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포퓰리즘을 대하는 유권자의 자세
원칙 뒤집고 민생 외면, 표심 좇은 탓
노란봉투법등 강행 野도 인기영합 비판
'안되면 말고 식' 공약 준엄히 판단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이달 10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를 직접 찾아 “지은 지 30년 이상 된 주택은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을 시작하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열광적인 반응을 기대했을지 모르지만 실상은 기대 반 무관심 반이다. 젊은 층이 많이 사는 전통적 야당 우세 지역이라서가 아니다.
일산은 1990년대 ‘천하제일 일산’이라 불리며 ’천당 아래 분당’과 함께 신도시 시대를 열었다. 30년이 흐른 지금 천하제일 일산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양한 기업들이 둥지를 틀어 ‘직주근접’을 이뤄낸 분당·판교와 달리 일산에는 이렇다 할 기업 일자리가 부족해 매일 1시간 넘게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출퇴근 환경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기업 유치는 제자리걸음이다. 여전히 ‘베드타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구가 100만 명이 넘고 조성된 지 30년 이상 된 대도시라고 보기 민망할 정도다. 그동안 고양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수많은 정치인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외쳤던 공약이 ‘기업 유치와 교통 개선’이었지만 대부분 공염불이었다. 재건축을 통해 신축 아파트가 들어선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더 살기 좋은 도시’가 되기 어렵다는 게 일산신도시 현지 주민들의 정서다.
특히 이번 재건축 정책은 총선을 앞둔 시기에 나왔다. 포퓰리즘적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재건축 절차가 실제로 진행되려면 도시정비법 개정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말뿐만 아니라 국회에서 법이 통과돼야 시행 가능하다는 얘기다. 정부의 재건축 정책 발표가 ‘여당 국회의원을 뽑아줘야 가능한 일’로 들리는 게 아주 이상하지는 않다. 게다가 일산신도시 주민들은 국민의힘이 이웃 동네인 경기 김포시를 서울에 편입하겠다며 띄웠던 ‘메가시티’ 애드벌룬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똑똑히 지켜봤다.
정치권이 4월 10일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다양한 ‘민생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선거를 앞둔 시기에 내놓는 정부 정책들에는 ‘선거용’이라는 오명이 자주 붙는다. 정부와 여당 입장에서 최근 내놓는 각종 정책들이 선거용 포퓰리즘으로 평가절하되는 것이 억울할 수도 있는 지점이다. 하지만 과연 억울하기만 할 일인지 되돌아봐야 할 일이다. 정부 정책 중 포퓰리즘이라고 비판받는 것들은 대부분 원칙을 뒤집은 경우다. 공매도 금지, 전기료 동결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당초 공매도에 대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입장을 폈고 문재인 정부가 전기료를 제때 인상 안 해 한국전력의 적자를 키웠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최근 기존 입장을 180도 바꿔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고 전기료를 동결했다. “문재인 정부와 다르다”고 강조했던 건전재정도 흔들리고 있다. 잇단 감세 정책에 세수 감소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야당은 더 심각하다. 이번 총선에서 지지 세력의 표만 얻어도 승리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집 토끼’ 지키기 공약에 혈안인 모습에서는 오만함마저 느껴질 정도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도 “근로자·서민을 위한다”며 ‘노란봉투법’을 밀어붙였다. 이 법은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제한해 ‘불법 파업 조장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대통령이 지난해 거부권을 행사했던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재추진하고 있다. 심지어 차액을 보전하는 대상 작물을 배추·무·고추·마늘·양파 등으로 더 확대해서 말이다. 국가 재정과 시장 혼란은 안중에도 없어 보이는 처사다.
독일 킬 세계경제연구소는 ‘포퓰리스트 리더와 경제’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포퓰리스트가 집권하면 15년 후 포퓰리스트가 아닌 리더가 집권했을 때보다 국내총생산(GDP)이 평균 10%가량 줄었고 국가채무비율은 10%포인트 높아졌다.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두 눈 부릅뜨고 포퓰리즘을 걸러내야 한다. ‘안 되면 말고 식’ 공약이 판치지 않도록 준엄히 판단해야 한다. 나라의 운명이 걸린 선거다. 이미 21번의 국회의원 선거를 치른 국민의 상식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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