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혁신] 비트코인과 법치주의

한겨레 2024. 1. 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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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 연합뉴스

김진화 | 연쇄창업가
 비트코인 현물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장지수펀드(ETF)가 증시에서 거래되기 시작했다. 2013년 첫 신청 이후 10년 남짓 시간을 끌어오며 말 많고 탈 많던 가상자산의 제도권 진입이 현실화된 것이다. 오매불망 기다려 왔던 이해관계자들이며 투자자들은 쌍수 들고 환영하는 모양새다. 한편 가상자산 자체가 영 마뜩잖은 이들은 이 결정으로 오히려 비트코인의 탈중앙화 구상이 무너진 셈이라며 그 의미를 평가절하한다. ‘독이 든 성배’라는 얘기다.

자의 반 타의 반 가상자산을 한국 사회에 소개하는 역할을 몇해 전까지 수행했던 입장에서 보면, 그저 올 게 온 것일 뿐이다. 어차피 시간문제였다. 학자들만 사용하던 인터넷이 제도화되고 상업화되었다고 해서 그 자체로 가치가 폭등했던 것만은 아니라는 걸 2000년대 초 버블 붕괴를 통해 배웠다. 반대로 그 인터넷이 주류에 안착하고 상업화됐다고 해서 프로토콜(통신 규약)이나 웹 자체가 애초의 개발 의도를 상실했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무리임을 잘 안다. 웹은 지금도 진화하고 있고 블록체인도 그 과정 중 하나다. 마찬가지로 비트코인의 제도권 진입 뉴스 역시 그리 환호할 일도, 그리 저주하고 폄하할 일도 아닐 게 뻔하다. 가야 할 길이 아직 멀어서다.

이번 비트코인 이티에프 승인에서 눈여겨볼 점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자체다. 한국에서는 권력을 가진 쪽의 아전인수, “아 몰랑, 우리 하고 싶은 대로 할 거고 그게 법이야”를 정당화하는 레토릭으로나 쓰이고 말 뿐인 ‘법치주의'가 승인 과정에 고스란히 관철되고 있어 인상적이다. 교수 시절 가상자산 보유 경험이 있는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은 비트코인 이티에프가 시기상조라는 견해를 줄곧 표명했다. 기술 자체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기술을 빌미로 투기가 횡행하는 시장 자체를 불신해온 것으로 보인다. 정권이 임명한 ‘빠꼼이’ 위원장이 반대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는데도 업체는 퇴짜 결정이 부당하다며 연방항소법원에 소송을 제기한다. 법원은 검토 뒤 선물은 시장 감시와 투자자 보호가 되는데 현물은 안 되는 근거를 소명하라고 위원회에 요구했다.

위원회는 연방대법원 상소, 항소법원 재심리 등 충분히 시간을 더 끌 수 있는 여러 선택지를 갖고 있었다. 이번에 바로 승인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는 예측이 많지 않았던 이유다. 그런데도 위원회는 “법원 결정을 존중해”, 추가 조치 대신 승인을 결정했다. 한국이었으면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를 앞두고 이런 결정이 가능했을까.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일단 “비트코인은 돌덩이”라고 기자회견까지 했던 지난 정부 법무부 장관이 떠오른다. 금융위원회가 반대해도 행정법원이 있으니 우리도 미국처럼 하면 되지 않을까? 한국의 금융위원회는 찬반을 두고 토론하지 않는다. 그저 원하는 바를 은행을 통해 관철할 뿐이다. 과장이 심하다고? 멀리 갈 것도 없다. 이번 이티에프 승인 결정 이후 행보를 보자. 금융위는 자본시장법상 문제가 있다며 증권사를 통해 투자를 원천봉쇄하는 식으로 대응한다. 자본시장법 위반이라는 근거는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견해가 비등한데도 금융위는 꿈쩍도 않는다. 어차피 법이 아니라 주먹(증권사 통제)이 가깝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를 비판하며 각을 세우는 대통령과 여당의 핵심 키워드는 법치주의와 자유다. 그 법치주의가 상대편 때려잡는 권력의 여의봉에 그치는 게 아니라면, ‘카르텔 척결’뿐만 아니라 주요 권력기관들의 ‘법보다 가까운 주먹’ 찾는 행태도 도마에 올려야 한다. 대통령이 틈만 나면 강조하는 ‘자유’가 공안정권의 쌍팔년도 ‘자유’와 차별화된 것이라면, 신중하게 투자하고 그 투자에 대해 책임질 자유 역시 존중받는 시장 풍토를 적어도 저해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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