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사퇴 요구’, 한동훈 ‘즉각 거부’···총선 앞 정면충돌

유설희 기자 2024. 1. 21.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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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김건희 리스크’ 대응 두고 불편함 표출
비서실장·친윤계, 한 위원장 만나 ‘사퇴’ 요구
한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 입장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4년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명품 가방 수수 의혹 등 ‘김건희 리스크’ 대응 방안을 두고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충돌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여당 주류 의원들이 한 위원장 사퇴를 요구했고, 한 위원장은 사퇴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21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한 국민의힘과 한 위원장의 최근 행보에 대해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SBS에 이관섭 대통령실장이 이날 한 위원장에게 직접 사퇴하라는 윤 대통령의 입장을 전했다고 밝혔다.

여권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명품 가방 문제는 함정 취재로 인해 벌어졌는데 당에서 이런 부분을 빼놓고 김 여사 사과만 요구하는 데 대해 불편한 감정을 내비쳤다고 한다.

여당 내 친윤석열(친윤)계 의원들도 이 실장과 함께 이날 한 위원장을 만나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여당 주류 인사들은 한 위원장의 김경율 비상대책위원 ‘자객공천’을 한 위원장 개인 정치용 ‘사천’이라며 사퇴를 요구했다고 채널A는 보도했다.

지난 대선 당시 윤 대통령을 수행한 이용 의원은 이날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을 향한 지지를 철회했다’는 취지의 언론 보도를 국민의힘 의원 단체 채팅방에 공유했다. 그는 전날에는 ‘김 여사 명품 수수 논란과 관련해 사과해서는 안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대통령실은 한 위원장 사퇴를 요구했다는 보도와 관련해 “비대위원장의 거취 문제는 대통령실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며 한 비대위원장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철회했다는 논란과 관련해서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공천에 대한 윤 대통령의 강력한 철학을 표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 위원장은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실 사퇴요구 관련 보도에 대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입장’이란 제목의 입장문을 통해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습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과의 갈등을 사실상 인정하면서 비대위원장 직에서 물러날 뜻이 없음을 확인한 것이다. 한 위원장은 앞서 여당 의원들의 사퇴 요구와 관련해서도 “당의 대표로서 할 일을 하겠다”는 입장을 주변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윤 대통령 측에서 취임 한 달도 안된 한 위원장의 거취 문제까지 제기한 배경에는 김 여사 리스크에 대한 입장차가 자리잡고 있다.

한 위원장은 취임 전엔 쌍특검에 대해 “정치 공작”이란 입장이었다. 그런데 지난 18일 “기본적으로 함정 몰카”라면서도 “전후 과정에서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고 국민이 걱정하실 만한 부분이 있었다”고 말하며 미묘한 입장 전환 가능성을 내비쳤다. 19일에는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고 말했다.

특히 김 비대위원의 김 여사 사과 주장이 기름을 부은 것으로 보인다. 김 비대위원은 지난 17일에는 김 여사의 사과를 요구하며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원인으로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와 난잡한 생활을 지적했다. 김 비대위원이 “바짝 엎드려서 사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여당 내에서는 김 여사가 사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한 위원장은 이런 김 비대위원을 억제시키기는 커녕 ‘자객 공천’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대통령실과 친윤계 의원들에게 공격 빌미를 제공했다. 한 위원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김 비대위원이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역구인 마포을에 출마한다고 소개해 ‘사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통화에서 “공천은 당에서 하는 것이고 그 과정은 공정하게 처리돼야 한다는 게 원칙”이라며 “윤 대통령은 어떤 경우에도 대통령실 참모들에 대해서도 특혜는 없다고 강조해 왔다”고 밝힌 바 있다. 겉으로는 시스템 공천을 외면하는 ‘사천’이 명분이지만 배경에는 김 여사 리스크 대응을 둘러싼 입장차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여당에서 공개적인 사퇴 요구가 분출한 이상 한 위원장은 선택의 기로에 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의 요구에 맞춰 한 발 물러서느냐, 아니면 이번 기회를 ‘윤석열 아바타’ 이미지를 벗는 계기로 삼느냐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퇴론이 분출된 21일은 한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에 지명된 지 한 달이 되는 날이다. 한 위원장은 그간 전국 순회로 세몰이를 하고 빠르게 당을 ‘한동훈 체제’로 바꿨다. 하지만 한편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뛰던 운동장에 갇혀 있다”는 평가가 따라다녔다. 보수 지지층을 한 데 끌어모았지만 선거의 키를 쥔 중도층의 마음을 돌리진 못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7일 BBS 라디오에서 “한 위원장이 전국을 다녔지만 (당내) 신년회를 위주로 다녔다. 중도와 접촉면은 많지 않았다”며 “활동 폭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일단 한 위원장은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를 거부하고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과의 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갈등이 주목도를 높이기 위한 ‘약속대련’ 수준에서 그칠지, 총선을 앞두고 현재와 미래 권력이 충돌하는 파국으로 이어질지 주목되는 순간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한 위원장이 이번 일로 인해 물러날 수도 있느냐는 관측에 대해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충돌은 한 위원장에게 전적으로 유리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이준석 전 대표와 갈등을 빚다가 ‘친윤’인 김기현 전 대표로 당대표가 교체된 일과 비교하며 “거의 똑같은데 상황은 전혀 다르다”며 “한 위원장이 명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100% 지는 싸움”이라며 “이렇게 되면 당은 윤 대통령을 버리고 총선을 치를 수밖에 없다. 당이 선거 치르기는 너무 좋다”고 말했다.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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