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지수 ELS 손실률 58%까지 껑충···증권사들, 뒤늦게 수익 보장 강화

심기문 기자 2024. 1. 2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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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셍지수 약세에 ELS 손실 눈덩이
올해 확정된 손실만 2300억 달해
원금손실 기준 49%로 10%P 낮춰
신상품 줄여 발행액 240억으로 뚝
기초자산 75% 하락해도 수익 주는 ELS까지
시장 위기 처하자 "늑장 대응" 지적
지난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피해 보상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홍콩 항셍 중국기업지수(HSCEI·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이 무더기로 손실을 보는 사태가 이어지자 증권사들이 올 들어 신상품 수를 줄이고 수익 보장 요건도 대폭 완화하고 나섰다.

21일 한국결제예탁원에 따르면 올 들어 19일까지 미래에셋·삼성·신영·KB·한국투자·한화투자증권이 발행한 홍콩H지수 연계 ELS 37개는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기초자산의 평가 하한선을 발행 시점 대비 평균 49.73%로 잡았다. 3년 전인 2021년 1월만 하더라도 평균 58.91%였던 기준점을 10%포인트 가까이 내린 셈이다. 2021년 초 홍콩H지수 관련 ELS에 투자한 사람의 경우 기초자산 가격이 40% 정도만 하락해도 손실을 입었다면 올해 이 상품에 돈을 넣은 투자자들은 지수가 50% 이상 하락해도 손해를 입지 않는다는 뜻이다.

ELS는 지수·종목 등 기초자산 가격이 만기 시점까지 특정 가격(녹인) 아래로 하락하지 않으면 원금과 약속한 이자를 주는 파생상품이다. 6개월 단위로 기초자산 가격을 평가해 돌아오는 조기 상환 기준을 충족하면 원금과 이자를 지급하고 그렇지 않으면 자동 연장된다. 만약 만기 시점에도 지수가 녹인 구간 밑으로 내려갈 경우 기초자산이 떨어진 만큼 투자 원금을 잃을 수 있다. 홍콩H지수는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 50개를 추려서 산출한 지수다.

홍콩H지수 연계 ELS 발행 건수도 올 들어 크게 줄었다. 2021년 1월 2~19일 282개, 9686억 원어치가 발행됐던 홍콩H지수 관련 ELS는 올해 같은 기간 37개, 247억 원어치로 급감했다.

특히 2021년 1월 홍콩H지수 연계 ELS를 39개나 발행했던 미래에셋증권(006800)은 올해 관련 ELS를 고작 5개만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미래에셋증권은 2021년 1월 39개 관련 ELS 가운데 32개의 1차 조기상환 기준을 ‘기초자산 가격 10% 하락’으로 내걸었지만 올해에는 5개 상품 가운데 1개에 대해서만 같은 조건을 설정했다. 나머지 4개 ELS의 1차 조기상환 조건은 ‘기초자산 가격 13~15% 하락’으로 넓혔다. 미래에셋증권의 2021년 1월 출시 홍콩H지수 연계 ELS 중에서는 ‘기초자산 가격 5% 하락’과 같이 1차 조기상환 요건이 빡빡한 상품도 6개나 됐다.

상환 조건이 투자자들에게 유리해진 것은 비단 홍콩H지수 관련 ELS뿐이 아니다. 증권사들은 올 들어 발행한 전체 ELS 406개의 평균 하한선도 2021년 58.86%보다 4%포인트 이상 낮은 54.40%로 설정했다. 올해에는 원금 손실 기준점을 25%로 설정한 상품도 7개나 출시됐다. 기초자산 가격이 75%나 급락해도 확정 수익을 지급하도록 설계했다는 의미다. 원금 손실 기준점을 70% 이상으로 정한 ELS은 ‘하나증권 15442 ELS’가 유일하다.

증권사들이 홍콩H지수 연계 ELS의 발행 수를 줄이고 상환 기준을 줄줄이 낮추는 것은 최근 해당 ELS의 만기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H지수가 올해에도 부진한 흐름을 보일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힘을 얻으면서 기초자산 하락 가능성을 더 폭넓게 적용한 ELS를 발행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올해 만기를 맞은 홍콩H지수 기초 ELS의 손실률은 이달 8일 48.6%에서 최근 57.7%까지 뛰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이 판매한 관련 ELS 상품의 손실액만 2296억 원에 달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5일 기준으로 홍콩H지수 기초 ELS의 총판매 잔액은 19조 3000억 원으로 이 가운데 79.6%인 15조 4000억 원이 올해 만기를 맞는다. 이 중 10조 2000억 원에 대한 만기는 상반기에 몰려 있다. 유안타증권은 월별로 올 4월 만기 물량이 2조 5553억 원으로 가장 많다고 분석했다.

금융투자 업계 안팎에서는 증권사들이 중국 경기를 둘러싸고 경고음이 울리던 시기에는 막상 위험 관리에 소홀하다가 시장이 와해될 위기에 처하자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홍콩H지수는 올해 만기를 맞는 ELS가 발행되던 시점인 2021년 2월 1만 2000선을 넘었다가 지난해 10월 말 5000선을 내줄 정도로 급락했다. 금융 당국은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과 한국투자·미래에셋·삼성·KB·NH·키움·신한투자증권 등 홍콩H지수 연계 ELS 주요 판매사 12곳에 대해 현장검사를 실시하고 불완전 판매 여부 등을 파악하기로 했다.

정인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2021년 상반기 발행된 홍콩H지수 ELS 물량이 대거 손실을 입은 채 만기 상환에 맞는 만큼 당분간 신상품 발행 시장도 부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심기문 기자 do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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