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만 삼성 감독이 ‘더블스토퍼’ 옵션을 지운 이유[안승호의 PM 6:29]
박진만 감독이 밝힌 ‘불팬 뎁스’ 활용법
“마무리는 한명” 역할 구체화 배경은
정규시즌만 144경기를 치러야하는 초장기전. KBO리그에서 투수는 다다익선이다. 그러나 많아서 생기는 고민도 있다. ‘활용법’, 역할 분담에 관한 정리가 필요하다.
프로야구 삼성은 이번 오프시즌 불펜투수를 모을 수 있는 만큼 모았다. FA 시장 최대어 중 한명이던 KT 마무리 김재윤과 우선 계약한 데 이어 샐러리캡의 마지막 여력 또한 언제든 마무리로 활용할 수 있는 베테랑 임창민 영입에 쏟았다. 삼성은 라이온즈 뒷문 역사의 상징과도 같은 오승환과도 FA로 2년 재계약했다.
여기까지는 구단의 일이다. 구단 운전대를 새로 잡은 이종열 단장은 “당초 구상과 가깝게 불펜 뎁스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공을 넘겨받은 박진만 삼성 감독 또한 지난 주중 전화 인터뷰에서 이 단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각을 나타냈다. 지난해와 달리 장기전 ‘뎁스 싸움’에서 계산이 서는 듯한 얘기를 했다.
박 감독은 이 대목에서 ‘운용’에 관한 언급을 했다. 늘어난 자원을 효과적으로 쓰는 것이 시즌 성패로 나타날 것으로 보고 세밀히 접근할 뜻을 나타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투수들을 두고 역할을 구체화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한·미·일 522세이브에 빛나는 이력의 오승환은 최근 뒷문에서 부침이 있긴 했지만 지난 시즌에도 30세이브를 거뒀다. 또 김재윤은 삼성이 4년 최대 58억원을 투자한 투수다. 둘 모두 가볍게 쓸 수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감독들은 에둘러 유연한 기용법을 꺼내곤 한다. ‘더블 스토퍼’라는 표제로 모든 가능성을 용인하는 방향성을 잡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박 감독은 이들 투수 기용법을 두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스프링캠프를 포함해 시즌 준비 과정을 거치면서 투수들 역할을 구체적으로 구분짓고 개막을 맞이하겠다”고 말했다.
박 감독 구상 속에 9회 마무리 투수는 한 명이다. 여기에 8회와 7회 등 경기 시점 및 흐름에 따른 투수별 보직을 조금 더 선명히 나눠놓고 장기 레이스에 접어들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박 감독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다. 박 감독은 오프시즌 구단의 전력 보강 과정을 들여다보며 정민태 투수코치를 포함한 주요 스태프 및 전력분석팀 등과 새 시즌 새 자원 활용법을 공유하며 최적의 ‘길 찾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 가운데는 1, 3루가 모두 가능한 새 외국인타자 데이비드 맥키넌을 3루수로 우선 쓰며 움직임을 살피기로 한 내용도 있다.
박 감독은 “투수는 본인 역할이 비교적 명확할 때 심리적으로도 빠르게 준비할 수 있다. 투수 파트와도 대화를 통해 새로 구성될 불펜진 역할을 나눠놓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투수들 스스로 경기 상황을 읽고 등판을 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마무리 카드가 많다는 것은 시즌 중 여러 변수에 순발력 있게 대응할 수 있는 배경이 될 전망이다. 박 감독은 마무리 투수로 이 중 한 명을 거명하는 것은 미뤘다. 다만 삼성은 새 시즌 1순위로 정해놓은 마무리투수에게 돌발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도 바로 2순위 카드로 대체하며 전력 공백을 최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통합우승을 한 LG 또한 부상을 안고 시즌을 시작한 마무리 고우석이 시즌 15세이브로 부침을 겪는 과정에서도 박명근(5세이브), 함덕주(4세이브), 김진성(4세이브) 등 다른 카드로 고비를 넘어갔다.
삼성은 지난해 10개구단 최다 역전패(38회)를 기록했다. 역전패 최소팀인 KT(20회)와 비교하자면 손해 본 ‘승패 마진’이 바로 보인다. 겨우내 이종열 단장은 불펜 뎁스 쌓기에 올인했고, 박진만 감독은 그들 각각의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낼 그림을 만들고 있는 1월이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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