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세가 노처녀? 결혼과 출산 미루는 젊은 세대에 ‘인구 1억명’ 베트남도 골치 [사이공모닝]

이미지 기자 2024. 1. 2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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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처음 베트남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야말로 우당탕탕거리며 베트남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는게 취미입니다. 우리에게 ‘사이공’으로 익숙한 베트남 호찌민에서 오토바이 소음을 들으며 맞는 아침을 좋아했습니다. ‘사이공 모닝’을 통해 제가 좋아하던 베트남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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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때 베트남 친구와 가족들이 놀러 왔습니다. 하루 종일 서울 곳곳을 구경하고 저녁을 먹는데 친구 부모님이 물었습니다. “한국 친구는 결혼했니? 우리 애들은 결혼을 안 해서 걱정이야.” 베트남 친구는 20대 후반, 함께 온 동생은 20대 중반에 불과했습니다. “한국에는 30~40대까지 결혼을 안 하는 사람도 많다”고 대답하니 친구 부모님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여기 부모님들도 걱정이 많겠다”라고 했습니다. 20대인 친구들이 벌써부터 결혼 압박을 받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은 적이 있었지만, 속상한 표정의 친구 부모님을 직접 뵙게 되니 뭐라 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실제로 베트남에서는 20대 중 후반 친구들이 자신을 ‘노처녀’라 칭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26살 친구가 “내년에는 결혼을 해야 할텐데… 이러다 노처녀가 되겠어”라고 말해 당황스러웠던 적도 있지요.

베트남에서는 혼기(婚期)를 놓친 노총각·노처녀를 놀릴 때 ‘에 로이’(ế rồi) 혹은 ‘에 꽈’(ế quá) 등의 표현을 씁니다. 아직 20대인 베트남 친구들에게 어떨 때 이 말을 쓰냐고 했더니 “더 이상 어리지 않아서 아무도 데이트 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을 놀릴 때”라고 했습니다. 물론,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기분 나쁘지 않게 놀리는 거라는 설명도 함께였지요.

페이스북 같은 SNS에서 베트남 노총각·노처녀들의 모임도 쉽게 검색됩니다. 베트남어로 검색을 해보니 가입된 멤버가 18만명, 11만명에 달하는 그룹도 나옵니다. ‘마음 맞는 사람을 찾는다’며 자기 소개와 사진을 담은 글이 주로 올라오는데, 1998년생도 이 곳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나이로 치면 26살인 1998년생이 노처녀 그룹에서 활동해야 한다니, 한국 사람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일입니다.

◇베트남 언론 ”결혼은 더 이상 개인사가 아니다”

베트남 북부 박닌성의 한 어머니가 아들의 며느리를 구한다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VTV

베트남에서는 결혼하지 않는 아들의 짝을 찾아주기 위해 직접 ‘구인 공고’를 붙인 어머니의 이야기가 화제가 됐습니다. 베트남 북부 박닌성에서 한 어머니가 집 앞에 ‘우리 아들의 며느리를 찾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건 것입니다. 아들의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잘 생겼고, 일도 열심히 하며 아이들을 사랑합니다’라는 설명을 붙인 이 어머니는 ‘(우리 아들은) 귀신을 무서워해 밤에 놀러 나가지도 않아요’라고 첨언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최근 베트남에서는 ‘결혼하지 않는 젊은 세대’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2004년 6.23%에 불과했던 독신자 비중은 2019년 10.1%까지 많아졌습니다.

초혼 연령도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베트남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23.1세였던 베트남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꾸준히 올라 2022년 26.9세까지 증가했습니다. 젊은 세대가 결혼을 미루는 현상은 대도시에서 특히 심했는데, 베트남 남부 호찌민시의 경우 2022년 남성의 초혼 연령이 29.8세에 육박했습니다. 30살에 가까워진 것이지요.

현지 언론들은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커리어를 잃기 싫고, 결혼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 등을 내세워 결혼을 늦추고 있다”는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이를 단순한 사회적 현상이 아닌 심각한 사회 문제로 보는 것도 일맥상통합니다. 베트남 현지 언론 VTV는 “결혼을 일찍 하냐, 늦게 하느냐는 더 이상 개인사가 아니다”라며 “큰 흐름에서 이는 전 사회적인 노동력 감소와 연관된다”고 보도했습니다.

◇출산율 2명의 벽도 깨져

결혼이 늦어지는 것만이 문제는 아닙니다. 최근에는 2023년 베트남의 출산율이 1.95명을 기록해 난리가 났습니다. 베트남에서 이 출산율이 2명대보다 낮아진 것이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남성의 초혼 연령이 30세에 가까워진 호찌민시 같은 도시에서는 출산율이 이미 1.5명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하지요. 베트남 보건부 인구총국 소속 마이 쭝 선 박사는 “출산율 감소는 전 세계적인 추세이지만 베트남의 출산율 하락은 빠르고 분명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우려를 내놨습니다.

1960년대만해도 6.5명이었던 베트남의 출산율은 2020년 2.05명까지 줄어들더니 결국 1명대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현재 1억명에 달하는 베트남 인구는 2044년 1억700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2100년에는 베트남 인구가 7200만명까지 줄어든다는 예상도 있습니다.

인구 수를 기반으로 한 강력한 내수 시장과 풍부한 인력이 강점으로 꼽히는 베트남에선 청년들의 결혼 기피와 저출산이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베트남 정부 역시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 중입니다. 2명 이상의 자녀가 있는 가정에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학비를 면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준비 중이지요.

젊은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는 게 비단 베트남 만의 과제는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부는 물론, 여야(與野)가 나서서 저출산 해결을 위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요. 문제는 우리의 상황이 베트남보다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2022년 0.78명으로 채 1명이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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