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 공정성 노력을 수포로 만드는 주창 저널리즘
저널리즘 원칙을 벗어난 한국의 언론 관행 중 많은 것들이 독재 시절에 생겨났다. 권력 눈치를 보는 과정에서, 반대로 권력의 위세를 뚫고 진실을 알리려는 과정에서 굳어진 것들이다. 예를 들어, 한국 언론은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안을 사건·사고 기사 방식으로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맥락은 무시한 채 언제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만 알리고 만다. 연구자들은 이것이 독재 정권 아래, 표면적 사실만 다룸으로써 권력이 싫어하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피하려는 데서 비롯됐다고 분석한다. 이런 사건·사고형 기사 쓰기는 수습 기간 등 입사 초기에 주로 경찰서를 취재하며 배운다. 민주화 이후 이 경향은 ‘따옴표 저널리즘’이라는,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하지 않고 남의 말만 그대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변태했다. 객관이라는 명분 아래 책임도 지지 않고 자극적 표현을 배달해 눈길도 끄는 고효율 방식이다.
강고한 국가 권력 아래 정보공개의 불충분성 등을 극복하는 방편으로 활용해온 것들도 많다. 예를 들어, 수사 상황을 빼내 권력이 숨기려는 비리를 폭로하는 일이다. 그러나 민주화된 현실에서 이것은 거꾸로 검찰 등 권력이 정보를 선별적으로 제공하면서 언론을 활용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런 ‘형식적 객관주의’에 더해 ‘신념형 주관주의’가 두드러진다. 그것은 앞선 객관 보도의 ‘양시양비론’과 ‘기계적 중립’을 비판하는 논리를 슬쩍 가져온 것이다. 결론은 스스로 판단하는 바를 용기 있게 설파하는 게 옳다는 신념으로 이어진다. 극한 경쟁 상황에서 정통 신문과 방송에서조차 시선 끌기용 선정적 수단이 진실 추구라는 외피를 쓰고 나타난다. 일부 사실의 침소봉대, 취사선택 등을 통한 왜곡된 증거만으로 주장을 펼치는 기사는 양반이다. 근거 없는 매도, 차별, 혐오 등을 전제로 한 사설이나 칼럼이 일부 주류 신문에 버젓이 등장한다. 기자의 의견이 기사, 해설, 사설, 칼럼 등을 구분하지 않고 지면 전반에 펼쳐진다. 방송 리포트에선 “~해야 할 것입니다”류의 주장문이 쉽게 등장한다.
기자나 방송사의 의견 표명은 하지 않는 것이 방송 저널리즘의 원칙이다. 그러나 일부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는 “OOO의 생각”이라는 코너로 주관을 장황하게 펼친다. 어떤 진행자는 자기주장에 나서는 것은 물론 유튜브 등 다른 매체에 가서 특정 정파 논객이 되어 열변을 토한다. 아예 특정 시각의 유튜브를 별도로 진행하는 지상파 진행자도 있었다. 그리고 다시 프로그램으로 돌아와 다시 중립적(인 척하는) 태도로 변한다. 언론인은 배우가 아니다.
권력은 관행에서 비롯된 작은 잘못이나 실수를 빌미로 ‘서울의 봄’을 재연한다. 이를 비판하고 저항하는 이들에게는 오류를 지적하거나 자성할 겨를이 없다. 탄압을 정당화할 것 같기도 하다. ‘자유와 독립’ 훼손의 외상을 지닌 동료들은 언론 자유 침해가 아닐까 해 주저하기도 한다. 그래서 잘못은 당연한 방식, 즉 관행으로 굳어진다. 언론 침탈의 또 다른 해악이다. 어떤 이들은 높은 시청률을 시민 지지의 증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시청률은 그 프로그램의 기조에 동의할 가능성이 큰 일부 시청자 수일 뿐이다. 어떤 이들은 한국 언론 지형의 불균형성과 무도한 탄압이라는 ‘한국적 현실’로 ‘탁상 공정론’을 반박한다. 그러나 박정희 독재의 ‘한국적 민주주의’나 김씨 일가 세습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도 다 이유가 있었다.
근인은 불성실성이다. 사실을 차곡차곡 모아 진실을 찾아가는 길보다 주관적 단정이 쉽기 때문이다. 공정성 수호를 위해 희생해 온, 그리고 지금도 일상의 보도 현장에서 진실 추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많은 동료 언론인의 노력을 도매금으로 편파로 몰리게 하는 일이다. 시청자 일부가 아닌 시민 다수의 신뢰를 받을 가능성을 없애는 행위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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