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시드니에서 만난 이점순 여사
호주 시드니의 파워하우스(Powerhouse) 박물관은 1880년대에 지어진 시드니 최초의 전기발전소 건물을 개조해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이다. 과학, 기술, 예술, 디자인, 역사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그야말로 호주를 대표하는 박물관이다.
특히 과학과 예술의 만남을 주제로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시각으로 과학을 바라보는 감각적인 전시를 자주 개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발전소 건물에서 착안한 명칭인 파워하우스 뮤지엄은 이제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가 돼 그야말로 호주 문화의 ‘파워하우스’ 가 됐다.
파워하우스 박물관에 들어서자 1785년 제작돼 런던의 화이트브레드 양조장에서 무려 102년 동안 현역으로 활약하던 ‘볼튼 앤 와트’ 엔진이 시선을 압도했다. 그 유명한 제임스 와트가 만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회전식 증기 엔진으로 산업혁명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박물관에 기증된 후 수리를 거쳐 지금도 여전히 잘 작동되고 있다는 이 위대한 인류의 산업 유산 앞에서 잠시 넋을 잃고 있던 나를 호주 박물관계의 유일한 한국인 큐레이터 김민정씨가 안내한 곳은 ‘1001’이라는 상징적인 숫자의 특별전(展)이었다.
‘1001’은 파워하우스 박물관의 50만점에 달하는 소장품 중에서 시대와 문화를 대표하는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 1천1점을 선정해 개최한 특별전인데 전시실 이전 및 개편 작업을 위해 장기간 휴관을 앞두고 펼쳐진 마지막 전시였다.
이곳에서 특별히 김민정 학예사가 안내한 곳은 도자기 파편을 퍼즐 맞추듯 이어 붙이고 금으로 틈을 메워 새롭게 재창조하는 작업으로 유명한 이수경 작가의 작품 ‘번역된 도자기’ 앞이었다. 김민정씨의 설명에 따르면 파워하우스 박물관의 50만점이 넘는 소장품 중 사실상 유일한 한국 작품이라고 한다.
이수경 작가의 작품 앞에는 어머니 이점순 여사를 기억하기 위해 딸 김문주 씨가 2019년에 기증한 것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그 시절 우리 어머니들의 흔한 이름의 상징과도 같은 이름 ‘점순’을 뜻밖의 장소 시드니에서 만나니 가슴 한 곳이 찡했다.
내가 시드니에서 이점순 여사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왜 한국 것은 없나요”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됐다. 김민정 큐레이터의 지인인 김문주씨가 파워하우스 뮤지엄을 둘러보고 난 후 김민정씨에게 한 첫 질문이었다고 한다. 그 질문을 시작으로 몇 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마침내 파워하우스 50만점의 소장품 중 첫 번째 한국 작품이 됐다고 한다. 어머니를 기리는 딸의 소중한 기억이 함께 기증돼 더욱 의미가 있어 보였다.
바야흐로 전 세계에 ‘K-Culture’의 바람이 불고 있다. 자랑스럽기도 하면서 언제 이 바람이 끝날지 일말의 걱정이 있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그래서 대중문화로 시작한 한류의 바람이 이제는 다양한 분야로 확산했으면 하는 기대를 품은 노력들이 다각도로 펼쳐지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또 다른 ‘이점순 여사’를 만날 수 있을 때 비로소 한국문화의 저력을 바탕으로 한 튼튼한 K-컬처의 나무가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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