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차관 정치’
박영준 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은 이명박(MB) 정권 초기 ‘왕비서관’으로 불렸다. 정권 2년차인 2009년 초엔 총리실 국무차장(차관급)으로 발탁됐다. 이주호 전 청와대 수석(현 교육부 장관) 등 MB 최측근 15명이 신임 차관으로 동시에 임명된 날이다. 이른바 MB식 ‘차관 정치’의 시작이었다. 측근 차관을 통해 각 부처에 대통령 뜻을 관철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도 박영준 ‘왕차관’이 있던 시점에 일어났다. 자원외교가 한창이던 시절, 박 차관은 실무 부처인 지식경제부로 자리를 옮겼고, ‘차관 정치’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런 변칙적 대통령 직할체제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말 차관 12명을 대거 교체할 때 다시 등장했다. 대통령실 비서관 출신 5명을 부처에 전진배치시켜 국정 장악력을 높이려 한다는 말이었다. MB 정부 인사가 요직에 두루 중용된 윤석열 정부에서 반복된 용인술로 꼽힌다.
‘차관 정치’ 시비는 지난 18일 심우정 법무부 차관 임명 후 다시 불거졌다. 지난해 말 한동훈 전 장관이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옮겨 법무행정 공백이 길어지던 터에 장관대행인 이노공 전 차관을 느닷없이 교체한 것이다. 장관도 없는데 차관을 바꾼다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한때는 주요 장관직이라며 ‘윤석열 아바타’로 불리는 한 전 장관을 앉히더니, 이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우겠다’는 식이다. 검찰 지휘, 인권 옹호, 대법관·공수처장 추천 같은 고유 업무는 물론이고, 윤석열 정부에서 새롭게 맡은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민청 설립은 계속 추진할 수 있을까. 총선 직전 법무장관 인사청문회가 정권 비판 무대가 될 수 있다는 부담과 우려 때문에 무리수가 나왔다는 관측이 파다하다.
심 신임 차관은 대검 차장에 임명된 지 불과 4개월 만에 ‘장관 같은 차관’이 됐다. 공석인 대검 차장의 연쇄 인사도 불가피해졌다. 총선 출마하는 장차관 때문에 ‘3개월 장관·6개월 차관’이 속출하고, ‘차관 정치’에 ‘밑돌 빼내 윗돌 괴기’식 인사까지 윤 대통령의 즉흥적인 좌충우돌 국정이 계속되고 있다.
‘극히 이례적인 일’이 툭하면 반복되고 있음에도, 여권은 언제까지 청문회 탓·야당 탓으로만 돌릴 텐가.
윤호우 논설위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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