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하지만, 하나도 변한 게 없다

윤정길 기자 2024. 1. 2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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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표 대낮 흉기 피습…중증 정치병 갇힌 한국 정치
“자극적인 발언은 자제하자” 정치권 자성 목소리 잠시뿐, 진영 부추기는 배후설 판쳐

흉악한 강력 범죄가 발생하면 언론과 학계 시민사회 등은 범인의 잘못된 행동을 비판하면서도 사회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 한다. 범인의 행동은 지극히 잘못됐고 반사회적이지만, 그가 인간성을 상실할 정도의 흉포한 범죄를 저지른 배경에는 불우했던 가정 환경이나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소외감, 빈익빈 부익부에 따른 박탈감 등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서 원인과 해법을 찾으려는 시각도 많다. 전부는 아니지만 옳은 지적이다.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부산 가덕신공항 부지를 찾았다 흉기 습격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정치에 과몰입한 범인의 행동은 어떤 말로도 정당화될 수 없고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백주대낮에 제1야당의 대표를 살해할 의도로 흉기로 공격한 배경에 대해 정치권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진영 간 극한 대립을 원인으로 꼽는다. 정치권 일부는 이에 공감하며 진영 간 극단적인 대립을 부추기는 자극적인 언사를 자제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지난 문재인 정권부터 현재 윤석열 정권에 이르기까지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층 간 진영(굳이 보수나 진보, 우파나 좌파라 하지 않겠다) 대립은 국가 분열을 우려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수위에 이르고 있다. 특히 이 대표의 검찰 수사와 사법 리스크를 둘러싸고 양당 관계자는 물론 지지층까지 거친 설전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강성 지지층을 등에 업은 삼류 정치인과 이들의 진영 논리를 설계하고 유통시키며 돈벌이를 하는 친(親)진영 유튜버와 일부 매체까지도 홍위병으로 나서는 판이다.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가짜 뉴스와 꼬투리잡기식의 음모론은 이런 극단적인 진영 대립을 양분 삼아 암세포처럼 퍼져 있다. 이러다 보니 모든 문제에 진영 논리가 개입하고, 견강부회(牽强附會)가 판을 친다. 창의적·비판적 사고와는 분명하게 구분해야 할 ‘당파적’ 사고 체계가 확산된다.

다시 이재명 대표의 피습 사건으로 돌아가보자. 자극적인 발언을 자제하자는 일부 정치권의 자성도 잠시, 결국 하나도 변한 건 없다.

친명(친이재명)계 민주당 이경 전 부대변인은 사건 발생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은 뒷전이고 카르텔 이념 운운하며 국민 분열을 극대화하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 아닙니까?”라고 썼다. 피습 사건이 대통령 때문에 발생했다며 지지층의 격분을 유도하는 일종의 ‘격문’을 낸 셈이다.

민주당은 또 ‘가짜뉴스’와 ‘배후설’ 같은 음모론을 꺼내 들었다. 피습 사건의 충격도 잠시, 서울대병원 전원 논란으로 부산 민심이 싸늘하게 식은 데다 헬기이송 특혜 논란이 불거지며 사건의 쟁점이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흐르자 판세 반전을 위한 프레임 전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1㎝ 열상(피부가 찢겨 생기는 상처)’은 가짜뉴스라는 주장이 나온 것이 이 때부터다. 사건 직후 소방당국이 이 대표의 상처를 ‘굳이’ 1㎝ 열상으로 축소했다는 식으로 정색하고 반발한 것 역시 ‘응급상황도 아닌데 소방헬기를 이용했다’는 비판 여론에 대해 당시 이 대표가 위중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동시에 지지층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이후 민주당은 국무총리실 산하 대테러센터가 이 대표의 상태를 일부러 ‘열상’으로 축소시켰다며 정치 공세를 폈다.

친민주당 유튜버 김어준 씨는 연일 유튜브 방송에 민주당 의원들을 출연시켜 ‘배후설’을 증폭시켰다. 경찰의 ‘단독범행’ 발표에도 불구하고 마치 ‘배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이에 발 맞춰 민주당은 경찰 조사를 못 믿겠다며 국정조사와 특검까지도 거론했다.

피습 당사자인 이 대표는 지난 10일 퇴원하며 “상대를 죽이려는 증오의 정치를 끝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강성 지지층을 앞세워 증오와 혐오의 정치를 묵인 또는 방조한 이 대표에 대해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결국 ‘증오의 정치를 종식하자’는 이 대표의 발언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 17일 피습 보름만에 당무에 복귀한 이 대표는 “법으로도 죽여보고 펜으로도 죽여보고 그러고 안 되니 칼로 죽여보려 하지만 결코 죽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치 이번 피습의 배후에 윤석열 정부가 있다는 식의 메시지를 내며 민주당이 주장하는 배후설을 지지하고 나섰다. 일주일 전 퇴원 때 “증오의 정치를 종식하자”고 했던 말과는 180도 배치되는 발언이다.


이번 피습 사건은 저열한 진영 대립으로 우리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중증 정치병에 걸려 있는지 확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오는 4월 10일 국회의원 선거에서 극심한 진영 갈등을 조장하는 저질 정치인을 걸러내는 ‘정치 교체’가 이뤄지기를 희망해 본다.

윤정길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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