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새로운 이웃 ‘이주민’
연초 한국계 감독과 배우들이 만든 드라마 <성난 사람들>이 미국 방송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에미상을 비롯해 골든글로브, 크리틱스초이스 등 주요 상들을 휩쓸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감개무량한데,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할리우드 속에 나타난 한국 이주민들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고 초라한, 주변인 이미지가 강했다.
미국 코미디 수사물인 <몽크>에선 주인공 탐정이 어느 날 갑자기 말문이 막혀 영어 대신 괴상한 언어를 쏟아내자 그를 태운 택시운전사는 “혹시 한국어냐? 한국인들은 영어도 배우지 않고, 우리들의 복지를 뺏어간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대목이 나온다. 모녀 이야기를 다룬 인기드라마 <길모어 걸스>의 경우 주인공 절친인 한국계 여고생은 부모 허락 없이는 남학생과 대화조차 못하고, 학교와 교회 일만 강요받는 등 폐쇄적인 일상을 살아간다. 이런 설정은 주인공인 딸의 의사와 선택을 존중하고 매사 대화로 해결하려는 미국인 엄마와 시종일관 대비된다.
외신과 문화평론가들은 이번 성과가 <미나리> <파친코> 등에 이어 한인 디아스포라(조국을 떠나 타국에 거주하는 공동체집단)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이 드디어 대중문화 본고장에서도 긍정적 평가를 받게 됐음을 강조한다. 한인 이주민 문화가 이상하거나 낯선 게 아닌, 다양성 차원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인정욕구를 거꾸로 보면 한국에서 급증하는 필리핀·베트남 등 ‘또 다른’ 이주민들의 디아스포라에 대해 우리 사회는 얼마나 이해하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은 저출생으로 인한 고령화 심화와 인구 감소를 겪으며 외국인 이주가 크게 늘고 있다. 이민자 비율은 1995년 0.2%에서 2020년 3.9%로 늘었고, 규모 역시 같은 기간 8만5000여명에서 200만명을 넘은 상태다. 집 밖에서 외국인을 마주치는 게 더 이상 특이한 일이 아니고, 심지어 외국인 노동자가 급속도로 유입되는 지방 소도시에선 이주민들이 원주민들을 압도하는 공동체도 생겨나고 있다. 충남 아산 둔포초등학교의 경우 전교생 350여명 중 70%가량이 다문화 학생들이다.
세계 최저 수준의 합계출산율이 당장 개선될 가능성이 없는 만큼 한국 사회의 외국인 의존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필요성에 정부는 작년 재외동포청을 신설한 데 이어 여성가족부·교육부·고용노동부 등 여러 부처에 흩어진 이주민정책을 한데 모은 이민청 설립 추진을 본격화하고 있다. 법무부는 작년 말 확정한 제4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에 이민청 설립을 포함했고, 여당은 조만간 관련 법 개정안을 발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력 및 인구 감소 직격탄을 맞고 있는 지자체들은 앞다퉈 외국인 유치 정책을 펼치고 있다. 경기도·경북도·광주광역시는 외국인 관련 과를 만들어 지자체 차원의 정책을 발굴하고 있다. 전남도의 경우 한발 더 나아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올해 3개과 규모의 ‘인구청년이민국’이 출범했다. 이민청 유치에 나선 지자체만 해도 전남도, 충남도, 경북도, 경기 안산시 등 여러 곳이다.
문제는 이 같은 움직임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민청 설립을 통해 효율적인 노동력 확보를 강조할 뿐 다양한 문화 유입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당초 제3차 계획 때 포함된 외국인 차별·혐오 방지 대책은 빠져 있고, 불법체류자 단속 강화도 예고한 상태다. 반면 그동안 외국인 노동자들의 지역 정착을 도왔던 전국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44곳의 예산은 전액 삭감돼 현장에선 큰 혼란이 일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윤석열 정부를 지지하는 보수 시민단체들조차 일부는 이민청 설립에 반대한다. 대구 이슬람사원 건축을 둘러싼 지역 갈등은 대법원 판결에도 해결될 기미가 없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교육수준이 낮은 집단에선 오히려 이민자의 취업률이 내국인보다 더 높은 현상도 나타난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을 놓고 내국인 노동자들이 반발하는 것도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 주도의 이민청 설립은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단기 인력을 넘어 생활인구 등 공동체 일원으로 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들이 가져올 다양성이 미국처럼 한국에서도 새로운 가치로 인정받기 위해선 이웃 시민으로서 이주민을 받아들이려는 정책적·사회적 노력이 함께 선행돼야 할 것이다.
문주영 전국사회부장 moon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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