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80일 앞두고 … 용산·여당 '난기류'
한동훈·김경율 명품백 발언에
대통령실 불쾌감 표출 '경고'
韓 입장 안굽히자 사퇴 요구
비대위 한달만에 내홍 휩싸여
유승민 "주말 막장 드라마"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사실상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21일 여권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내홍으로 빠져들었다. 두 사람은 검찰 시절 한솥밥을 먹었고, 대선 승리 후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을 법무부 장관에 발탁 기용했다. 여당은 총선 패배 위기에 내몰린 국민의힘을 살려내기 위해 한 위원장을 간판으로 내세웠고, 그는 단숨에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올라섰다. 지난달 26일 비대위원장에 취임했으니 아직 시간이 한 달도 채 흐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신구 갈등이 폭발하면서 총선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 제기되는 형국이다.
갈등이 터진 이유는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수수와 이에 대한 대응책을 놓고 양측 의견이 달랐던 데 있다. 특히 한 위원장이 영입한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의 강경 발언이 윤 대통령 심기를 자극하는 기폭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 측근 의원들과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한 위원장에 대한 '기대와 신뢰'의 철회라는 표현까지 썼다. 대통령실은 한 위원장 거취에 대해 직접 관여하지 않겠다며 선을 긋기는 했지만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공천과 관련한 윤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라고 설명하며 한 위원장에 대한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앞서 김 위원은 지속적으로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문제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고, 프랑스 혁명을 불러온 마리 앙투아네트에 빗대기도 했다.
이날 대표적인 친윤(친윤석열)계인 이용 국민의힘 의원은 의원들이 모인 텔레그램 대화방에 '윤석열 대통령이 한 위원장의 줄 세우기 공천 행태에 실망해 지지를 철회했다'는 내용이 담긴 기사 링크를 공유했다. 또 보수 성향 유튜버 발언을 인용해 "설득력 있는 사과 불가론을 제기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김 여사 의혹과 관련해 대통령실과 결이 다른 태도를 취한 한 위원장을 사실상 '저격'한 셈이다. 이 같은 이 의원 메시지는 친윤 의원들의 한 위원장 사퇴 요구와도 궤를 같이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일부 친윤 의원이 한 위원장의 힘을 빼기 위해 대통령실에 여러 가지 이야기를 넣고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한 위원장은 지난 18일 김 여사의 명품 백 수수 의혹과 관련해 "그 문제는 기본적으로 함정 몰카이고,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 맞다"면서도 "그렇지만 전후 과정에서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고, 국민들이 걱정하실 만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한 위원장은 김 위원 등의 강경 발언을 제지하지 않고 "당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을 견지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일각과 친윤계에선 "선을 넘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 위원장이 공천 과정에서 자신의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사천'을 할 우려가 있다고 봤다. 친윤계 의원들이나 대통령실 출신들이 공천에서 불이익을 볼 가능성도 제기됐다.
한 위원장은 앞서 인천 계양구에서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을, 서울 마포구에서 김 위원을 직접 총선 후보로 소개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의 '맞수'로 이들을 내세웠다. 이 과정에서 해당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던 당협위원장들이 반발했다.
한동훈 비대위가 출범한 지 한 달도 채 안 돼 급격히 흔들리면서 당내에서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데다 한 위원장 외에는 특별한 대안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한 위원장을 비대위원장으로 내세웠을 때 가장 큰 단점이 다른 대안을 못 세운다는 것이었다"며 "우리 당이 살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동훈 비대위 체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는 "예상보다 빠르긴 하지만 한 위원장과 친윤계 간 충돌은 예견된 일"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한 위원장이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온 뒤 핵심 친윤 의원들 간에 '이상 기류'가 몇 차례 감지됐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윤재옥 원내대표다. 김 위원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당 지도부가 김건희 여사 명품 백 논란을 '정치 공작'으로 규정한 데 대해 "그게 우리 당내 TK(대구·경북)의 시각이다. 본인 선수가 늘어나기만을 바라는 분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윤 원내대표는 "인식 차이를 지역별로 갈라서 얘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특정 지역과 관련해 발언한 부분에 대해서는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친윤 핵심인 이철규 의원과도 불편한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이 의원은 지난해 총선 실무를 총괄하는 사무총장직을 맡았다가, 같은 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인재영입위원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공천관리위원을 겸직하는 문제를 놓고 한 위원장 측과 묘한 기류가 흘렀다.
유승민 전 의원은 이날 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주말 밤에 이건 또 무슨 막장 드라마냐"며 "김기현을 내쫓고 직속 부하 한동훈을 내리꽂은 지가 한 달도 채 안 됐는데 또 개싸움이냐. 80일 남은 총선은 어떻게 치르려고 이러는 건가"라고 꼬집었다.
[신유경 기자 / 박윤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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