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제설(除雪) ‘화학전’, 이대로 좋은가

전상인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2024. 1. 22.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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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화칼슘 등 제설제 과다 사용
토양 염분 높여 가로수 생장 방해
도로 부식·차량 훼손 부작용도
장기적으로는 생태계 교란
빠르고 편한 방법만이 능사 아냐
친환경 제설제 사용 늘리고
도로 열선 더 깔아야
함께 눈 치우는 공동체 의식도 필요
서울 양천구청 관계자들이 13일 강설 예보에 대비하기 위해 관내 주요 간선도로와 이면도로 및 위험지역에 사전 제설제 살포작업을 하고 있다. 2022.12.13/양천구청 제공

얼마 전 전국적으로 많은 눈이 내렸다. 서울 강북 쪽 산자락 빌라에 사는 나는 평소 눈 내리는 날씨에 예민한 편이다. 그날도 눈이 제법 쌓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빗자루와 삽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마침 이웃에 사는 30대 젊은이가 동참했는데, 그는 빌라 입구 제설함에 담긴 염화칼슘을 아낌없이 살포하는 방식을 택했다. 힘도 덜 들어 보였고 시간도 절약되는 듯했다. 그날 나는 제설(除雪) 장비에 관련하여 뚜렷한 세대 차이를 경험했다.

개인적으로는 제설이라는 말이 마뜩잖다. 눈을 없앤다는 뜻에 내포된 폭력성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군대에서는 제설이 ‘작전’이다. 전투력 확보를 위한 기동성이 군의 생명인 까닭이다. 군에서는 눈이 일단 적(敵)이다. 이처럼 눈을 적대시하는 분위기는 오늘날 도시 생활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하긴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자체가 하루하루 전쟁 아닌가. 출퇴근부터가 그렇다. 전쟁터 같은 대도시에 사노라면 눈은 ‘공공의 적’이 되기 십상이다.

눈의 초전박살과 완전 진압으로 말하자면 염화물계 제설제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그중에서도 염화칼슘이 으뜸이다. 염화나트륨(소금)도 있지만 기온이 낮을수록 효력이 떨어진다. 1930년대 미국에서 이용되기 시작한 염화칼슘은 1969년 12월 우리나라 서울에서도 제설 신병기(新兵器)로 등장했다. 문제는 염화칼슘을 너무 많이 뿌린다는 점이다. 제설제 사용량은 강설 일수와 적설량 등이 변수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2022~2023년 겨울 서울만 해도 총 4만4470톤이 사용되었는데, 염화칼슘이 1만6405톤으로 37%, 소금이 1만9103톤으로 43%였고 나머지는 이른바 친환경 제설제였다. 2022년 현재 국내 제설제 시장 규모는 4200억원이라고 한다.

제설제 과량 살포에 따른 부작용은 심각한 수준이다. 우선 토양의 염분을 높여 가로수의 생장(生長)을 방해할 뿐 아니라 각종 도로 부식이나 포트홀 발생, 차량 훼손의 원인이 된다. 산책길에 나선 반려동물들이 염화칼슘을 핥거나 밟아 고통을 겪는 경우도 많다. 장기적으로는 지구 전체를 점점 더 짜게 만드는 생태계 교란의 주범 가운데 하나다. 인공 염분이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을 완전히 모른 체하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염화칼슘 대신 소금을 더 많이 뿌리고, 친환경 제설제 사용을 늘리며, 도로 열선을 까는 방식 등이다. 상대적으로 강남 쪽 부자 동네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단기적 가성비를 따지자면 아직은 염화칼슘이 제설의 주무기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제설에 관한 개인의 의무나 공동체의 미덕을 잊어버렸다. 모든 게 나랏일이고 나라 책임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결과, 눈이 오면 민원실에 전화부터 한다. 언필칭 국민주권 시대라 이를 외면할 공공기관이란 있을 리 없기에, 가장 빠르고 편한 방법으로 선택되는 것이 물리적이 아닌 화학적 제설이다. 그 결과가 염화칼슘의 무차별 살포다. 제설 인력이나 장비가 현장을 직접 찾기도 하고 골목마다 제설함을 미리 비치해 두기도 한다. 물론 제설함 속은 삽이나 빗자루, 넉가래 대신 염화칼슘으로 가득하다. 그게 거의 전부 수입품이어도, 가격이 계속 폭등해도, 어차피 국민의 세금으로 살 것이기에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걱정할 바는 아니다. 또한 그것의 폐해는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도시와 지구를 죽일 것이기에 지금 당장 그들이 모든 독박을 쓰지 않아도 된다.

2010년 겨울 미국 동부에 기록적인 폭설이 쏟아졌을 때 ‘스노셜리즘(snowcialism)’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자본주의와 개인주의를 신봉하는 나라가 만들어낸 눈과 사회주의의 합성어로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눈도 치우고 이웃 관계도 좋아진다는 의미다. 일본의 경우에 눈에 대한 대비의 출발은 개인이다. 예컨대 눈 내리는 날 도로에 차들이 씽씽 달리는 것은 공공 제설 작업보다는 각자 준비한 스노타이어나 스노체인 덕분이다. 운전을 할지 말지는 본인 결정일 뿐, 일본인들은 설해(雪害)에 관련하여 ‘관재(官災)’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

한때 우리도 그랬다. 어릴 적 기억에 눈은 주로 동네 사람들이 쓸거나 치웠다. 눈을 없애버리는 대신 눈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눈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사이 세상의 변화가 상전벽해인 건 물론 맞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대량 화학무기를 동원한 관(官) 주도 ‘눈과의 전쟁’이 과연 최선이고 정상일까? 개인적으로는 초(超)단명으로 끝나는 도심 설경이 가장 아쉽다. 무심한 세월은 대한을 지나 입춘으로 달려가는데, 겨울의 유산을 음미하기에 주변의 잔설(殘雪)은 너무나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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