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달라졌다’는 말 듣는 트럼프
지난 몇 년간 현장에서 지켜본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은 항상 화가 나 있었다. 정적은 물론 같은 편에게도 막말과 저주를 쏟아냈다. 변덕이 심해 어제 말과 오늘 말이 다르다. 사실이 아닌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트위터에 올리고, A를 말하면 B 이야기를 꺼내면서 빠져나갔다. 우리가 아는 그 트럼프다.
그런데 미 대선의 첫 선거인 아이오와주 공화당 경선 현장에서 만난 트럼프는 익숙했던 모습과 달랐다. 현지 토론회에서 당내 경쟁자들을 언급하면서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과격한 언사도 없었다. 바이든의 경제 실정을 언급할 때도 논리나 표현이 정돈돼 있었다. 경선에서 압승한 뒤 2·3위를 한 론 디샌티스와 니키 헤일리에게 ‘조롱’ 대신 “고생했다. 축하를 보낸다”고 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다시 뭉쳐야 한다”고 하는 부분에선 함께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이 입을 모아 “낯설다”고 했다.
‘정치 초짜’였던 2016년 대선 당시 그의 유세장은 질서가 없어 시장 바닥을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캠프 내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문제가 튀어나와 ‘난파선’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그 8년 뒤인 현재 트럼프 재선 캠프는 준비돼 있었다. 유세장의 경호부터 행사 진행 등 모든 부분에서 매끄러워 보였다. 탄탄한 조직력으로 무장해 아이오와주 외곽 도시를 샅샅이 훑었다. 캠프 고위 관계자들은 트럼프의 압도적인 지지율에도 “안심하면 안 된다”며 내부를 다잡았다.
그간 트럼프에게 없던 건 ‘여유’였다. 그의 극렬 지지자들이 연방 의회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켜 ‘트럼프 책임론’이 일었고,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선거 진행 방해 등으로 잇따라 수사 선상에 올랐다. 작년 91건에 달하는 혐의로 4번 기소된 그는 유세 기간 수시로 뉴욕과 워싱턴DC로 돌아가 재판에 출석해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아이오와에서만큼은 자신만만하게 보였다. 과거 트럼프를 지지하는 게 부끄러워 자신을 숨겼던 이들이 이젠 당내 주류가 돼 전면에 나섰다. 이들의 지지를 업은 트럼프는 ‘통합’과 ‘희망’같은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외연 확장’에 나섰다. 최근 그는 뉴욕, 뉴저지, 미네소타 등 민주당 텃밭들도 공략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그의 본성이 어디 가겠느냐”면서도 “멀쩡하고 평범한 모습을 연출하는 ‘차분한 트럼프’가 유세에 자주 등장한다면 우리에겐 정말 위협적”이라고 했다.
뉴욕타임스, CNN 등 친(親)민주당 성향 언론들은 “트럼프에 반감을 가진 민주당 지지층이 결집하게 될 전망”이라며 그의 압승을 깎아내리고 있다. 바이든 캠프도 트럼프 재선의 위험성을 부각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달라진 트럼프 앞에서 별다른 ‘무기’ 없이 ‘반트럼프’ 전략에만 의존하는 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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