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하정민]“중동 분쟁 이면에는 ‘힘 빠진 美’… ‘트럼프 2.0’ 가능성도 갈등 키워”

하정민 기자 2024. 1. 21.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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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전쟁 100일…
중동 전문가 인남식 교수
《“이스라엘, 하마스, 이란 등 중동 전쟁의 이해당사자 모두 전쟁의 장기화를 내심 바라고 있다. 노회한 중동 각국 지도자의 장기 집권, 친(親)이스라엘 성향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 또한 역내의 분쟁과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다.”

국내의 대표적인 중동 전문가이며 지난해 11월부터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56)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 발발 100일을 맞아 내린 진단이다. 그는 ‘슈퍼 선거의 해’를 맞아 세계 각국에서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성향의 정치인이 득세하는 와중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중동 전쟁 또한 쉽사리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세계 곳곳의 분쟁 강도와 빈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의 명소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아야 소피아’ 앞에 선 국내의 대표 중동 전문가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지난해 11월부터 이스탄불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그는 “현지 연구를 통해 중동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는 비극을 끝내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남식 교수 제공
인 교수는 개전 100일 다음 날인 이달 15일 동아일보와 화상 인터뷰에 이어 최근 중동 곳곳을 공격한 이란에 파키스탄이 보복해 서남아시아로도 확전 우려가 고조된 18일 추가 서면 인터뷰를 갖고 “중동에서 일어나는 전쟁 및 분쟁의 근본 원인은 미국의 세력 약화”라고 분석했다. 미국 중심의 단극(單極) 체제가 중국 등 다극(多極) 체제로 바뀌면서 미국은 그 대처에도 바빠 ‘세계의 화약고’ 중동을 과거처럼 관리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분쟁의 상시화, 일상화, 장기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며 “고립주의를 외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이 갈등이 격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영국 더럼대에서 중동정치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동에 대한 국내의 관심이 높지 않을 때부터 각종 강연과 기고로 중동을 알리며 명성을 얻었다. 오래전부터 아랍 주요국을 누볐지만 그럴수록 아랍계가 아닌 중동의 세 나라, 즉 이스라엘(유대계), 튀르키예(튀르크계), 이란(페르시아계)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며 “이전 연구년을 이스라엘에서 보냈고 이번에 튀르키예로 왔으니 다음 연구년은 이란으로 가겠다. 이를 통해 중동 갈등의 연원과 해결 방안을 입체적으로 탐구하고 싶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100일을 넘겼다.

“양측 모두 전쟁을 빨리 끝낼 동기가 부족하다. 하마스는 가자를 넘어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도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를 대체할 지배세력이 될 속내를 보이고 있다. 전쟁 발발 후 서안지구 내 하마스의 지지율이 올랐다. ‘이스라엘의 부역자 같은 무능한 PA 대신 이스라엘과 맞서는 우리를 선택해 달라’는 주장이 먹히는 것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쟁 중 수장을 교체하지 않는다. 단결해야 한다’는 여론에 기대어 총리직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네타냐후 내각이 거듭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와의 교전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현직 총리 최초로 재판을 받고 있고,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사전에 감지하지 못한 비판도 큰 네타냐후 총리는 전선(戰線)이 넓어져야 정치 생명이 연장되는 측면이 있다.

하마스를 후원하는 이란 또한 ‘외부의 적’을 세력 확장의 명분으로 삼고 있어 사태의 해결이 쉽지 않다. 네타냐후 총리(75)와 마무드 아바스 PA 수반(89), 하마스 지도부,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85) 등은 다 장기 집권 중이다. 모두 내부 반대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정권 연장에만 치중하고 있다.”

―이번 전쟁으로 약 2만5000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희생됐다. 미국의 저강도 작전 요구나 국제사회의 휴전 압박이 거센데도 왜 이스라엘은 받아들이지 않는가.

“선제공격을 당했으니 면피용으로라도 두 조건 중 최소 1개는 충족돼야 휴전을 검토할 것이다. 이번 공격을 주도한 ‘하마스 2인자’ 야히야 신와르를 제거하거나 하마스가 억류 중인 약 130명의 인질 중 상당수를 돌려받는 것이다. 어느 쪽도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이스라엘이 휴전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는 11월 미 대선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현재 네타냐후 총리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사이는 미지근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신임 이스라엘 총리가 집권하면 곧바로 워싱턴 백악관으로 초청하는 관례를 깼다. 2022년 12월 세 번째로 집권한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해 9월 뉴욕 유엔 총회에 참석했을 때 겨우 만났다.

반면 ‘브로맨스(bromance)’로 불릴 만큼 네타냐후와 가까웠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당시 텔아비브에 있던 주이스라엘 미국대사관을 첨예한 종교 분쟁지 예루살렘으로 이전했다. 이스라엘,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의 3각 수교도 중재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처럼 트럼프와 가까운 내가 총리로 있어야 미국을 움직일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될 때까지 전쟁을 지속하며 버티려 할까 걱정이다.”

―이번 중동 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누구인가.

“이란이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후 그 이념을 수호하고 이슬람권 전체로 확산시키는 것을 ‘국시(國是)’로 삼고 있다. 제재로 인한 심각한 경제난에도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등을 지원하는 이유다. 특히 시아파 정체성을 이용해 역내 패권국이 되려는 생각이 뚜렷하다. 이미 레바논 시리아 예멘 이라크와 자국을 잇는 거대한 ‘시아파 벨트’를 구축했고 이번 전쟁으로 미국의 손발이 묶인 사이에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하마스의 도발 전까지 중동의 주인공은 이란의 경쟁자 사우디아라비아였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물밑에서 수교 협상을 벌였고 미국에는 원자력발전소 기술 이전, 동맹 수준의 안보 협력을 요구했다. 수교가 이뤄졌다면 이스라엘이 거침없이 아라비아반도를 넘나들며 이란을 군사적으로 위협할 수 있으니 이란으로서는 절체절명의 위기로 인식할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전쟁으로 상황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이제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등이 공동으로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다. 이란은 이 무장단체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라는 전략적 입지를 구축했다. 다만 이란의 앞날도 녹록지 않다. 히잡 의문사 규탄 시위 등 사회적 저항이 확인됐고 경제난은 매우 심각하다. 신정일치 체제를 지지해 온 빈곤층이 불만을 갖기 시작하면 진짜 위기가 올 것이다.”

―휴전 후 가자지구를 누가 다스릴 것이냐는 문제에 현실적인 해법은….

“230만 명 가자 인구의 절반은 미성년자다. 2007년 하마스가 가자를 장악한 후 다른 통치 체제를 경험한 적이 없다. 반(反)이스라엘, 반미 노선이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를 치러도 하마스와 비슷한 강경 성향의 조직이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 하마스를 없애도 제2, 제3의 하마스가 나올 것이다.

미국은 PA가 서안지구와 가자를 모두 통치하는 것을 내심 바란다. 이론적으로 가장 나은 대안이나 무능과 부패로 서안지구에서조차 인기가 낮은 PA가 가자 민심을 얻을 가능성이 낮다. 창살 없는 수용소에 갇힌 듯 살아왔던 가자 주민들은 PA가 이스라엘에 붙어 호의호식했다고 여긴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국제사회가 일종의 신탁 통치를 하자고 주장하나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중동 일대의 다른 전쟁과 분쟁도 장기화, 만성화했다.

“시리아는 2011년부터, 예멘은 2015년부터 지금까지 내전 중이다. 리비아 또한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축출된 2011년부터 준내전 상태다. 궤멸된 줄 알았던 이슬람국가(IS)도 아직 건재하다. 미국의 힘과 영향력 약화가 주요 원인이다. 싫든 좋든 미국이 단일 패권국으로서 중동에 관여할 때는 최소한의 역내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에 몰두하는 것만으로도 버겁고 인도태평양에 주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미국의 고립주의가 심화할 것이다. 중동을 포함한 세계 곳곳의 분쟁의 강도와 빈도 또한 높아질 가능성이 있어 걱정이다.”

―중동 전문 학자로서 해법이 안 보이는 상황을 볼 때 어떠한가.

“무력하다. 사람이 이렇게 많이 죽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 죽음에 익숙해지는 것은 더 무섭다. 인간을 구원해야 할 종교가 살상 명분으로 작용하는 것도 비통하다. 하지만 암울한 시기에 비전을 가진 지도자가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켰음을 인류 역사의 많은 부분이 보여준다. 그런 지도자의 출현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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