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WTI가 벤치마크"…올해 美 원유생산 또 새역사 쓴다
작년 이어 기록 경신…"1440만배럴" 전망도
원유 시장 무게추 중동서 북미로 '지각변동'
지난해 사상 최대치를 찍은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올해에도 새 역사를 쓸 전망이다. 풍부한 공급량이 유지되면서 중동 전쟁으로 출렁인 국제유가를 안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21일 CNBC 방송에 따르면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이달 둘째 주 미국의 일일 원유 생산량을 1330만배럴로 집계했다. 주간 기준 역대 최대다.
업계에선 이런 추세가 올해 지속될 거란 관측이 나온다. 맥쿼리는 올해 예상 생산량을 하루 1400만배럴로 예측하고 있다. 마이클 워스 셰브런 최고경영자(CEO)는 이달 초 골드만삭스가 주최한 에너지 관련 콘퍼런스에서 “작년 증가세는 예상보다 강했다”면서도 “(올해) 하루 1350만배럴, 혹은 그 이상의 생산량이 나타나더라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70~80달러선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어 원유 생산업체들로서는 생산을 멈출 유인이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맥쿼리의 월츠 챈슬러 에너지 전략가는 “WTI의 가격이 배럴당 50달러대로 떨어지지 않는 이상 증산 흐름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셰일오일 업체들의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47달러에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미국산 원유만을 대표했던 서부텍사스중질유(WTI)가 글로벌 벤치마크로 기능해 온 북해산 브렌트유를 대체하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미 싱크탱크 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에너지 전문가 아디 임시로비치는 “미국이 전 세계 가격을 책정하고 있다”고 했다. 다니엘 예긴 S&P글로벌 부회장 역시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미국과 캐나다에서만 150만배럴의 원유가 새로 공급됐다”며 원유 시장이 ‘북미 어드밴티지’를 얻고 있다고 짚었다.
그 결과 원유 시장에서 전통적으로 ‘석유 카르텔’에 속하지 못했던 국가들의 영향력은 점차 커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미국을 포함해 캐나다, 브라질, 가이아나 등에서 원유 생산이 늘면서 원유 시장에 초과 공급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들 국가에서의 공급량이 일일 1억350만배럴로 전년 대비 150만배럴 늘어나는 동안 전 세계 수요 증가량은 일일 230만배럴에서 120만배럴로 줄어들 거란 전망이다.
공급량 결정권을 쥐고 국제유가의 흐름을 좌우해 오던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위상이 한층 더 약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OPEC플러스(OPEC과 러시아 등 OPEC 외 주요 산유국 간 협의체)의 감산 조치는 국제유가를 부양하는 데 실패했다. WTI와 브렌트유는 작년 한 해 동안 10% 이상 하락했고, 홍해를 지나는 유조선 등 민간 선박에 대한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이 시작된 이래로도 5% 가까이 떨어졌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홍해에서의 ‘무역 대란’에도 불구하고 브렌트유가 배럴당 80달러를 넘지 못했다는 데 주목했다.
전 세계 원유 사업의 무게추가 중동에서 북미로 옮겨가고 있다는 진단이다. 예긴 부회장은 “중동 긴장이 유가를 끌어올리지 못한 건 놀라운 일”이라며 “미국이 세계 최대 산유국 지위에 오르면서 시장 심리가 달라졌다”고 했다. 미즈호증권의 에너지 선물 전략가 밥 야거도 “브렌트유보다 저렴하고 지정학적 위험으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로운 WTI가 더욱 매력적인 투자처로 떠오르면서 OPEC이 고객들을 잃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자재 데이터 업체 케이플러(Kpler)에 따르면 지난달 유럽으로 수출된 미국산 원유는 사상 최대인 하루 230만배럴을 기록했다. 맷 스미스 케이플러 미주 담당 분석가는 “유럽 정유사들은 홍해에서의 배송 차질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중동산 원유 대신 대서양에서 안전하게 넘어 온 원유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중동 지역에서의 확전 양상에 따른 유가 반등 가능성은 상존한다. 골드만삭스는 서방 국가들이 이란과 직접 대치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에서도 운송 차질이 발생할 경우 국제유가가 두 배가량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OPEC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 조치를 풀어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비키 홀럽 옥시덴탈페트롤리엄 CEO는 “미국은 시장에 너무 많은 공급을 주입하는 데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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