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명품백 사과’ 놓고 윤석열-한동훈 정면충돌
‘마포을 사천’ 논란은 표면적 이유
대통령실이 21일 취임한 지 한달도 안 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갑작스러운 사태 전개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대통령실은 한 위원장이 시스템 공천 원칙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사퇴 이유를 언급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 시절부터 20여년 연을 이어온 최측근 한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한 것은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한 갈등이 핵심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이날 한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한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에 대한 신뢰를 철회했다는 보도 등에 관해 “한 위원장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철회했다는 논란과 관련해, 이 문제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공천에 대한 대통령의 강력한 철학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이 언급한 시스템 공천은 최근 불거진 김경율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에 대한 한 위원장의 태도를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한 위원장은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 인사회에서 “마포을 지역구에 ‘개딸전체주의’, ‘운동권 특권 정치’, ‘이재명 사당화’로 변질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있다”며 “김경율 위원이 (4월 총선에서) 정청래와 붙겠다고 나섰다”고 말하며 김 위원을 단상 위로 불러 함께 손을 들어 올렸다. 조국 사태 당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고 ‘조국 흑서’를 쓴 김 위원은 한 위원장이 직접 비대위원으로 영입했다. 당 안에서는 한 위원장이 공천 절차를 무시하고 임의로 김 위원을 낙점했다는 비판이 나왔고, 한 위원장은 “공천은 시스템에 따라 이뤄질 것”이라고 해명했다. 대통령실이 사퇴 요구 이유로 삼은 ‘시스템 공천’에 대해 한 위원장이 지키겠다는 뜻을 당일 표시한 셈이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총선을 두달 남짓 남긴 시점에서, 윤 대통령과 2003년 대검 중수부에서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하면서 만난 뒤 20여년 연을 이어온 최측근을 내치겠다는 뜻을 전한 것이다.
당 주변에서는 공천보다 김건희 여사라는 ‘역린’을 건드린 것이 갈등의 핵심이라는 말이 나온다.
한 위원장은 김 여사가 2022년 9월 재미 목사 최재영씨로부터 ‘크리스챤 디올’(크리스티앙 디오르) 가방을 선물받는 장면을 공개한 지난해 11월 ‘서울의 소리’ 보도와 관련해, 지난달 비대위원장 취임 직전 기자들에게 “몰카 공작이라는 건 맞지 않느냐”고 했다. 하지만 지난 18일에는 “함정 몰카”라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그렇지만 전후 과정에서 아쉬운 점이 있고, 걱정하실 만한 부분들이 있었다”고 말했고, 19일에도 “국민의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고 거듭 밝혔다. 한 위원장이 직접 영입한 김경율 위원도 여러 인터뷰에서 “대통령이든 영부인이든 (사과) 입장을 표명하는 게 국민의 감정을 추스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해왔다.
이후 대통령실은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 19일 “선친과의 인연을 앞세워 영부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이라고 했고, 21일에도 고위 관계자가 “공작적 행태”, “함정을 파 궁지로 몬 것” 등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의 기류가 알려지자 친윤계 의원들도 일제히 한 위원장을 공격했다. 한 친윤 의원은 21일 한겨레에 “제일 어리석은 게 윤 대통령과 차별화다. 지도부가 말 한마디 잘못해서 당을 혼란에 넣으면 되냐”고 한 위원장을 직격했다. 이용 의원은 텔레그램 의원 단체방에 ‘김 여사 문제에 사과하는 순간 민주당은 들개처럼 물어뜯을 것’이라며 사과 주장을 반박하는 보수 유튜버의 글을 공유했다. 이용 의원은 한겨레에 “김경율 비대위원이 ‘몰카 함정’이라는 본질은 빼고 ‘김 여사 사과’만 주장하는데 한 위원장이 정리는커녕 김 비대위원을 마포을 후보로 띄워줘 실망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한 위원장에게 사퇴 요구를 하며 김경율 위원에 대한 유감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한겨레에 “김경율 문제를 표면적으로 문제 삼는 건데, 그게 사퇴할 정도의 잘못이냐. 아직 공천을 한 것도 아니지 않냐”며 “결국에는 그거(김건희 명품백) 문제다”라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이날 저녁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에서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고 말했으나, 리더십에 치명상이 불가피하게 됐다.
급작스러운 사태에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총선 승리를 위한 ‘짬짜미’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음식점에 주방은 하나인데 전화받는 상호와 전화기가 두개 따로 있는 모습으로 서로 다른 팀인 척해서 이 난국을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초록은 동색이다”라고 적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신민정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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