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통과만으론 끝이 아니다…‘개 식용 금지’ 이후 남은 것
“대형견 견사가 턱없이 부족해요. 지금도 구조된 도사견들은 외부에 위탁을 맡겨 보호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난 16일 찾은 경기 남양주시의 동물자유연대 보호소 ‘온센터’에서 조은희 동물자유연대 팀장이 말했다. 견사는 개 농장·도살장·길 등에서 구조된 230마리의 개로 가득 차 있었다. 복도 한쪽 일렬로 배치된 각 견사에서 활동가의 기척을 느낀 개들이 일제히 짖었다.
조 팀장은 “식용견 목적으로 길러지던 대형견들은 영역을 지키려는 습성 때문에 여러 마리를 같이 견사에 넣으면 싸움이 날 수 있어 한 마리씩 수용해야 한다”며 “수용할 공간이 모자라 외부 보호소에 맡겨 보호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지난 9일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 동물권 단체들과 동물법 전문가들은 환영과 우려의 반응을 동시에 보였다. 법 시행은 3년 뒤인 2027년. 이들은 법안 통과 이후의 후속 과제가 차질 없이 마련될 수 있을지 우려한다. 식용으로 길러지던 개들에게도, 개를 기르고 팔아 생계를 이어온 농장주들에게도 이후 3년을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남았다.
넘쳐나는 구조견…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정부는 전국 개 농장에 52만마리의 식용견이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한주현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모임 변호사는 “지방자치단체와 민간 운영 센터들은 유기동물로 넘쳐난다”며 “개 농장에 있던 개들을 어디에다 수용할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했다.
12년 전 개 농장에서 구조돼 온센터에서 지내는 도사견 ‘초코’는 사람을 잘 따르는 순한 성격임에도 입양을 가지 못했다. 조 팀장은 “식용견으로 많이 길러지는 도사견은 맹견으로 분류되고, 덩치가 커 아파트에서 키우기 어렵다. 국내 입양은 거의 갈 수 없다”며 “해외로 입양을 가거나 센터에서 생을 마감하는 개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 대표 서국화 변호사는 “법 통과 후 마무리까지 제대로 하지 않으면 동물 복지 분야에서 심각한 후폭풍이 올 것”이라며 “구조될 개들의 현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시설과 인력을 충원하는 등의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으면 개들의 보호·관리에 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동물권 단체에서는 방치 끝에 오갈 곳을 찾지 못한 개를 안락사시키는 일이 생길까봐 우려한다. 신주운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는 “정부 및 지자체가 추가로 시설을 세워 개를 수용하는 방법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뜬장(망으로된 바닥이 공중에 떠 있는 철제 사육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구조견들 중에는 입양을 위해 사회화 교육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사람을 만난 경험이 부족하고, 학대 트라우마로 사람들과 지내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신 활동가는 “결국 법안의 목적은 동물 피해의 최소화”라며 “법의 목적을 실현하려면 구조된 개의 치료비·돌봄 훈련 비용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개 농장주, 무조건 비난보다 전업 도와야”
개 농장과 도살장을 운영하는 식용견 관련 업체 종사자들의 보상과 전업도 쉽지 않은 문제다. 양종태씨(74)는 지난해 3월 동물보호단체 HSI의 도움을 받아 30년간 운영한 300평 규모의 개 농장을 정리했다. HSI는 양씨에게 보상금을 지급했고, 농장에서 구조한 개 200마리는 해외로 입양을 보내고 있다.
양씨는 “정부에서 개 농장을 못 하게 한다는 얘기를 듣고 포기를 결심하던 차에 단체(HSI)에서 연락이 왔다”며 “미리 정부에서 보상 등을 얘기해서 도와줬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상경 HSI 팀장은 “농장주를 무조건 비난하기보다는 전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면서 “법안에도 개 식용 산업의 전업·폐업을 지원하는 조항이 있지만,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할지는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법은 개 식용업 종사자에 관한 지원 조항을 정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향후 대통령령으로 정할 예정이다.
3년의 유예기간 안에 농장주가 빠르게 폐업을 결심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빠르게 폐업·전업 하는 농장주에게는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법에 명시된 대로 개 식용 산업 현장과 보호소의 실태조사를 시행할 예정”이라며 “농장주와 보상 지원 방안을 협의해 법을 이행할 체계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https://www.khan.co.kr/environment/environment-general/article/202401091706001#c2b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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