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딪히고 쓰러져도 흔들리지 않은 황인범, 한국 축구 중원에도 기둥이 생겼다
상대의 거친 견제에 그라운드에 나뒹굴고 부상으로 절뚝거려도 전혀 물러섬이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이젠 어엿한 한국 축구의 대표 ‘야전사령관’이 됐다. 황인범(28·츠르베나 즈베즈다)이 아시안컵 조별리그 첫 2경기에서 엄청난 활약을 선보이며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황인범은 20일 카타르 도하의 앗수마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르단과의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E조 2차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박진섭(전북)과 교체될 때까지 풀타임에 가깝게 그라운드를 누볐다.
결과는 아쉬운 2-2 무승부로 끝났지만, 황인범이 아니었다면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할 수도 있었다. 한국은 전반 9분 만에 손흥민(토트넘)의 페널티킥 선제골로 기선을 제압했으나 이후 펼쳐진 요르단의 강력한 공세에 말려 전반 막판 2골을 내리 내주고 역전을 허용했다. 후반 들어 홍현석(헨트), 정우영(슈투트가르트) 등 공격 자원들을 대거 투입, 일방적으로 두들겼음에도 좀처럼 골이 터지지 않았고, 결국 후반 추가시간까지 1-2로 끌려가며 패색이 짙어지는 듯했다.
그 때 황인범이 해결사로 나섰다. 후반 추가시간 1분 손흥민이 왼쪽에서 넘긴 컷백을 황인범이 논스톱 슈팅으로 마무리한 것이 야잔 알아랍의 발을 맞고 골대로 들어갔다. 공식 기록은 알아랍의 자책골로 기록됐지만, 사실상 황인범이 다 만든 골이었다.
황인범은 앞서 손흥민의 선제골에도 큰 기여를 했다. 전반 9분 황인범이 요르단 수비 뒷공간을 파고 드는 손흥민을 향해 날카로운 침투 패스를 전달했고, 당황한 요르단의 에산 하디드가 파울을 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비디오판독(VAR) 끝에 페널티킥이 선언됐고, 손흥민이 이를 파넨카킥으로 성공시키며 기선 제압을 할 수 있었다.
파울루 벤투 감독 시절, ‘벤투호의 황태자’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중원의 핵심 역할을 했던 황인범의 가치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부임한 뒤에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그리고 많이 뛰는 그가 있어 한국의 중원은 늘 든든하다. 특히 공격수들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이번 아시안컵에서는 ‘해결사 본능’까지 십분 발휘하고 있다. 바레인과 1차전에서도 전반 38분 이재성(마인츠)의 패스를 받아 왼발 슈팅으로 선제골을 넣은데 이어 한국이 2-1로 앞선 후반 23분에는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의 쐐기골을 어시스트했다.
또 황인범은 중원 어디에 놔도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요르단전만 봐도 전반에는 수비형 미드필더 박용우(알아인)의 앞에서 팀 공격을 돕는 역할을 했지만, 후반 들어 박용우가 교체되어 나간 후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내려가 공수를 조율했다.
이런 황인범을 상대가 심하게 견제하는 것은 당연하다. 황인범은 요르단전에서 경기 시작 후 얼마되지 않아 상대 선수와 무릎을 부딪히면서 한동안 그라운드에 쓰러져 있는 등 경기 내내 그라운드를 나뒹굴다시피 할 정도로 상대 견제에 심하게 시달렸다. 통증을 참지 못해 뛰면서 절뚝거리는 모습까지 보였으나 조금도 꺾이지 않은 투지로 버텼고, 그 투지가 끝내 극적인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등 공격과 수비에 든든한 버팀목이 생긴 한국 축구가 중원에 또 하나의 기둥을 세웠다.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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