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협치의 힘…총리와 野대표, 총선前 2박3일 안보동행

전경운 기자(jeon@mk.co.kr) 2024. 1. 2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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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개혁 선진정치 벤치마킹
스웨덴 '국가조사보고서' 도입
국가대사 1년 넘게 숙의 거쳐
연금·에너지정책 개혁 이끌어
독일, 통일정책엔 여야 없어
정권 바뀌어도 그대로 계승
영국, 의회내 막말엔 무관용
'위선자'라고 불러 퇴장 조치

◆ 5·5·5 담대한 도전 ◆

2022년 3월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당시 스웨덴 총리(왼쪽)와 야당인 울프 크리스테르손 온건당 대표(현 총리)가 노르웨이에서 열린 대규모 다국적 군사훈련(Cold Response)을 함께 참관한 자리에서 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다. TV4 Nyheterna 유튜브 영상

2022년 3월 스웨덴의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당시 총리는 노르웨이에서 열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합동 군사훈련에 야당인 울프 크리스테르손 온건당 대표와 나란히 나타났다. 총리 전용기를 함께 타고 온 야당 대표는 2박3일간 총리의 모든 일정에 동행했다. 러시아 북극함대의 침략을 가정한 훈련이었다. 스웨덴 총선이 불과 6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고 선거전은 이미 시작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파 사회민주당 소속인 안데르손 총리가 우파 야당의 대표를 초대해 나토 훈련을 참관한 것은 안보만큼은 정쟁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당시 안데르손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방과 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야당도 여당이 되면 국가를 이끌어갈 정당"이라고 말했다. 선거에서 누가 이기든 국정의 연속성을 이어가기 위해 총리가 야당 대표와 기꺼이 한 배를 탄 것이다. 실제로 그해 9월 선거에서 온건당이 주도한 우파연합은 8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고 크리스테르손이 총리직에 올랐다.

상대 정파를 국정 동반자가 아닌 '정적(政敵)'으로 바라보는 한국 정치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당리당략보다 국익 우선주의가 국회의원 의정활동의 최우선 가치로 자리 잡은 스웨덴은 '제로섬 정치'에 빠진 한국 정치에 다양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제도적 측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국가조사보고서(SOU) 제도다. SOU는 숙의 민주주의 실현의 도구이자 독단적 정치를 막는 방패라는 평가를 받는 스웨덴의 대표적인 정치 제도다. 이 제도의 핵심은 국가적 중대 사안에 대한 법안이 만들어지기에 앞서 반드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고, 국회와 전문가 그룹이 함께 참여해 평균 1년 이상 숙의를 거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특별위원회에는 다수당이든 소수당이든 정당별로 1명씩 들어가기 때문에 다수당 횡포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보고서를 3개월간 국민에게 공개하는 '레미스'(Remiss·회람)를 거쳐야만 비로소 의회에 정식 법안으로 제출될 수 있다.

이처럼 장기간 숙의를 거친 법안은 의회로 넘어오면 대부분 그대로 통과된다.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국민 여론까지 수렴한 법안을 의회가 거부할 명분이 없는 셈이다. 스웨덴은 SOU 제도를 이용해 그동안 연금 개혁, 국가 에너지 정책 변경, 정치제도 개혁 등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한국 국회에도 숙의를 위한 장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여야는 2012년 국회선진화법 일환으로 다수결에 관계 없이 최장 90일간 추가 논의를 하도록 한 '안건조정위원회(안조위)'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안조위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오히려 법안 신속처리를 위한 통로로 악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독일의 협치 모델은 독일을 전범 국가에서 유럽 1등 국가로 이끈 원동력으로 평가받는다. 선거 제도상 1개 정당이 과반을 차지하기 어럽기 때문에 '연정(聯政)'이 이뤄지는 시스템적 요인도 있지만 독일 정치권에 뿌리내린 협치의 리더십이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서독의 4대 총리인 빌리 브란트(사회민주당)는 1972년 동독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는 기본조약을 체결했다. 당시 보수당인 기독교민주연합(기민련)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같은 해 실시된 조기 총선에서 사민당이 다시 국민의 선택을 받자 기민련은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을 전격 수용했다. 10년 뒤 집권당이 된 기민련은 결국 동방정책을 계승했고 이는 독일 통일로 이어졌다. 국민의 뜻을 최우선으로 정책을 이어간 결과다.

한국 정치를 멍들게 하는 '막말 정치'도 정치 선진국에선 좀처럼 용납되지 않는다.

영국 의회에서는 '비의회적 언어'를 사용한 의원은 당일 회의에서 즉각 퇴장 조치를 받는다. 1992년부터 2023년 8월까지 즉각 퇴장 조치를 받은 사례는 총 12건으로 "위선자들", "등에다 칼을 꽂는 겁쟁이들" 등의 발언이 포함됐다.

[전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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