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개혁속도 확 끌어올릴 때…獨 '영원히 토론'만 하다 경제 망가져
천덕꾸러기 佛, 마크롱 취임후 변화
법인세율 33%→25% 親시장정책
고용유연화·행정처리 절차 간소화
외국인투자 4년째 유럽내 1위
獨, 3년 만에 역성장…불황늪 빠져
관료주의·의사결정 비효율 고질병
과도한 中 의존·디지털 전환 실패
"獨은 지쳐있어…각성이 필요한 때"
2013년 5월 프랑스 내각에 비상이 걸렸다. 여섯 분기 연속 역성장을 기록하며 침체가 시작됐다는 우려가 커지면서다. 집권 1년 차이던 프랑수아 올랑드 정권은 연금 수급연령 하향, 가족수당 확대 등 포퓰리즘 공약을 밀어붙이고 있던 터였다.
올랑드 대통령은 결국 “프랑스는 제로(0) 성장 시대에 들어갔다”고 실책을 인정했고, 르몽드 등 유력 매체들은 “독일에서 경제를 배워야 한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같은 시기 낮은 실업률과 견조한 수출, 안정된 노·사·정 관계 등을 앞세운 독일의 아성은 견고해 보였다.
하지만 최근 양국의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친(親)시장주의를 밀어붙인 프랑스가 관료주의 등으로 병든 독일을 앞서고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티안 린트너 독일 재무장관조차 지난 19일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독일 경제는 지쳤다. 각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180도 상황 바뀐 獨과 佛
프랑스가 ‘유럽 왕좌’를 놓고 기존 맹주인 독일을 위협하고 있다. 21일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국가별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치는 프랑스가 1.3%, 독일이 0.9%다. 독일은 지난해 -0.3% 역성장하면서 주요 20개국(G20) 중 최악의 경제 성적을 냈다. 과도한 중국 의존과 전기차 전환 실패, 탈(脫)원전 정책으로 인한 전력 비용 급증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지크프리트 루스부름 독일산업연맹 회장은 “독일 경제는 정체를 겪고 있고 올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반면 프랑스는 지난해 1% 성장했고, 실업률도 41년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외국인직접투자(FDI)는 2019년부터 4년 연속 유럽 1위다. 투자은행(IB) 출신인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017년 취임한 이후 노동법 개정 등 친시장주의 개혁을 공격적으로 추진한 결과라는 평가다. 벨기에 싱크탱크 브뤼헐의 아르민 슈타인바흐 연구원은 “프랑스가 야심 찬 개혁의 결실을 거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독일 경제는 2020년 -3.8% 역성장했다가 2021년(3.2%)과 2022년(1.8%) 반등에 성공했지만, 2023년 -0.3%를 기록하며 3년 만에 다시 뒷걸음질했다. 기반 산업인 제조업이 특히 부진하다는 평가다. 지난해 독일의 산업생산은 전년 대비 2.0% 후퇴했다. 제조업 생산이 0.4% 위축됐고, 수출도 전년 대비 1.8% 감소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독일 경제의 엔진이 식고 있다”고 비평했다.
프랑스는 다소 둔화하긴 했지만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 나라의 실질 GDP 증가율은 2020년부터 4년 연속 독일을 앞질렀다. 마르셀 프랫처 독일경제연구소 대표는 “프랑스와 독일 경제가 이렇게 극명하게 엇갈린 것은 처음”이라며 “독일의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프랑스의 투자 매력도가 높아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다시 찾아온 ‘벨 에포크’
전문가들은 프랑스 경제에 ‘벨 에포크’(20세기 초 프랑스의 문화예술 전성기)가 도래했다고 평가했다. 유럽 금융허브로 거듭나며 투자 선순환 체계가 마련됐다는 설명이다.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계기가 됐다. 이후 6년간 런던 금융권에선 일자리 7600여 개가 증발했다. 1조3000억유로(약 1894조원) 상당의 자산도 영국을 빠져나와 유럽으로 유입됐다. 흡수력이 가장 컸던 건 프랑스 파리였다. 사라진 7600여 개 일자리 중 3000여 개가 파리로 이동했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영국에 있던 본사·지사를 파리로 102개, 프랑크푸르트로 63개 옮겼다. 유럽연합(EU) 은행위원회와 유럽증권시장국(ESMA), 유럽은행감독청(EBA) 등 유럽 주요 금융당국도 줄줄이 파리행을 결정했다.
프랑스의 FDI는 1259건(2022년 기준)으로, 영국(929건) 독일(832건)을 앞질러 4년 연속 1위를 달리고 있다. 이탈리아 스텔란티스, 독일 메르세데스의 합작사 오토모티브셀컴퍼니(ACC)가 유럽 내 첫 전기자동차 배터리 공장 부지로 프랑스를 낙점하기도 했다.
타일러 카우언 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현재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역동적인 국가로 탈바꿈했다”며 “금융, 산업, 스타트업 등 모든 분야에서 유럽 내 경쟁국을 압도하고 있다”고 호평했다.
과감한 개혁이 빚은 佛의 성공
프랑스의 성공 배경엔 규제 개혁이 있다는 분석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기업들이 경영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한다는 ‘재산업화’ 정책에 힘을 쏟았다. 법인세율을 33%에서 25%로 낮췄고, 노동 규제도 완화했다. 해고 기준을 간소화해 고용유연성을 높였다. 실업수당 수급 조건도 개선했다. 투자가 활성화되자 프랑스의 실업률은 2016년 10%에서 지난해 7.3%로 떨어졌다.
행정 처리 절차도 간소화했다. 기업 관련 인허가의 행정 처리 소요 기간은 지난 5년간 평균 17개월에서 9개월로 단축됐다.
탈원전 정책 폐기도 묘수로 꼽힌다. 2021년부터 원자력발전소 투자를 늘린 결과 현재 프랑스에 공급되는 전력의 70%가 원전에서 생산되고 있다. 저렴한 전력 가격에 매료된 글로벌 기업들이 프랑스로 몰려들고 있다.
獨 경제 장기 불황 겪나
독일은 장기간 불황에 빠질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관료주의와 의사결정의 비효율성 등 근본적인 문제가 경제 성장을 방해할 것이란 비관론이다.
뿌리 깊게 박힌 관료주의는 독일의 고질병으로 여겨진다. 독일 엔지니어링협회와 중소기업연구소가 함께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독일 중소기업은 행정 의무를 준수하기 위해 연매출의 3.2%(2022년 기준)를 지출하고 있다. 평균 금액은 70만유로(약 10억원)로 집계됐다.
개혁이 시급하지만 독일의 의사결정 구조가 비효율적인 탓에 실패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독일은 연방정부 체제로 각 주(州)의 자치권이 강한 편이다. 최고지도자가 국가 정책을 공격적으로 추진할 수 없는 구조다. 또 연방정부가 정부 부채를 늘려 보조금 정책을 확대하려면 헌법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슈타인바흐 연구원은 “독일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영원히’ 토론하고 있지만 프랑스는 이미 실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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