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다른 메타세콰이어 숲,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다

서지혜 기자 2024. 1. 2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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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숲 화가' 정영환 개인전
미묘한 색체 등 작가의 비애 투영
'마인드스케이프' 연작 16점 소개
전시는 서정아트서 내달 17일까지
정영환 작가가 ‘마인드 스케이프’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서지혜 기자
[서울경제]

수직의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촘촘하게 늘어서 있다. 숲은 다소 인공적으로 보이는데 한 발 더 다가가니 피톤치드 내음도 느껴진다. 멀리서는 엄격해 보이던 나무의 가지들이 바람에 따라 제멋대로 뻗어 있는 모습, 태양의 위치에 따라 저마다의 색을 뽐내는 나뭇잎의 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림 속 숲의 빛깔은 비현실적으로 영롱해 관람객은 동화 속 세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푸른 숲 화가’로 알려진 정영환(54)의 개인전 ‘에코 인 사일런스(Echo in Silence)’가 서울 논현동 서정아트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신작으로 ‘마인드 스케이프(Mindscape)’로 명명된 작가의 연작 16점이 내걸렸다.

전시장에서 기자와 만난 작가는 “제 작품에는 서사가 없다”라는 말로 전시를 소개했다. 스토리가 곧 정체성으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서사 없음’이란 말이 어쩐지 낯설다. 작가는 “제 작품은 숲과 나무를 1차원으로만 해석해 평면적으로 배치한다”라며 “관람객들도 색채의 미묘한 변화에 집중하며, 자연을 사유의 방식으로 접근했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정영환의 작품은 정면에서 바라본 여러 그루의 나무가 숲을 이루는 장면을 주요 소재로 한다. 통상 화면 중앙을 또렷하게 바라보면 시야에서 벗어난 부분은 흐려진다. 숲을 그리는 작가라면 멀리 떨어진 사물을 작게, 흐리게 그림으로써 좀 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 집중하는데, 정영환은 그렇지 않다. 그는 흐트러짐없이 숲의 모든 나무와 잎사귀를 정갈하게, 규칙적으로 나열한다. 자연을 그린 작품인데도 인공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정영환 ‘마인드 스케이프’. 사진 제공=서정아트

멀리 떨어진 사물의 크기도 동일하게 배치하고 같은 빛깔로 표현한다. 그림은 깔끔하지만 사실적이지 않다. 하지만 전시장을 걷다보면 관람객은 오히려 사실적이지 않은 숲 그림들에게서 오히려 숲의 냄새를 맡는다.

그래서 정영환의 작품은 TV·자동차·아파트 등 도시를 상징하는 것들과 잘 어울린다. 아마도 지난해 현대차가 ‘제네시스 엑스(X) 컨버터블’을 소개하는 영상의 배경으로 작가의 작품을 활용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광고는 딱딱하고 세련된 자동차 뒤에 정영환의 숲을 배치해 이 차의 세련됨을 더욱 부각했다. 그는 올해도 국내 한 가전 대기업과 함께 유사한 협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인공 숲 그림이 어떻게 이처럼 오감을 자극할 수 있는 걸까. 아마도 고요 속에서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던 작가의 심정이 그림에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그리는 숲에는 슬픔이 녹아있다. 그는 “아버지가 1년 반 정도 뇌졸증으로 사경을 헤맸다”며 “아버지를 모신 경기도 양평에 집을 오가며 만난 자연에서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후 작가는 자연의 일부를 발췌해 그렸는데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마음을 비우고 덜어냈다고 털어놨다.

작가 본인의 비애도 작품에 담겨 있다. 그는 “지난 2019년부터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았고, 최근까지도 이명이 심해 두통과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말했는데 작가 자신이 인공의 숲을 그리면서 위로 받았고 그러한 마음이 작품을 통해 그대로 전달되는 것으로 보인다.

정영환 ‘마인드 스케이프’. 사진 제공=서정아트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전작들과 달리 연보라색 등 파스텔톤을 활용해 좀 더 안정감을 주고자 노력했다. 자로 댄 듯한 수직의 나무도 ‘바람’을 핑계 삼아 조금은 엄격함을 내려놓은 모습이다. 차갑기만 했던 그간의 작품 세계와 달리 조금은 작가 자신의 마음에도 온기가 생긴 것일까.

작가는 “사유하는 과정에서 여운이 생긴 것 같다”며 “사시사철 곧은 기강을 보여주는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선 화면 안에서 빈틈을 내어주는 것처럼, 이번 전시도 보는 이에게 제가 전하고자 하는 위로의 메시지가 닿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2월 17일까지.

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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