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시골 큐레이터’…쉽게 풀어 쓴 49편 미술 이야기

하송이 기자 2024. 1. 2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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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는 로커'가 장래희망이어서 국어국문학과로 진학했다.

'시골큐레이터 표류기'를 펴낸 신용철 민주공원 학예실장의 이력이다.

'시골큐레이터 표류기'도 민중미술로 시작한다.

제2 도시 부산에 사는 그가 왜 시골 큐레이터를 자처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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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민주공원 신용철 학예실장, ‘시골큐레이터 표류기’ 저서 출간

- 전문용어 쓰지 않은 글과 그림
- 민중·지역미술 대한 애정 담겨

‘시 쓰는 로커’가 장래희망이어서 국어국문학과로 진학했다. 그런데, 대학에서 탈춤과 풍물을 만나면서 록의 반대 끝에 있을 것 같은 민속학에 빠져 들었다. 박사과정에서는 미학을 전공했고, 보수동책방골목문화관에서 학예실장으로 일하다 2011년 부산 민주공원 큐레이터 직함을 달았다. 그리고 13년째 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고있다. 본인 말을 빌리면 학창시절 미술 성적은 ‘수우미양가’ 중 ‘미’였단다. 미술로 먹고 살게 될 줄 꿈에도 몰랐는데, 급기야 미술 책도 냈다. ‘시골큐레이터 표류기’를 펴낸 신용철 민주공원 학예실장의 이력이다.

49편의 그림목숨 이야기를 담은 ‘시골큐레이터 표류기’를 펴낸 신용철 민주공원 학예실장이 민주공원 전시실 작품 앞에서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 학예실장은 “이 작품 제작에 참여한 윤은숙 작가는 ‘제 책 하나 없는 큐레이터는 제 자리’라며 책 쓰기를 처음 권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저자의 이력부터 펼친 건 그의 과거가 현재 나온 책을 푸는 열쇠라서다. 책은 그가 만난 49점의 ‘그림목숨’과 작가들 이야기이다. 이것만 본다면 다른 큐레이터들이 펴낸 책과 비슷해 보이지만, 여기 그의 이력을 얹으면 차이가 보인다. 국문과 출신이자 민속학에 빠졌던 그의 책은 ‘한글’로 쓰여 있다. 무슨 말이냐면, 비평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것 같은 어려운 전문용어 대신 쉬운 말이 자리를 채웠다.

“지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글, 인용과 주석으로 가득찬 글, 유행하는 이론으로 비평하는 일명 ‘바가지 씌우기’ 같은 글이 싫었어요. 한자말을 줄이고 학술용어도 내 방식대로 풀어 썼습니다. 에세이 같은 글을 쓰자는 태도로 썼어요. 그러니까 내 글이 좋다기보다 ‘그런 글’이 싫었던 거에요.”

차이점은 작가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도 드러난다. 설명을 넘어 관심, 관심을 넘어 애정이 담뿍 담겼다. 부산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오민욱 감독에 대해선 “수상한 작품을 직조하는 오민욱은 사슴 같은 눈을 갖고 있다. 지붕에 올라가서 해금이라도 켜야 할 것 같은데…”라고 했고, 박재열 작가를 두고 “밀양 송전탑 사태가 벌어져 장도리와 망치를 들고 나섰다 하나 그가 보이는 사진이 없어 믿을 수 없다…. 부산민예총에서 해마다 주는 민족예술인상을 받지는 못하고 나무상패를 해마다 깎고 있다. 혹시나 그가 상을 받으면 상패는 누가 만드나?”고 언급하는 식이다. 작가 선정 기준에 관해선 “직업은 큐레이터지만 나도 그냥 감상자다. 내게 인상을 줘야 한다. 사랑하면 종소리가 들린다고 하듯 그림에서 어떤 음악이 들리면 좋은 작품이라고 본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민중미술은 책과 이력을 관통하는 열쇠말이다. 30대부터 민족예술인협회 부산지회 회원으로 활동했고, 민주공원 큐레이터가 되면서 민중미술 작품 700여 점과 같이 산다. ‘시골큐레이터 표류기’도 민중미술로 시작한다. 민중미술에 대한 생각과 시각, 미래와 지향점을 풀어놓는다.

‘민중미술은 제 경계를 낯설게 알아차려야 한다.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닌 어지자지한 사이에서, 있지만 없는 듯, 보일 듯 말 듯, 여전히 늘 그 낌새와 조짐으로 머물다가, 때때로 어느덧 재빨리 골탕먹이고 놀려주는 것이야 말로 민중미술가들이 마련한 민중미술의 꿈틀이다’

처음부터 궁금했던 것. 제2 도시 부산에 사는 그가 왜 시골 큐레이터를 자처하는 걸까. 그는 “서울도 시골이다. ‘시골스러운’ 방식으로 문화가 재생되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했다.

“부산도 대도시인데 왜 시골이라고 하느냐고 지적도 있지만 지금 한국의 문화·문명 지형이 못마땅했어요. 서울 빼고 다 시골 취급 하잖아요. 소규모 농사를 기반으로 한 작은 공동체인 소농공동체처럼 예술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아트페어 같은 행사의 순기능을 부정할 순 없지만 결국은 작은 단위 예술공동체가 많아져야 합니다. 예술의 본령은 생활과 붙어있어요. 예술의 싹은 결국 생활 속에서 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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