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전 신체검사 요구’는 왜 유령 규정이 됐나···LG 함덕주 사태가 벌어진 이유[스경x이슈]

김은진 기자 2024. 1. 2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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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덕주(오른쪽)가 지난해 12월24일 FA 계약으로 LG에 잔류한 뒤 차명석 LG 단장과 악수하고 있다. LG 트윈스 제공



LG는 지난 12월24일 좌완 함덕주와 4년 총 38억원에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했다. 38억원 중 절반에 가까운 18억원이 옵션으로 붙어 화제도 됐다.

불과 3주 뒤인 지난 16일, LG는 함덕주가 왼쪽 팔꿈치 주두골 미세골절로 수술받았다고 발표했다. FA 계약한 지 한 달도 안 된 투수가 던지는 팔이 골절됐다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예상 재활기간은 6개월, 함덕주는 아무리 빨라도 전반기를 마칠 때나 복귀한다.

LG는 ‘FA 계약 뒤’ 신체검사를 하면서 함덕주의 부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LG 구단관계자 입을 통해 “FA 신분일 때는 메디컬테스트를 할 수 없었다”는 틀린 정보가 전파됐다. “FA는 보류선수가 아니라 구단 메디컬테스트 의무가 없기 때문”이라는 희한한 설명도 더해졌다. FA 선수를 상대로는 계약 전 메디컬테스트를 할 수 없게 돼 있고, 이에 계약후 했더니 부상이 발견됐다는 의미로 전해졌다.

그러나 KBO 규약에는 명확하게, 구단이 계약 전 선수에게 신체검사를 요구할 수 있게 돼 있다. <야구선수계약서>의 제11조 [건강진단]에서 “선수는 참가활동에 유해한 육체적, 정신적 결함이 없다는 것을 밝히고 구단의 요구가 있으면 건강진단서를 제출할 것을 승낙한다. 또한 구단은 계약 전에 구단이 지정하는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요구할 수 있으며 신체검사 후 신체적 또는 정신적 결함이 발견되거나 선수가 건강진단서 제출을 거부할 경우에도 계약을 무효화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구단에게 계약 전 선수 상태를 최소한 확인해볼 수 있는 권리, 선수가 응하지 않으면 계약을 무산시킬 권리도 주고 있다. 구단과 선수가 사인해 주고받는 계약서 자체에도 그대로 기재되는 내용이다. 보류선수든, FA든, 비FA 다년계약 선수든 전부 같은 계약서로 계약하므로 KBO 모든 선수 계약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규정이다. “FA 신분이라 계약 전에는 신체검사를 할 수 없었다”고 한 설명대로라면 LG는 그야말로 규정을 잘못 알고 선수 몸 상태도 체크 못한 채 계약한 셈이 된다.

현실적으로, 이 [건강진단] 조항은 대형 계약에 있어 유명무실한 규정이 되고 있다. 대부분의 FA 계약에서, 특히 몸값이 높고 경쟁이 붙은 대형 FA일수록 구단의 ‘계약 전 신체검사 요구권’은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최근 몇 년 사이 대형 FA 계약을 여럿 체결한 한 구단 관계자는 “우리도 계약 전 메디컬테스트를 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C등급 선수에게는 쉽다. 그러나 특급 FA일수록 경쟁이 붙기 때문에 (요구하기가) 애매해진다. 선수가 ‘날 못 믿나’ 하는 생각을 하더라”며 “계약에 옵션이 붙을 때 동기부여의 옵션이 있고 안전장치로서 옵션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메디컬체크를 못하면 후자쪽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체검사 결과가 몸값에 워낙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다보니 선수들이 거부감부터 느끼기 쉽고, 선수가 유쾌하게 여기지 않는 요구를 해야 하니 구단은 영입 경쟁에서 밀려날 우려를 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구단 관계자도 “특히 외부 영입시에는 메디컬테스트를 요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선수들이 꺼려하는 분위기가 있다. 우리는 요구했는데 다른 구단은 따지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가면 선수가 거기로 가버리기도 한다”며 “100억 넘는 계약을 하는데 선수 자존심 때문에 체크도 안 해보고 그냥 계약하는 풍토에는 문제가 있다고 우리도 생각한다. 규정대로 준수할 수 있도록, 구단은 요구하고 선수는 응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내부 FA일 경우에도 선수들이 신뢰 문제로 해석하다보니 구단들이 선뜻 요구하지 못한다. 결국 구단들도 이 부분에 있어서만은 좋은 게 좋은 식으로 계약하는 분위기가 반복되고 LG처럼 “FA는 계약 전 신체검사를 할 수 없게 돼 있다”고 주장하는 구단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내부 선수에 대해서는 원소속구단이 선수 몸 상태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NC 구창모 사례처럼 알고도 틀리는 경우가 있다. NC는 잦은 부상으로 한 번도 규정이닝을 못 채운 구창모와 지난 겨울 6+1년 132억원의 비FA 다년계약을 했으나 구창모는 올해도 부상으로 51.2이닝밖에 던지지 못했다. 내부 선수도 부상 전력이 있다면 수년 간을 보장해야 하는 계약에 앞서서는 더 철저한 확인을 거칠 필요가 있다.

신규 선수 상한액이 100만 달러로 한정돼 있는 외국인 선수에 대해서는 미국보다 철저한 국내 검진을 하는 구단들이 국내 선수 대형 계약에 있어서는 눈치보느라 규정에 있는 신체검사 요구도 못하는 분위기는 결과적으로 ‘거품’ 혹은 ‘먹튀’ 위험을 높인다. 피해는 구단의 몫이다. 리그 계약 문화와 직결된다.

FA 계약은 실제로는 과거가 아닌 미래 가치를 보장하는 계약이다. 계약 전 신체검사는 상식적으로도 당연한 절차다. 구단들은 그 계산이 맞는지 당연히 확인할 필요가 있고, 선수들은 자신이 계약기간 동안 건강하게 뛸 수 있는 상태임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할 도의적 의무가 있다. 대형 계약에 대한 선수들의 책임감도 더욱 절실해지는 시대다.

최근 비FA 다년 계약까지 급격히 늘면서 수십억원대 이상 계약이 수두룩하다. 구단이 눈치보지 않고 계약 전 신체검사를 요구하고 선수는 당연히 응하는 리그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이미 변화하기 어렵다면 ‘구단의 권리’가 아닌 ‘쌍방 의무’로 수정할 필요도 있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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