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센서등

기자 2024. 1. 2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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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까봐 뒤돌아보길 주저한다
너는 또 보이지 않고 나는 구덩이를 판다
깊어서 빠져나갈 수 없다 물구나무서서
땅을 든다 는개처럼 내리는 불빛
그림자극이 시작된다
찰나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현관 우산에서 흐르는 빗물
가지런히 정박한 신발들
저녁 항구는 적막하다 젖은 피부가
부레를 찾고 폭우가 거세진다 하늘에서 바다로
물길이 이어져 수평선은 무의미해지고
구름까지 헤엄쳐 간 고래
너는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

달에서 벗어나려는 파도의 몸부림
마저 끄지 못한 꽁초 같은 별이
깜박깜박 농간을 부린다
몸속에서 달빛이 들끓는다
이전은 이후보다 못 한 말이 많아서
밤이라는 빈칸이 필요하다

이동우(1970~)

집으로 돌아온 시인이 현관문을 열자, 머리 위로 센서등 불빛이 쏟아지고 ‘그림자극’의 막이 올라간다. 시인은 모든 것이 “사라질까봐” 뒤돌아보기를 주저한다. 애타게 찾던 ‘너’는 보이지 않고 시인은 등을 돌린 채 ‘구덩이’를 판다. 너라는 구덩이는 파면 팔수록 더욱 깊고 어두워진다. 때로는 “물구나무서서 땅을” 들던 날들도 있었다.

장면이 바뀌어 시인은 빗물 흐르는 우산을 현관에 세워 둔다. “정박한 신발들.” 현관 바닥은 작은 “항구”로 변하고, 그 위로 폭우가 점점 거세게 쏟아진다. 시인은 “구름까지 헤엄쳐 간 고래”를 더는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센서등은 파도 위에 몸을 실은 달처럼 빛나다가, “마저 끄지 못한 꽁초 같은 별”처럼 깜박거리다가 소멸하겠지만, 다시 인기척을 기다릴 것이다. 시인은 “찰나”에 “용기”를 주고 싶었다지만, 그림자극은 서둘러 막을 내린다. “밤이라는 빈칸”을 남겨둔 채.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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