
한구석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나에게 여주인이 말을 걸었다. “생맥주 한 잔 줄까요?” 어느새 탁자 위엔 맥주잔과 강냉이가 놓였고, 공짜 맥주 한 모금 꼴깍 들이키자 마음이 왈랑왈랑해졌다. 이게 뭐라고 왜 눈물은 삐져나오는지…. ‘오늘 하루 나 참 잘했다.’ 흔들흔들 노래를 흥얼대며 골목길을 올라갔다. 그 시절 아빠의 마음처럼.
이쯤 되면 궁금할 테다. 당신네 추억은 짐작하겠으나 맛은 어떻길래 이렇게 호들갑이냐고. 정말 맛집이기는 한 것이냐고. 맛의 경지는 20년 넘는 꾸준한 시간이 보증한다. 본식에 앞선 곁들임부터 내공이 엿보인다. 채 썬 양배추로 쌓아 올린 봉긋한 언덕 위에 흩뿌린 케첩과 마요네즈의 조화. 그렇다. 옛날 경양식집에서 봤던 바로 그 샐러드다. 독일 비어홀의 풍경이 인쇄된 벽지 아래서 우리 가족은 누가 먼저 이 맛있는 언덕을 허물어버릴 것인가를 늘 고민하곤 한다.
핵심은 그러나 역시 치킨이다. 퍽퍽살과 쫀득살이 제대로 섞이도록 공들여 자른 단면과 매일 바꾸는 신선한 기름, 짜지 않게 염지한 살코기가 3박자로 풍성한 조화를 이뤄낸다. 감자를 좋아한다면 ‘브라보’를 외칠지니, 따로 주문하지 않아도 치킨 위에 웨지감자와 프렌치프라이가 수북하다. 양념보다는 프라이드를 추천한다. 아무것도 찍지 않은 본연의 맛도 좋지만, 함께 나오는 후추소금에 콕, 때론 기분에 따라 빨강 양념 소스에 꾹 눌러 찍으면 각자 개성 있는 맛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신의 한 수! 유튜브 요리 채널에서 힌트를 얻은 사장님이 개발한 ‘매운 소스’가 있다. 경험하고 싶다면 고추치킨을 주문할 것. 청양고추가 송송 박힌 진갈색 간장 소스가 프라이드 옆에 등판한다. 끈적한 소스에 치킨을 콕 찍으면, 알싸한 매운맛과 단맛이 동시에 감돌아 차가운 맥주를 절로 찾게 된다. ‘치킨 한 입+맥주 한 모금’의 무한루프가 시작되고야 만다.
치킨이 지겹거나 이미 배가 부른 상태라면 철판에 지글지글 구워 나오는 닭똥집을 주문해도 좋다. 큼직한 통마늘과 고추를 함께 볶은 쫄깃한 구이가 튀긴 음식을 싫어하는 이들에게 제격이다. 통째로 구워 나오는 개코먹태 역시 마요네즈 소스와 함께 맥주를 부르는 요물 중 하나. 개코의 어원을 알 길은 없지만, 큼직한 그 자태가 과연 ‘개코’다운 태도와 맛을 뽐낸다.
소중한 이들을 만났을 때, 오래된 친구와 기분 좋게 취하고 싶을 때, ‘미미치킨’은 나에게 빠지지 않고 가야 하는 장소가 됐다. 한껏 폼을 잡느라 값비싼 식당에서 밥을 먹고도 마무리는 이상하게 그곳이었다. 부질없는 일들로 속앓이할 때도 미미의 문을 열고 난데없는 어리광을 부려왔다. “사장님, 저 오늘 회사 관뒀어요. 잠깐 쉬려고요.” 괜찮다는 토닥임, 말없이 씩 웃어주는 주인 부부의 얼굴을 마주하고 나서야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화려하지 않지만 한결같은 미미처럼, ‘잠시 멈춰서도 괜찮다고, 천천히 가도 된다고’ 위안받는 밤.
이름은 ‘미미’. 의미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이렇게 믿는다. 미미(味美), 맛있고 또 아름다운 곳. 다정함으로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장소. 치킨 한 마리, 생맥주 한 잔으로 굳어진 마음이 녹아내리는 나만의 맛집.
김현정 작가
이름은 ‘미미’. 의미는 알 수 없다. 40년 넘게 이어온 이름이라고 했다. 20년 전 가게를 인수한 지금의 주인 부부 역시 한참 전부터 내려온 가게 이름을 자신들 이름인 양 순순히 받아들였다. 치킨집인 것을 감안하면 미미(味味), 맛을 뜻하는 한자가 두 번 들어간다고 짐작할 뿐이다. 그렇다. 맛있고 또 맛있는 곳. 이것은 동네 치킨집 이야기다.
해 질 무렵, 서울 지하철 7호선 내방역 1번 출구를 빠져나오면 이미 그곳이 멀지 않음을 직감한다.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냄새만 맡아도 저절로 몸이 반응하는 음식. 코끝을 자극하는 고소한 냄새를 따라 열 걸음만 가면 눈앞에 그곳이 나타난다. 빨강, 파랑 네온등이 켜진 ‘양념치킨’이라는 글자와 그 아래 분주하게 치킨을 튀기고 있는 주인장의 모습. 자 이제 다 온 것이다.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서울 방배동, 이른바 ‘부자 동네’라는 서초구 한복판에 촌스러운 옛날식 네온간판이라니. 손바닥만 한 가게 앞 켜켜이 쌓아둔 플라스틱 의자와 허름해 보이는 실내 정경이 의심스럽다. 레트로가 유행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마주한 이 ‘레트로’는 인위적인 레트로가 아니다. 여긴 그냥 ‘옛날식’ 치킨집 아닌가. 문 앞에서 망설이는 사이 주인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속는 셈 치고 여길 들어가? 말아?
장면 1
2011년 가을, 허름한 운동복 차림의 아저씨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 앞장세운 건 유치원생 꼬마 하나. ‘늘그막에 얻은 아들인가?’ 새치가 허옇게 내려앉은 아비는 ‘프라이드’ 하나에 생맥주 한 잔을 앞에 두고 치킨 살을 바르느라 분주하다. 만화책에 정신이 팔린 아들 입에 연신 고기를 넣어주고 있었던 것. 가게 사장님 눈엔 그게 그리 짠~ 해 보였다고 한다. ‘애 엄마는 어딜 가고? 혹시 혼자서 키우나?’ 그러고 보니 무릎 나온 운동복이 눈에 들어왔고, 표정도 어딘가 청승맞아 보이는 게 아닌가. “아유, 애가 이렇게 책을 좋아하면 나중에 큰사람 되는데….” 강냉이를 평소보다 수북이 담아내며 말을 걸어봤지만 아이 아빠, 그냥 씩 웃고 말더란다.
그리고 며칠 뒤, 청승맞고 짠했던 이 부자는 예상치 못한 일행과 함께 가게에 들어섰으니…. “제가 출장 간 사이 애 아빠가 여길 왔는데, 사장님이 너무 잘해주셨다면서요?” 한바탕 마주 웃으며 긴 인연은 시작됐다. 만화책 읽으며 살코기 받아먹는 아들과 그 앞에서 맥주잔 부딪히는 부부의 모습. 이제 고등학생이 된 아이는 자주 보이지 않았고, 티격태격하며 치킨을 뜯던 부부는 집에 갈 때면 아들 몫을 따로 챙겨 돌아가곤 했다.
장면 2
2019년 봄. 그런 날이 있다. 무언가에 의해 마음이 무너진 날. 종일 괜찮은 척 버티느라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퇴근하는 길. 왠지 나도 그게 해보고 싶었다. 월급날 치킨 한 마리 사 들고 흔들흔들 골목길을 올라갔다던 그 시절 아버지들 정취 같은 것 말이다. 내방역 앞 빨강과 파랑 네온사인 간판을 보며 홀리듯 그곳에 들어갔다. “사장님, 저 프라이드 하나 포장이요.”
한구석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나에게 여주인이 말을 걸었다. “생맥주 한 잔 줄까요?” 어느새 탁자 위엔 맥주잔과 강냉이가 놓였고, 공짜 맥주 한 모금 꼴깍 들이키자 마음이 왈랑왈랑해졌다. 이게 뭐라고 왜 눈물은 삐져나오는지…. ‘오늘 하루 나 참 잘했다.’ 흔들흔들 노래를 흥얼대며 골목길을 올라갔다. 그 시절 아빠의 마음처럼.
이쯤 되면 궁금할 테다. 당신네 추억은 짐작하겠으나 맛은 어떻길래 이렇게 호들갑이냐고. 정말 맛집이기는 한 것이냐고. 맛의 경지는 20년 넘는 꾸준한 시간이 보증한다. 본식에 앞선 곁들임부터 내공이 엿보인다. 채 썬 양배추로 쌓아 올린 봉긋한 언덕 위에 흩뿌린 케첩과 마요네즈의 조화. 그렇다. 옛날 경양식집에서 봤던 바로 그 샐러드다. 독일 비어홀의 풍경이 인쇄된 벽지 아래서 우리 가족은 누가 먼저 이 맛있는 언덕을 허물어버릴 것인가를 늘 고민하곤 한다.
핵심은 그러나 역시 치킨이다. 퍽퍽살과 쫀득살이 제대로 섞이도록 공들여 자른 단면과 매일 바꾸는 신선한 기름, 짜지 않게 염지한 살코기가 3박자로 풍성한 조화를 이뤄낸다. 감자를 좋아한다면 ‘브라보’를 외칠지니, 따로 주문하지 않아도 치킨 위에 웨지감자와 프렌치프라이가 수북하다. 양념보다는 프라이드를 추천한다. 아무것도 찍지 않은 본연의 맛도 좋지만, 함께 나오는 후추소금에 콕, 때론 기분에 따라 빨강 양념 소스에 꾹 눌러 찍으면 각자 개성 있는 맛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신의 한 수! 유튜브 요리 채널에서 힌트를 얻은 사장님이 개발한 ‘매운 소스’가 있다. 경험하고 싶다면 고추치킨을 주문할 것. 청양고추가 송송 박힌 진갈색 간장 소스가 프라이드 옆에 등판한다. 끈적한 소스에 치킨을 콕 찍으면, 알싸한 매운맛과 단맛이 동시에 감돌아 차가운 맥주를 절로 찾게 된다. ‘치킨 한 입+맥주 한 모금’의 무한루프가 시작되고야 만다.
치킨이 지겹거나 이미 배가 부른 상태라면 철판에 지글지글 구워 나오는 닭똥집을 주문해도 좋다. 큼직한 통마늘과 고추를 함께 볶은 쫄깃한 구이가 튀긴 음식을 싫어하는 이들에게 제격이다. 통째로 구워 나오는 개코먹태 역시 마요네즈 소스와 함께 맥주를 부르는 요물 중 하나. 개코의 어원을 알 길은 없지만, 큼직한 그 자태가 과연 ‘개코’다운 태도와 맛을 뽐낸다.
소중한 이들을 만났을 때, 오래된 친구와 기분 좋게 취하고 싶을 때, ‘미미치킨’은 나에게 빠지지 않고 가야 하는 장소가 됐다. 한껏 폼을 잡느라 값비싼 식당에서 밥을 먹고도 마무리는 이상하게 그곳이었다. 부질없는 일들로 속앓이할 때도 미미의 문을 열고 난데없는 어리광을 부려왔다. “사장님, 저 오늘 회사 관뒀어요. 잠깐 쉬려고요.” 괜찮다는 토닥임, 말없이 씩 웃어주는 주인 부부의 얼굴을 마주하고 나서야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화려하지 않지만 한결같은 미미처럼, ‘잠시 멈춰서도 괜찮다고, 천천히 가도 된다고’ 위안받는 밤.
이름은 ‘미미’. 의미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이렇게 믿는다. 미미(味美), 맛있고 또 아름다운 곳. 다정함으로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장소. 치킨 한 마리, 생맥주 한 잔으로 굳어진 마음이 녹아내리는 나만의 맛집.
필자는 2003년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거쳐 2013년부터 JTBC 뉴스룸에서 <앵커브리핑>을 썼다. 앵커브리핑 종영 이후에는 KBS <뉴스9>에서 이소정 앵커와 호흡을 맞춰왔다. 3년 전부터는 백석예술대학교 극작과에서 학생들과 만나고 있다.
김현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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