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시선] PF, 욕망과 이성 사이
끝없는 욕망을 자극한 것은 그가 밝혔듯이 PF이다. 부동산시장 활황기에는 레버리지 효과 극대화로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지만, 침체기에는 재무 리스크를 증폭시켜 부실의 뇌관이 되는 '양날의 검'이다. 시장이 크게 꺾일 때마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건설사들이 등장하는 게 낯설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선진국에서 PF 문제로 업체들이 휘청인다는 말을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시장침체기에 PF 부실로 건설사들이 채권단에 읍소하고 최악의 경우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까지 가는 사례가 반복되는 한국과는 분명 결이 다르다.
우선 국내 PF 기법은 땅값의 5~10%가량만 확보해 첫발을 내딛는 경우가 허다하다. 금융권에 개발사업 청사진으로 나머지 자금(브릿지론)을 빌려 땅을 사고, 해당 부지 담보로 다시 대출(본PF)받아 앞서 빌린 돈(브릿지론)을 갚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건물 짓는 돈은 선분양으로 받는 계약금과 중도금 등이다. 이 과정에서 하나라도 삐끗하면 사업을 접거나 이자폭탄을 맞아 나락으로 떨어진다. 미분양 적체에 금리까지 오르면 더 취약한 구조다. 본PF 금리도 시중금리에 비해 낮지 않다. 시행사는 고금리의 브릿지론을 빨리 갚을수록 이득이다. 여기에 채권단은 해당 사업장의 분양보증 가입 등으로 유사시 100% 소유권을 이전받을 수 없어 금리를 시중보다 높은 수준에서 책정한다. 시공사 등을 통한 신용보강도 빼놓지 않는다.
이에 비해 미국의 부동산개발사업은 일정부분 투자를 받아 부지를 매입한다. 시행사와 투자자들이 지분만큼 전체 사업의 이익과 손실을 떠안는 구조다. 통상적으로 투자자금은 총사업비의 20~30%를 넘는다. 이 때문에 시장상황이 녹록지 않아도 상당기간 버틸 수 있다. 투자자를 모집해 부지매입이 마무리되면 금융권에서 건설자금을 조달하고, 담보물에 다른 이해관계자가 개입된 게 거의 없으니 이자율도 높지 않다. 수분양자의 계약금(5~10%)은 다른 기관에 예치된다. 선분양이 간혹 있지만, 분양형 콘도 등 사업성을 금융권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증명용이 대다수다.
한국과 미국의 PF에서 대별되는 지점은 투자자금 비중이다. 사업주체의 자금력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PF자금을 부지매입, 건물 시공 중 어디에 투입하느냐도 차이점이다. 국내에선 시행사 진입문턱도 낮다. 법인 3억원, 개인 6억원 등 요건만 갖추면 부동산개발업자로 등록할 수 있다. 통상 아파트 단지 개발사업에 수천억원이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전체 사업비를 금융권에서 끌어다 쓰는 셈이다. 실제 금융권의 부동산 PF대출 잔액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134조3000억원으로 2020년 말 92조5000억원 대비 45.1%나 불어났다. 지난해 가계대출 1095조원과 비교해도 10% 넘는 규모다. 물론 현행 PF 기법은 주택공급 확대에 일조해 서민 주거안정에 기여한 순기능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전국의 주택보급률은 이미 100%(2022년 기준 102.1%)를 넘어섰고, 미분양아파트는 5만7925가구(2023년 11월)에 이른다. 금융권을 거쳐 경제위기로 전이될 수 있는 PF 부실이 잊을 만하면 터지는 역기능도 만만치 않다.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21일 "분양가격이 폭락하면 줄줄이 '폭망'하는 구조"라며 PF 제도를 작심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제는 시대가 PF의 체질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합리적 이성 사이에 PF 구조를 맞춰놓는 성장통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winwi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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