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국대사 “미국, 한반도 긴장 감소시키고 위험 줄여나갈 것”

손제민 기자 2024. 1. 2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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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골드버그 대사 인터뷰
북한 통일 포기, 전쟁 불사 발언 매우 위협적
북한과 전제조건 없는 대화에 열려 있어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67)는 “미국은 북한과 전제조건 없는 대화에 열려 있다”며 한반도 긴장과 충돌 위험성을 줄여나갈 필요성을 밝혔다.

골드버그 대사는 지난 18일 서울 정동 미국대사 관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최근 통일 포기, 전쟁 불사 발언에 대해 “상당히 불행하고 도발적이며 위협적인 발언”이라며 “김 위원장이 통일을 더 이상 추진하지 않고, 남한을 적대국가로 규정한 것은 상당히 슬프고 반역사적인 발언”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여전히 핵무기 없이 평화롭고 안정적이고 통일된 한반도라는 목표를 원한다”며 “하지만 그것은 북한이 한국에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정부가 북한의 도발적 언행에 강한 성명을 내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미국은 주한미군, 정전협정에 따른 유엔사령부 지휘 책임을 통해 긴장을 감소시키고 위험을 줄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의 긴장 고조는 북한의 도발적·위협적 발언과 불법적이고 도발적인 미사일 발사, 핵개발에 의해 만들어졌다”면서 “한·미, 그리고 한·미·일 3자가 확장억제 노력 등을 통해 그들의 위협과 도발에 방어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골드버그 대사의 발언은 남북한 충돌 위기가 커지는 가운데 미국이 한반도 긴장 고조를 막기 위한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인터뷰 전날인 지난 17일(현지시간)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적대적 의도가 없다”며 “북한이 군사적 위험을 관리하고, 한반도에서 항구적 평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방안을 함께 식별해나가기 위한 실질적 토론에 나오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 18일 서울 정동 미대사관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볼리비아·필리핀·콜롬비아 주재 대사를 거친 베테랑 직업외교관이지만 한국 근무는 처음이다. 보스니아 전쟁을 종식시킨 1995년 데이턴 평화협정 당시 리처드 홀브룩 미국 측 협상대표 특별보좌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제재 전담조정관으로 일했다. 서성일 선임기자

골드버그 대사는 1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북한 문제 외에도 한·미 동맹, 경제 안보, 한·일 관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부상, 한국 내 표현의 자유와 성소수자 인권 문제 등에 대해 견해를 밝혔다. 대체로 차분한 음성으로 원론적 입장을 밝혔지만 미국의 공급망 정책이 동맹국에 피해를 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반박하거나 한국 검찰의 정권 비판 언론에 대한 수사, 한국 내 성소수자 인권 상황에 대해 말할 때는 다소 어조가 강해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약.

- 한국 부임 후 1년 반 됐다. 가장 인상적인 일은 무엇인가.

“윤석열 대통령의 작년 미국 국빈 방문이다. 워싱턴선언으로 핵협의그룹(NCG) 창설 등 놀라운 성과를 만들었고, 한·미 정상 간 유대관계도 형성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한국 대통령이 노래를 굉장히 잘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웃음).”

- 동맹 성과에 대한 평가와 향후 과제는.

“워싱턴선언으로 한·미관계가 안보에 국한되지 않고 과학과 기술 등 많은 영역을 아우르게 됐다. 올해에도 NCG와 관련된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무엇보다 지난해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통해 한·미·일 3국민들의 안보와 번영에 더 도움이 되는 3국 협력 틀을 만들었다. 그것은 윤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취한 조치가 없었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기반해 한·미·일 3국 대학 간 양자물리학 관련 협력을 진행 중이고, 올해 부산에서 3국 청년포럼도 개최할 예정이다.”

윤 대통령 주도적 역할로 한·미·일 협력 성과 내
역사 문제 해결 방식은 한국인들이 논쟁할 사안

- 윤 대통령의 한·일 역사문제 해결 방식이 국민적 공감대에 기반했는지 의문이 있다. 3국 협력의 토대도 허약할 수밖에 없다.

“우선 한·일의 역사적 잔재와 관련해 피해자분들께 심정적 지지를 갖고 있다는 점을 밝힌다. 동시에 우리는 한·일이 21세기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더 좋은 관계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윤 대통령의 조치에 대해서는 한국민들이 논쟁할 내용이다. 다만 그의 결정이 국제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은 중요하다. 양국 정상 상호방문, 경제제재 해제, 안보협력 재개, 히로시마 한국인 원폭희생자 기념비 공동 방문으로 이어졌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국내 정치 사정이 있고 그들만의 시각이 있다. 미국은 어느 쪽에도 화해하도록 압력을 가하지 않았다. 다만 미국이 일본에 어떤 식으로 나아가야 할지 비공개로 얘기하는 외교채널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 한국은 무역 의존도가 높지만,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정책에 협조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한국이 경제적 피해를 많이 보는 국가라는 인식이 있다.

“잘못된 인식이라고 본다. 오히려 그 반대가 사실에 가깝다. 인플레이션감축법이 통과됐을 때 미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 공장에서 세액공제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 뒤로 우방, 파트너로서 양국이 논의한 결과 상업용 리스 차량의 경우 예외로 적용하기로 했다. 현대차·기아는 미국에서 2위의 전기차 판매 회사가 됐다. 그 법하에서 한국 배터리 기업들도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게 됐다. 강요에 따른 것이 아니라 기업 입장에서도 좋은 투자였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가 한국 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 점도 기억해야 한다. 또 중요한 것은 한국 기업들의 미국 투자를 통해 우리가 설정한 기후목표를 달성하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에게 윈윈이 되는 상황이라고 본다.”

공급망 협조로 한국에 피해?
잘못된 인식, 오히려 그 반대

- 한국이 대중국 무역에서 피해를 보는 측면이 있지 않은가.

“정말 그런 상황인지 잘 모르겠다. 미국 관점에서 본다면 2022년 미·중 간 무역량은 역사상 최대였다. 미·중관계가 쇠퇴하고 있다지만, 실상 보여지는 무역관계는 그렇지 않다. 첨단기술에 관해 ‘좁은 마당에 높은 펜스’를 치는 것을 통해 국가안보를 보호하려는 것뿐이다. 이것은 한국의 국가안보에도 적용된다. 아울러 반도체과학법 발표 이후 한국이 미국과의 대화에서 외교력을 발휘했고, ‘검증된 최종 사용자 리스트’ 지정을 통해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계속 가동할 수 있게 됐다. 우리는 파트너십, 동맹에 기반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023년 8월18일 워싱턴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김정은 위원장이 ‘대한민국은 주적’ ‘통일 포기’를 말하며 전쟁 불사론을 펴고 있다.

“불행하고, 도발적이며 위협적인 발언이다. 통일을 더 이상 추진하지 않고, 남한을 적대국가로 명시한 것은 슬프고, 반역사적이라고 본다. 슬프다고 한 것은 한반도에 사는 다수의 사람들이 한 민족이기를 원하고 그렇게 믿고 있으며, 비핵화와 평화적 수단을 통해 통일하는 것이 오랜 목표였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긴장 고조가 그러한 발언과 북한의 불법적이고 도발적인 미사일 발사, 핵 개발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한·미, 한·미·일의 확장억제 노력 등을 통해 그들의 위협과 도발에 방어적 조치를 취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북한과 전제조건 없는 대화에 열려 있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은 더 많은 미사일, 정찰위성, 러시아로의 무기 이전이다. 그런 대답으론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도출할 수 없다.”

윤 정부의 강한 대북 성명 충분히 이해 가능
긴장 감소, 위협 직시하며 쌍방향으로 이뤄야

- 김 위원장의 위협에 윤 대통령은 ‘몇배로 응징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한국 정부가 북한의 도발적 언행에 매우 강한 성명을 내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이) 긴장을 낮추고 위험을 감소시키는 대화에 나올 용의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인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조치를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주한미군, 정전협정에 따른 유엔사령부 지휘 책임을 통해 긴장을 감소시키고 위험을 줄여나갈 것이다. 동시에 그 긴장 감소는 그 위협을 직시하면서, 쌍방향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북한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미국 영토를 위협할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나.

“현 시점에 그들의 최대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 모두 그들이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지역을 상대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가정할 필요가 있다. 이 모든 것은 러시아와 중국도 지지한 결의를 위반함으로써 이뤄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3년 12월18일 딸과 함께 고체연료를 이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 18형 발사 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지난 30년간 한국과 미국, 그리고 중국의 북핵 정책은 북한의 핵무장을 막는 데 실패했다. 전임 대북 제재 전담조정관으로서, 제재는 얼마나 효과적이라고 보는가.

“제재는 꽤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제재는 수단일 뿐 그 자체가 정책은 아니다. 북한에 실질적 영향을 주고 있지만 아직 그 목표를 충분히 달성하지는 못했다.”

‘비핵·평화·통일 한반도’가 우리의 여전한 목표
확장억제 강화해 미국과 한국민 보호할 수밖에

- 핵을 가진 북한을 인정하는 전제하에 그 위협을 제한하려는 현실적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어떻게 보나.

“우리는 여전히 핵무기 없이 평화롭고 안정적이고 통일된 한반도라는 목표를 원한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계속 진전시키는 상황에서 한국, 일본 그리고 유사입장국들과 협력할 수밖에 없다. NCG, 전략자산 상시 전개를 통해 확장억제를 만들어갈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전제조건 없는 북한과의 대화에 열려 있다. 나는 그들이 전화에 응답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들은 나머지 세계보다 모스크바와 더 좋은 소통채널을 갖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판문점 유엔사 채널을 통해 북한과 소통하고 있다. 다만 그 채널은 매우 직접적으로 서로에게 통보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북한 쪽에서 대화 용의가 있을 때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자신과 한국민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최근 대만 총통 선거가 있었는데,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중 충돌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으로 인해 한국이 그 충돌에 이끌려 들어갈 수 있다고 보는 한국 내 시각에 대해 어떻게 보나.

“미군이 한미 연합사, 유엔사를 통해 한국에 주둔하는 것은 한국과 한국민들의 자유와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동시에 대만해협 항행의 자유는 전세계 교역의 상당 부분이 이곳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지켜야 할 규칙 기반 질서의 핵심이다. 이번 대만 선거를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의 실천을 지켜봤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중국에 대한 우리 입장을 전혀 바꾸지 않았다고 말했고, 그 점이 중요하다. 우리가 긴장을 높이려는 게 아니고, 대만이 선거를 치를 권리가 있고, 대만에 대한 무력 사용은 수용할 수 없다는 오랜 원칙들을 지켜나갈 것임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가 한국 부임 직후인 지난 2022년 7월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 축제에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스웨덴, 아일랜드, 영국, 캐나다, 필란드, 호주 등 주한대사들과 함께 참여해 연대 발언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

“한·미 동맹은 71년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고, 미국 내에서 강력한 초당적 지지를 받는다. K무비, K드라마, K팝, K푸드 같은 한국의 연성권력적 요소들 덕에 한국에 대한 관심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한·미의 인적 교류, 사업 교류 등 많은 분야의 관계들이 그것을 지속 가능하게 하고 있다. 따라서 누가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되든 동맹의 기본적 요소에 대한 우려를 갖지 않으셔도 된다고 분명히 말씀드린다.”

대선 후보 검증 보도에 정부·언론 이견 알아
미국은 자유롭고 개방된 언론 보도를 지지

- 한국 검찰이 정권 비판언론에 대해 동시다발적으로 수사를 하는 것과 관련해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미국은 자유롭고 개방된 언론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한국이 그러한 자유롭고 개방된 언론의 길을 가고 있다고 본다. 당신의 신문이 어떤 사안이든 원하는 대로, 정부를 비판 또는 지지할 수 있는지 여부는 바로 미국 국무부가 의회의 위임을 받아 작성하는 다양한 국가별 인권보고서에서 기준으로 삼는 핵심 원칙이다. 저는 한국 대선 기간에 이뤄진 몇가지 일들, 그 과정에서 나온 다양한 보도에 대해 정부와 언론 간 이견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유 언론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미국에서도 일어난다. 물론 명예훼손에 대한 각국의 법제는 조금씩 다르다. 윤 대통령이 올해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할 예정인데, 나는 그것이 한국이 이러한 원칙을 지키는 데 관심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 상황에 대한 평가는.

“우리는 LGBTQI를 포함해 모든 사람이 존엄성을 인정받고, 온전하게 공개적으로 사회 모든 영역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참여할 권리를 지지한다. 그것이 일어나지 않을 때 우리는 공개적으로 비판한다. 어떤 법률(차별금지법)을 만들라, 말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한국민들이 결정할 문제다. 하지만 우리의 신념을 뒷받침하는 기본 원칙, 즉 가치를 얘기하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 외교정책의 일부이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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