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철주 주성엔지 회장 "AI가 99% 분석해도 1% 결정은 사람 몫···리더역할 더 중요"
4차산업시대 한눈 팔면 쫓아가기도 어려워···미래기술 결단 필요
창업 후 30년 매 순간 위기였지만 R&D 1조 등 '혁신'으로 극복
생존하려면 최초·유일 제품 승부···'기득권·고정관념'부터 깨야
“회사를 처음 설립한 후 오늘까지 30년 넘게 위기가 아닌 때가 없었습니다.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위기 속 절실함은 혁신의 기반이 됩니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결국 ‘혁신’밖에 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혁신을 통해 세계 최초·유일의 제품·서비스를 만드는 것만이 위기를 넘어 더욱 크게 성장해갈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21일 경기도 용인의 주성엔지니어링 연구개발(R&D)센터에서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을 만났다. 황 회장은 1993년 서른 넷의 나이에 반도체 장비 업체 주성엔지니어링을 창업한 ‘벤처 1세대’다. 황 회장은 당시 국산 반도체 장비 개발에 성공하면서 관련 시장에 커다란 바람을 일으켰고 1999년에는 코스닥에도 입성했다. 하지만 화려한 데뷔 직후 크고 작은 시련이 안팎에서 파도처럼 밀려왔다. 2001년 주거래처를 잃으며 회사가 휘청였다. 기까스로 수습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산업 구조조정까지 연이어 닥쳤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3고 현상’에 세계 각지에서 끊이지 않는 전쟁과 분쟁, 인공지능(AI) 혁명, 그리고 70개국에서의 선거 등 온갖 불확실성 리스크가 엄습한 상황이다. 하지만 황 회장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혁신이라는 열쇠만 있으면 새로운 문을 열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실제 그는 1시간 정도 진행된 인터뷰 동안 ‘혁신’이라는 단어를 무려 63번 말했다. 황 회장은 “어려울 때일수록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제품·서비스를 만들어 새로운 수요처를 발굴해야 한다”며 혁신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절실함은 혁신을 만든다=황 회장이 혁신을 통해 위기를 뚫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후배 기업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다. 지난해 국내 벤처·스타트업은 고금리 탓에 벤처 투자가 급격히 줄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많은 기업들이 불가피하게 구조조정에 나서기도 했다. 중소·중견기업들도 대중(對中) 수출이 줄고 내수가 침체되면서 경영난에 시달렸다. 당장 대출이자를 갚고 임직원에게 월급을 주는 것마저 힘에 부치는 기업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에게 황 회장이 겪었던 수많은 고난은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이 될 수 있다. 황 회장은 먼저 2001년을 회상했다. 당시 주성엔지니어링은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국내 주요 수요처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승승장구하던 중 닥친 위기라 타격감이 더 컸다. 황 회장은 “기술이 있고 돈도 있는데 물건을 팔 수요처가 없었다”며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았다”고 말했다. 관성을 깨고 새로운 성공 방식 찾기에 나섰고, 새 방식에 맞춰 회사의 영업 방식 등을 대대적으로 바꿨다.
국내 공급이 끊긴 ALD 장비를 2002년 대만에, 2004년에는 일본에 수출하는 성과를 냈다. 2006년에 개발한 신개념 증착 장비 ‘SD CVD’는 같은 해 대한민국 기술대상 대통령상 수상과 대한민국 10대 신기술 선정으로 이어졌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1864억 원의 매출을 거뒀다. 또 현재 세계 굴지의 반도체 제조 기업들에 장비를 공급하고 있다. 황 회장은 “경영 환경이 어렵더라도 혁신을 통해 돌파구를 찾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또 그는 지난 30년 동안 힘든 상황에서도 R&D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R&D에 1조 원 이상을 투자했다. 그 덕에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술·제품이 19개에 달한다. 보유 특허도 3000개에 이른다.
그가 남달리 강한 의지로 어려움을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성장 환경의 영향도 있다. 그는 경북 고령의 빈농 집안에서 6남매 중 막내로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 상경을 결심한 아버지를 따라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했지만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일반고 대신 공업고등학교 전자과에 들어갔고 졸업 후에는 울산으로 내려가 섬유 공장을 다녔다. 그렇게 공장에서 일하던 중 공고 졸업자에게 대학 특례 입학 기회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인하공업전문대학에 진학했고 이후 인하대 전자공학과에 편입했다. 황 회장은 이 시기를 떠올리며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며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매 순간 정진하고 변화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리더가 앞장서 변화 이끌어야=황 회장은 기업 경영을 매 순간 생존 경쟁이 벌어지는 사파리에 빗댔다. 약자일 때는 천적이 즐비하고 강자가 되면 왕좌를 노리는 경쟁자가 끊임없이 나타나는 야생 생태계와 기업 경영 환경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주성엔지니어링을 창업한 후 30년 경영을 하는 동안 사방이 적군이었다”며 “좋은 위치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경쟁자는 더 많아지고 생존 경쟁이 치열해졌다”고 전했다. 이어 “아무리 힘이 세더라도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이 세상의 순리”라며 “기업도 생존하기 위해 변화를 거듭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리더가 앞장서 기업의 변화를 주도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은 한눈을 팔면 쫓아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만큼 리더가 미래 기술 흐름을 포착해 제때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기업은 도태된다는 것이다. 황 회장은 “현재 내놓는 혁신 기술은 시간이 지나면 과거 기술이 되는데 최근에는 둘 사이의 ‘텀(기간)’이 너무 짧아졌다”며 “그 어느 시대보다 리더의 분석과 판단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 세계를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AI 혁명에 대한 그의 생각은 무엇일까. 미국 오픈AI가 개발한 ‘챗GPT’가 촉발한 AI 혁명은 최근 전 산업군에 침투하며 변화를 이끌고 있다. 일각에서는 AI가 머지않은 미래에 대부분의 의사 결정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대해 황 회장은 “AI가 99%의 분석 결과를 내놓아도 결국 나머지 1%를 결정해야 하는 몫은 사람에게 있을 것”이라며 “AI 시대에 리더의 역할은 오히려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기득권·고정관념 출입 금지’=용인에 있는 주성엔지니어링 R&D센터를 방문하면 보안 게이트에 적힌 ‘기득권과 고정관념은 출입 금지’라는 문구가 먼저 눈에 띈다. 또 연구소에 2층과 3층을 연결하는 미끄럼틀이 설치돼 있는 점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무슨 의도일까. 황 회장은 “지식이 부족해서 혁신을 하지 못하는 경우보다 기득권과 고정관념 때문에 바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동안 경영하면서 깨우친 것을 바탕으로 적어놓은 문구”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미끄럼틀은 서로 다른 부서에 있는 2층·3층 임직원이 빠르게 오가며 소통하라는 의미”라고 밝혔다.
그는 이 같은 문구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R&D 부문에 고졸과 인문계 출신을 채용하는 인사 제도가 대표적이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신입 사원 공채에서 성별과 학력·전공·경력을 묻지 않는다. 이 조건들이 인재를 판단하는 고정관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태양광 제조 장비가 주력인 기술 기업으로서는 파격적인 조치다. 황 회장은 “막상 고졸 사원을 뽑아보니 대졸 사원과 별 차이가 없다”며 “굳이 대졸이나 이공계 졸업자와 선을 그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명 대학 출신의 박사 학위자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황 회장은 국내 중소·벤처기업들이 경영을 이어나가려면 ‘세계 경영’이 필수 선택이라고 했다. 해외 선진 기술을 모방해 성장하던 시대는 지났고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지 않으면 성장은커녕 생존하기 어려운 시대가 왔기 때문이라는 게 황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1등을 하지 못하면 충분히 이윤을 낼 수 없고, 이윤을 못 내면 높아진 국내 임금 수준을 맞출 수 없다”며 “시작부터 목표를 글로벌로 잡고 성과를 내야 한국에서 기업 경영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He is···
△1959년 경북 고령 △1986년 인하대 전자공학과 △1986년 한국 ASM 근무 △1993년 주성엔지니어링 창립 △1999년 진공학회 부회장 △2005년~ 일운과학기술재단 이사장 △2007년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부회장 △2009년 태양광산업협회 부회장 △2010~2012년 벤처기업협회 회장 △2010~2015년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 △2015~2016년 청년희망재단 이사장 △2017~2018년 제어로봇시스템학회 회장
이덕연 기자 gravity@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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