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인이 건네는 ‘책 읽는 마음’

임지선 기자 2024. 1. 2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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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김언 ‘독서의 기록’ 나란히 출간

수많은 책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무엇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여기 두 시인이 내미는 독서록이 있다. 박연준 시인이 고전 39권을 읽은 기록 <듣는 사람>(난다), 김언 시인의 문학적 자양분이 된 독서일기 <오래된 책 읽기>(아침달)가 최근 출간됐다. 두 시인이 책에서 얻은 깊고 넓은 마음을 따라가볼 기회다.

박연준 시인은 고전을 “읽고 또 읽어도 닳지 않는 책”이라며 “작가는 죽고 없는데 이야기는 살아남아 여전히 세상을 여행하는 책”이라고 했다. 그가 소개하는 고전은 동서양과 고금을 가로지른다.

그가 전한 첫번째 책은 이태준의 <무서록>(범우사)이다. “문장이 빼어나고 사유가 그윽하며 펼치는 곳마다 머물러 보고 싶은 산문집”이라고 소개했다. 1941년에 발간된 책이 80여년이 지나도 살아 있다는 것. “시시콜콜하게 살아가는 일은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연준은 고전을 두고 무언가 배워야 한다는 생각보다 먼저 “느껴보기”를 추천한다.

시인은 서른을 코앞에 두고 불안한 이들에게 잉에보르크 바흐만의 <삼십세>(문예출판사)를 권했다. 바흐만은 서른이란 “시간을 ‘자기편으로 구부려놓고’ ‘자신에게만’ 몰입이 가능한 나이”라고 했다. 박연준은 “서른을 맞이하는 인간은 미숙과 성숙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존재”라며 “이 책은 서른을 코앞에 둔 인간의 불안한 마음과 혼란을 치열하게 그린 명작”이라고 했다.

목차에서 마주하는 <호밀밭의 파수꾼> <사양> <동백꽃> 등의 이름은 익숙하다. “언제 읽어도 제 심장을 뛰게 하고 옆 사람의 팔을 잡아끌며 일독을 권하게 만드는 고전”이라는 말에 다시금 책들을 펼쳐보고 싶다.

김언 시인의 <오래된 책 읽기>는 시인이 오래전부터 써온 독서일기장을 엿보는 느낌이다. 최근 책이 아닌 주로 2000년대에 출간돼 잊혀가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시 쓰기에서 전환점에 해당하는 시기 직전에는 전환점을 마련해준 책 몇 권이 항상 있었다”고 했다.

시인의 독서일기는 인문과 과학의 경계를 허물고, 오래된 시간으로도 날아간다. 리베카 솔닛, 김언수, 다이앤 애커먼 등의 책을 소개한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21세기 지(知)의 도전>을 소개하는 글에선 2003년 논란이 된 이라크 파병 이슈가 언급된다. 김언은 당시 명색이 시인이면서 반전시 하나 제대로 쓸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현재의 미국을 그토록 오만하게 만든 배경 중에 첨단의 과학기술이 숨어 있다”며 “우리가 한 명의 뛰어난 과학자를 배출하지 못하는 동안 우리는 앞으로도 숱한 전쟁에서 도덕적 양심과 현실적 국익이라는 말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과학기술을 알아야 한다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말에 호응하는 시인의 글은 지금도 유효하다.

김언은 책을 시작하며 “무엇이든 들어가는 것이 있어야 나오는 것이 있다”는 격언을 꺼냈다. 그는 “내일 새롭게 생각할 것이 떠오르려면 오늘 무슨 책이라도 새롭게 읽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라고 했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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