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는 ‘현금’, 경기 부양은 ‘어음’

이정훈 기자 2024. 1. 2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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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 금융투자세 폐지 이어 ISA 대상도 확대… 재정에 악영향인데 향후 세수 확대는 불투명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월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 - 네번째,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에서 발언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감세, 감세, 감세.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하루가 멀다 하고 ‘부자 감세’를 내놓고 있다. ‘건전재정’을 강조해놓고 정책은 정반대로 펼치는 꼴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1월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를 주제로 연 민생 토론회에서 또 감세 정책을 내놓았다. 윤 대통령은 “국가와 사회가 계층의 고착화를 막고 사회의 역동성을 끌어올리려면 금융투자 분야가 활성화돼야 한다”며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가입 대상과 비과세 한도를 대폭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최고 45%가 아니라 14%만 적용되는 ISA 새 상품

ISA는 주식·채권·펀드 등 여러 금융상품을 한 계좌에 담아 3년 이상 운용하면 일정 한도액까지 투자수익에 과세하지 않고, 초과 이익에도 9.9% 저세율을 적용하는 상품이다.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자산 증식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2016년 3월 출시됐다. 19살 이상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지만, 가입 전 3년간 한 번이라도 이자·배당 소득이 연 2천만원을 넘는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될 경우 가입을 제한했다.

앞으로는 국내 주식과 국내 주식형 펀드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형 ISA’를 새로 만들어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도 가입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이때 고액 자산가는 분리과세가 적용돼, 소득세 세율이 최고 45%(지방세 제외)가 아니라 14%만 적용된다. 아울러 납입 한도는 연 2천만원(총 1억원)에서 연 4천만원(총 2억원)으로 2배 늘어난다. 비과세 한도는 현행 200만원(서민·농어민용 400만원)에서 500만원(서민·농어민용 1천만원)으로 2.5배 상향한다.

윤석열 정부는 줄곧 감세 정책을 내놓았다. 출범 첫해인 2022년 법인세와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를 내렸다. 2023년에는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 확대, 결혼 증여세 공제 한도 상향(1억원→3억원),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기준 상향(10억원→50억원) 등을 단행했다. 2024년 벽두부터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다주택자 중과세 완화, ISA 가입 완화 등으로 주식 부자와 고액 자산가를 위한 감세에 나섰다. 여기에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부담도 낮췄고,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도 더 연장할 계획이다.

이런 감세는 서민과 중산층에게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당장 건강보험이 그렇다. 보건복지부는 1월5일 당정 협의를 거쳐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333만 가구 건보료를 평균 2만5천원 내리고, 최대 10만원까지 낮아진다고 밝혔다. 이에 참여연대는 논평을 내어 “평균만 말하는 것은 누가 진정한 수혜자인지 진실을 가린다”며 “(잔존가치가 4천만원 이상 되는) 12만 대 차량 소유주가 혜택을 입게 되고, 재산보험료 기본 공제액을 5천만원에서 1억원으로 확대해 부유층의 부담이 줄었다”고 밝혔다. 또 “연간 9831억원의 보험료 수입이 줄면 건강보험 보장률이 줄어, 본인부담상한제 적용 예외가 늘어나 서민·노동자의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정치적 이해만 고려한 단기적인 재정 운용”

나라살림연구소는 2022~2023년 세제개편만을 따져서 2028년까지 총 89조원의 세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금투세 폐지로 연간 1조5천억원이, ISA 가입 완화로 2천억~3천억원의 세금이 줄어들 전망이다. 연간 수십조원의 세수 감소가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와 만나 정부 지출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상속세마저 완화할 의사를 밝혔다. 그는 “대주주 입장에서 주가가 너무 올라가면 상속세를 어마어마하게 물게 된다. 재벌·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상장기업들도 가업 승계가 불가능해진다”며 “국민들께서 (이런 점을) 다 같이 인식하고 공유해야 과도한 세제를 개혁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끊이지 않는 감세에 정부가 강조한 건전재정에 대한 걱정이 나온다. 2024년 예산은 총수입 612조2천억원, 총지출은 656조6천억원으로 44조4천억원의 재정적자로 편성됐다. 2023년 삼성전자 등 대기업의 실적 부진으로 법인세가, 2024년 부동산 거래 위축으로 부동산 세수가 줄어들 전망이 속에서, 윤 대통령의 ‘총선용 감세’는 재정적자를 더 키울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양도세 완화, 공매도 금지, 금투세 폐지 등 전례 없는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며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재정 운용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만 고려한 단기적인 재정 운용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고 말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상장사 주식의 저평가 현상)를 줄이겠다며 금투세 폐지, 대주주 기준 완화 등 주식투자가 많은 고액 자산가들에게 혜택이 크게 돌아갈 정책을 내놓았지만 증시는 전혀 뜨고 있지 않다. 코스피지수는 2435.90(2024년 1월17일 종가 기준)으로 1년 전 같은 날(2365.10)에 비해 3.0% 오르는 데 그쳤고, 한 달 전인 2023년 12월18일(2566.86)에 비하면 5.1% 내려 연이은 정책 발표에도 효과를 보지 못한 셈이다.

일본 주식시장이 연일 상승하는 모습과 반대다. 도쿄증권거래소는 2023년 3월 주당 순자산가치(PBR·Price Book Value Ratio)가 1 이하인 상장기업들을 대상으로 자본수익성과 성장성을 높이기 위한 개선 방침과 구체적인 이행 목표를 공개하도록 요구했다. 2024년 1월15일부터는 기업지배구조보고서 등을 통해 구체적인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기재한 기업 명단을 도쿄증권거래소가 매월 공표하고 있다. 아울러 한국의 ISA와 비슷한 일본 개인저축계좌(NISA)의 세제혜택을 기존 120만엔에서 360만엔으로 3배 확대하고, 비과세 적용 기간도 일반형 기준 최대 5년에서 무기한으로 연장했다.

이 영향으로 일본 닛케이지수는 1월17일 35477.75(종가 기준)로 1년 전(26138.68)보다 35.7%, 한 달 전인 12월18일(32758.98)보다는 8.3% 올랐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증권사 분석가는 “일본 거래소가 기업에 주주가치 제고 노력을 강조한 것이 엔화 약세 등과 함께 닛케이지수를 끌어올렸다”며 “우리는 아직 종합적인 정책을 내놓기보다 단편적인 세금 깎아주기만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시절 낙수효과 미미해

감세는 ‘현금’이지만, 경기 부양은 ‘어음’이다. 재정에 당장 악영향을 미치지만, 향후 세수 확대는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낙수효과만 기대하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1월10일 열린 민생 토론회에서 “고급의 벤틀리 승용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직장을 갖게 되고, 거기에 협력업체들이 작은 중소기업까지 전부 뛰어들어가서 일을 하게 되기 때문”이라며 “만약에 보유 자체에, 비싼 물건을 가지고 있어서 좋은 집을 가지고 있어서 거기에 과세를 한다면 그런 집을 안 만든다”고 말했다. 고소득자의 소비가 경제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낙수효과를 들이밀고, ‘부자 감세’란 비판에 반박한 셈이다.

앞서 감세를 단행한 이명박 정부 시절 낙수효과는 미미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추며 감세가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2014년 국회예산정책처가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오제세 의원의 의뢰로 분석한 ‘MB정부 감세정책에 따른 세수효과 및 귀착효과’ 자료를 보면, 2009~2013년 법인세 인하에 따른 감세 효과는 37조2천억원이었는데, 국내 4대 그룹의 투자는 오히려 줄고 사내유보금은 88조원에서 94조원으로 늘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우리나라는 돈이 부동산 쪽으로 많이 가니까, 주식으로 유도할 필요는 있다”면서도 “전반적으로 깎아주면 세수 부족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이를 종합적으로 검토하면서 발표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금투세와 거래세는 패키지로 논의해야 하는데, 금투세는 계획과 달리 없애겠다면서 거래세는 계획대로 인하하겠다고 해서 종합적인 논의가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과거 경험상 낙수효과가 잘 관찰이 안 되는데다 현재 민간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데 자꾸 정부 역할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2015년 보고서에도 낙수효과 대신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소득을 높이는 방안이 효과적이라는 분석이 있다. 보고서는 “소득 불평등을 줄이는 것은 우리 시대의 결정적인 도전”이라며 “하위 5분위의 소득 비중이 1% 증가하면 GDP는 0.38% 증가하는 반면, 상위 20%의 소득 비중이 1% 증가하면 GDP 성장률은 0.08%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금융소득, 양도소득… 유독 낙수효과 안 생기는 분야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원장을 지낸 김유찬 전 홍익대 교수는 “감세 분야가 금융소득, 부동산·주식 등 자산양도소득, 반도체 투자 세액 확대 등 유별나게 낙수효과가 적은 분야만 골라서 하고 있다”며 “이른바 ‘부자 감세’는 세후소득이 늘어도 이를 소비에 사용하기보다는 다른 투자에 사용해 순환경제의 활성화 측면에 도움이 안 되는 분야”라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노골적인 부자 감세를 단행하고 지출 축소로 인한 부정적 경제효과가 겹쳐서 저소득층의 경우 시장에서의 1차적 분배 효과와 재정과 조세를 통한 2차적 분배 효과의 두 분야에서 향후 수년간 심각한 수치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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