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430] 구자곡(九子谷)의 예언
충남 논산시 연무읍에 있는 육군 훈련소 연무대(鍊武臺). 지금은 지명이 연무대로 불리지만 6·25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 지명은 구자곡(九子谷)이었다. 계룡산 맥이 흘러온 구자곡은 ‘아홉 자제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이었다. 우리나라 지명 가운데는 미래를 예언하는 지명들이 있는데 구자곡이 그런 곳이었다. 논산 훈련소는 전국 각지의 젊은 청년들이 군대 훈련을 받기 위하여 모이는 곳이 되었으니까 ‘구자곡’의 의미대로 되었다.
구자곡에는 죽본면(竹本面)이 있었다. 죽본면에는 서작골(書雀谷)이 있었고, 서작골에는 서당 선생이 한 명 살았다. 성은 이씨(李氏)였다고 한다. 해방 후인 1947년. 죽본에서 동네 이장을 하고 있던 33세의 천종용(1914~1975)은 친구인 이홍직을 따라서 서작골의 서당 선생님에게 세배를 갔다. 세배를 드리고 방을 나가려고 하니까 서당 선생은 천종용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면서 붙잡았다. “앞으로 몇 년 있다가 난리가 난다. 개벽 이래로 가장 많은 사람이 죽게 되는 난리가 될 것이다.” “어디로 피난 가면 살 수 있습니까?” “인심이 흩어지지 않는 곳이 피난처이다. 인심을 모으는 것이 피난이다.” “또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난리가 나면 내 손자 이생규가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때 내 손자를 자네가 살려줄 수 있다. 보증을 서주면 산다.”
서당 이 선생으로부터 이 예언을 들은 동네 이장 천종용은 기회가 될 때마다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는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똘똘 뭉쳐야 한다’라고 강조하였다. 말로만 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300호 정도 사는 동네였다. 이장은 동네 사람들에게 후하게 인심을 베푸는 일도 빠뜨리지 않았다. 베푸는 것만큼 강한 펀치가 없다. 6·25 몇 달 전에 신작로에다 자갈을 까는 공사를 보면서 천종용은 난리가 올 것을 직감했다.
마침내 6·25가 발발하였다. 이 선생의 손자 이생규는 고갯길을 넘어 오다가 국방군에게 붙잡혔다. 빨갱이로 오인받아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 소식을 들은 천종용은 곧장 달려가서 빨갱이가 아니라는 보증을 섰다. “만약 이생규가 빨갱이면 이장 당신이 책임져야 한다.” “내가 목숨을 걸고 책임을 지겠다.” 손자는 풀려났다. 6·25 때 다른 동네는 사람이 많이 죽었지만 천종용의 동네는 사람이 하나도 안 죽었다. 이 이야기를 필자에게 해준 사람은 이장 천종용의 아들인 천리향(79)이다. 천리향은 전통 예절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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