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공간 찾아왔는데”…혁신파크 개발에 밀려나는 장애인 치과 [빼앗긴 공간, 밀려난 사람]

이예슬 기자 2024. 1. 21. 15: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⑥서울 혁신파크의 장애인 치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내에 있는 더스마일 장애인 치과 내부. 휠체어를 이용하는 환자들을 위해 진료실 출입문을 문턱이 없는 형태로 설계했다. 이예슬 기자

“환자분이 다른 곳은 무섭다고 도망가는데 여기는 잘 적응해서 일부러 찾아오는 거예요”

지난 17일 오전 10시쯤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 있는 더스마일 장애인 치과에서 장애인 활동지원사 최현자씨(58)가 말했다. 이날 두 달 만에 치과에 방문한 최씨는 치과 이전 소식을 듣고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서울혁신파크가 운영을 종료하면서 입주 단체 대부분은 지난해 퇴거했다. 이 건물에 입주한 시립은평청소년성문화센터, 오디세이학교 공간도 이날 철거가 진행 중이었다.

장애인 치과는 아직 퇴거하지 못했다. 장애인 치아 진찰에 적합한 ‘안전한 공간’을 구하기 쉽지 않은 데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끊이지 않아서다. 치과는 퇴거를 못한 기간만큼 변상금을 부과받고 있다.

이용객들은 치과 이전 소식에 불안해했다. 장애인인 오빠와 치과에 방문한 박모씨(53)는 “상가 건물은 보통 엘리베이터가 1대뿐이라 다른 이용객들이 휠체어를 배려해주지 않으면 무한정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곤 했다”며 “상가로 이전하면 또 비슷한 일이 벌어질까 걱정”이라고 했다. 박씨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장애인이라 쳐다보거나 뭐라고 해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는데 여기는 공원 안이라 한적해서 장애인 환자들도 여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더스마일 장애인 치과가 위치한 서울혁신파크의 참여동 건물. 입구 바로 앞에 장애인 전용 주차공간이 마련되어있다. 이예슬 기자

더스마일 장애인 치과가 처음 서울혁신파크에 입주한 이유도 장애인 환자의 편의와 안전 때문이었다. 치과 관계자는 “발달 장애 아동은 치료 중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해 위험할 수 있는데 혁신파크는 공원 안이라 안전했다”며 “발달 장애 아동이 소리를 지르거나 드러누워도 공원 안이다 보니 일반 상가보다 보호자들도 눈치를 덜 본다”고 했다.

공공기관 건물의 장애인 친화적 환경도 서울혁신파크의 이점이었다. 박씨는 “장애인 전용 주차공간이 있어 일반 상가랑 달리 장애인 콜택시를 주차하거나 휠체어 내리기도 용이했다”고 했다. 박씨는 이날도 치과 바로 앞 장애인 전용 주차공간에서 휠체어를 내린 후, 건물의 경사로와 자동문을 통해 치과로 향했다. 장애인보조시설에 종사하는 김종수씨(51)는 “일반 상가는 전동휠체어 하나 이동하기도 협소하다”면서 “이전하게 되면 가급적 1층이었으면 한다”고 했다.

17일 11시쯤 장애인 치과를 방문한 환자와 보호자가 경사로와 자동문을 통과해 치과로 이동하고 있다. 이예슬 기자

재단 관계자에 따르면 장애인 치과는 은평구 내 한 상가 건물로 3월 말쯤 이전할 예정이다. 재단 관계자는 “기존 환자들을 위해 멀지 않은 곳으로 이전할 계획”이라면서도 “환자들이 원하는 ‘1층 부지’나 ‘엘리베이터가 여러 대 있는 상가’를 찾기는 쉽지 않아 아쉬운 상황”이라고 했다.

이 치과의 다른 관계자는 “환자들에게 안전하고 편리한 공간을 찾아 1억원 가까이 들여 이전했는데, 3년 만에 또 이전하게 됐다”면서 “서울시는 계약이 종료됐으니 다 끝났다는 식인데, 3년 만에 나갈 줄 알았으면 큰돈 들여 여기로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적법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개발 계획이 발표됐을 당시 퇴거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이미 공지했다”고 했다. 서울시는 현재 더스마일 장애인치과를 비롯해 퇴거하지 않은 입주단체들을 상대로 명도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예슬 기자 brightpearl@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