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린 반려동물, 사망한 주인 훼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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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호주에서 69세 남성이 혼자 사망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집에 경찰들이 방문했다.
연구팀은 "훌륭한 검시관이나 법의학자 등이 존재한다 해도 증거를 제대로 확보하지 않으면 사망 원인이 불분명해진다"며 "새로운 수사 흐름도는 반려동물이 있는 사건현장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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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호주에서 69세 남성이 혼자 사망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집에 경찰들이 방문했다. 경찰들은 문을 열었을 때 남성 시신 한 구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30여 마리의 고양이들이 쏟아져나왔다. 바닥에 놓인 남성의 얼굴은 두개골이 드러난 상태였으며 폐와 심장은 사라졌다.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특이한 사례에 해당한다고 보지 않는다. 애지중지 키운 반려동물일지라도 굶주림에 못 견디면 죽은 사람을 먹을 수 있으며 이를 고려한 수사 기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샌드라 뢰쉬 스위스 베른대 법의학연구소 연구원 연구팀은 반려동물이 수사 현장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량화를 통한 수사 기법 개선이 필요하다는 논문을 지난달 16일 국제학술지 ‘포렌식 과학, 의학, 병리학’에 발표했다.
범죄현장에서 시신이 훼손되면 수사에 어려움이 생긴다. 내장이 사라지면 독소에 의한 사망 여부를 파악하기 어려워지고 생식기가 사라졌다면 성범죄 발생 여부를 파악할 수 없다. 경찰이나 법의학자, 병리학자 등이 충분한 데이터를 얻으려면 사건 현장의 반려동물에 대한 조사가 수반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선행 연구들에 따르면 동물의 종류에 따라 시신을 훼손하는 방식에 차이를 보였다. 개는 사람의 얼굴과 목을 물고 갈비뼈를 부러뜨리는 특징을 보인 반면 고양이는 윗입술, 코, 손가락 등 피부 부위를 건드리는 경향을 보였다.
일반적으로 개에 의해 훼손되는 일이 더 많았지만 배고픔이 시체를 건드리는 주된 동기로 분석되는 만큼 어떤 동물이든 시체를 먹는 행동을 할 수 있다. 주인이 갑작스럽게 사망하거나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돼 죽음을 맞았다면 반려동물은 주인을 걱정하며 얼굴을 핥는 등의 행위를 한다. 하지만 온기가 사라진 집에서 굶주리게 되면 결국 주인을 먹이로 인식할 수 있다.
지금까지 반려동물 시체 섭취 관련 사실은 개별 사례 보고들로만 알려져 왔다. 이를 정량화한 연구는 거의 수행되지 않았다. 이에 연구팀은 개, 고양이, 햄스터가 주인의 시체를 훼손한 사례와 관련한 수십 편의 보고서를 수집해 종합 검토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조사 과정에 반려동물이 방해가 된 사례들을 추렸다. 해당 사례들은 조사관이 현장에서 반려동물 관련 증거를 문서화하지 않았다는 점, 훼손된 패턴을 구별하지 못했다는 점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연구팀은 동물의 크기, 품종, 치아, 발톱, 털, 대변, 마릿수 등에 주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범죄현장을 살피는 최초의 조사관을 위한 수사 흐름도도 개발했다. 동물에 의해 훼손된 것으로 의심된다면 털, 대변, 마릿수 등의 샘플을 수집하고 사진, 3D 스캔, DNA 분석 등을 기반으로 동물이 훼손을 했는지 판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동물의 시체 섭취가 송장벌레의 발생 시점에 영향을 미쳐 사망 원인 시간을 추정하는 데 방해가 됐는지 여부도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다.
연구팀은 “훌륭한 검시관이나 법의학자 등이 존재한다 해도 증거를 제대로 확보하지 않으면 사망 원인이 불분명해진다”며 “새로운 수사 흐름도는 반려동물이 있는 사건현장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세영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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