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역 국립대병원을 필수 의료 중추로 만들어야
대한민국 필수 의료가 위기다. 필수 의료의 위기는 병원의 위기다. 병원, 동네의원(개원), 미용·성형시장 등 의료시장에서 병원은 중증도가 높은 환자를 주로 담당한다. 고난도 의료 행위에 야간 당직 등 근무 조건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개인의 보상 수준은 동네의원과 미용·성형시장보다 오히려 낮다. 일부 동네의원은 비급여 진료를 통해, 미용·성형시장은 시장 수요의 폭발적 증가로 병원 의사에 비해 좋은 여건에서 높은 소득을 올린다. 합리적인 개인이라면 병원에 남을 유인이 없다. 일과 삶의 불균형, 높은 사법 위험 탓에 인재들이 병원을 떠나기 시작했다. 수많은 규제와 평가 또한 병원에 집중된다. 한마디로 정의롭지 못하다. 지역으로 가면 상황이 더욱 심각해진다. 이것이 대한민국 필수 의료 위기의 골자다.
처방은 명확하다. 의료 인력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의료 체계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이다. 의료 행위의 난이도, 숙련도, 시급성과 대기 비용을 수가(酬價)에 적절히 반영해야 한다. 대학병원 교수들은 임상과 연구를 균형 있게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최선을 다한 진료의 결과로 상호 파괴적인 송사에 휘말리지 않도록 적절한 보상 체계와 연계된 사법 부담 완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당직과 대기가 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할 정도로 심해선 안 된다. 정주 여건이 불리한 지역에도 의료진이 남아 의료 서비스를 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병원은 필수 의료 인력이 환자를 중심으로 협력하는 축인 동시에 부족한 인력을 한 곳에 모으는 플랫폼이 돼야 한다. 필수 의료에 종사하는 인력이 자긍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18년째 동결된 의대 정원 확대와 함께 의료 체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를 다듬고 있다. 10년 후 배출될 의사들이 일과 삶, 연구와 임상이 균형 잡힌 병원의 ‘좋은 일자리’에서 근무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19일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 의료 혁신전략’을 발표했다. 지역 국립대병원의 역량을 소위 ‘빅5 병원’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지역 거점 병원을 축으로 필수 의료 협력 네트워크를 공고히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수도권의 흡인력으로부터 지역의 버팀목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일각에서는 ‘빅5 병원’ 수준으로 육성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하지만, 지역 거점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것 외에 지역을 살릴 수 있는 대책이 있는지 되묻고 싶다.
이번에는 수사(修辭)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우선 국립대병원의 소관을 교육부에서 보건복지부로 이관해 ‘진료·연구·교육’이 균형을 이루는 필수 의료의 중추로 집중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사립대병원도 필수 의료 강화를 위해 협력하는 체계를 만들고, 지역 중소 병원과 전문 병원 등 지역 의료의 허리를 대폭 보강할 계획이다. 의원은 통합적·예방적 건강관리 중심으로 1차 의료를 책임지게 한다. ‘병원을 병원답게, 의원을 의원답게’ 만들고, 서로 네트워크로 연결해 협력하고 분업하게 하는 것이 요체다. 웬만한 질병은 내가 사는 지역에서 완결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만들려는 것이다.
이는 과감한 제도 개혁과 이해관계 조정이 필요한 난제다. 그러나 국민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의료 개혁을 더는 미룰 수 없다. 개혁 과제가 의료계의 이해와 공감 속에 완수되도록 우리 모두가 지혜와 뜻을 하나로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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