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타'는 독일군의 생명수였다…전쟁이 낳은 식품들
원재료 부족 등 해결하기 위해 개발
얼마 전 유튜브를 보다가 한 외국인이 부대찌개 먹방을 찍는 영상을 봤습니다. 영어로는 부대찌개를 'Army Stew'라고 부르더군요. 처음에는 김치와 소시지, 콩조림까지 들어간 비주얼에 경악하며 먹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호들갑을 떨더니 맛을 본 후엔 너무 맛있다며 칭찬하는 게 '국룰'이죠.
내용 자체는 뻔한 영상이었지만 한 가지 인상깊은 장면이 있었습니다. 부대찌개 한 그릇을 다 먹은 출연자가 "전쟁이 아니면 생길 수 없었을 음식"이라고 말하는 부분이었죠. 소시지에 스팸, 콩조림에 김치, 두부까지 들어간 조합을 생각하면 수긍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니, 부대찌개 말고도 전쟁 때문에 태어난 음식이 더 있지 않을까 하는데까지 생각이 미쳤습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먹는 식품들 중 전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음식은 어떤 게 있을까요. [생활의 발견]에서 한 번 알아봤습니다.
1·2차 세계 대전
인류 역사에 큰 상처를 남긴 1, 2차 세계 대전은 그 규모와 기간 때문에 음식의 역사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실제로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 기간 동안 탄생한 음식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과일맛 탄산음료의 대명사 '환타'를 들 수 있습니다. 환타의 탄생에는 코카콜라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코카콜라를 물 대신 마실 정도로 대중화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2차 대전이 시작되면서 미국이 독일로 향하는 코카콜라 원액 공급을 끊어버렸습니다.
코카콜라는 원액 레시피를 철저하게 숨기기로 유명해 자체 제작이 힘들었습니다. 독일에선 결국 자체적으로 탄산음료를 개발하기로 하고 과일주스에 탄산 등을 섞어 새로운 과일탄산음료를 만듭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환타입니다. 환타는 독일군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깨끗한 식수 공급이 어려웠던 전선에서 환타는 생명수였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환타는 이제 코카콜라사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장수 제품으로 당당히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스팸' 역시 세계 대전이 낳은 음식입니다. 생긴 것부터 딱 '군용'이죠. 1차 대전에 병참장교로 종군했던 호멜이 살코기만 발라내 조미 후 캔에 넣는 방식을 고안해 '스팸'이란 이름으로 팔았고 2차 대전에서 군부대에 보급되며 전세계에 퍼졌습니다.
하나만 더 들어 볼까요. 지금도 군인들의 좋은 친구인 '건빵과 별사탕'이 있습니다. 출처는 일본군입니다. 원래 유럽과 미국에선 군인들에게 비스킷을 군용식으로 제공하죠. 일본군이 이를 보고 밀과 쌀 반죽을 구워내 말려 군에 공급한 게 건빵입니다. 여기에 군인들에게 부족하기 십상인 당분을 보충하기 위해 '별사탕'을 넣었죠.
부대찌개 말고 또
이 글을 부대찌개로 시작했었죠. 전쟁통에 생긴 음식 하면 한국인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음식이기 때문이었는데요. 사실 부대찌개 말고도 전쟁이 낳은 음식들이 꽤 있습니다.
한국전쟁과 관련된 대표적 음식으로는 '아귀찜'과 '밀면'이 있는데요. 아귀찜은 왠지 꽤 오래 전부터 먹었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전쟁이 끝난 후인 70년대가 돼서야 등장한 음식이라고 합니다. 그 전에는 잡아도 그냥 버리는 생선이었죠. 전쟁이 끝난 뒤 먹을 게 없어서 예전엔 버리던 아귀에까지 손이 가게 된 거죠.
밀면은 '대용품'이 자리잡은 케이스입니다. 함흥 지방의 냉면이 부산으로 넘어오면서 밀면이 된 거죠. 한국전쟁 당시 1.4 후퇴 때 경상남도까지 내려온 함흥 지역 사람들이 냉면을 만들려다가 메밀을 구하지 못해 밀가루로 만들었다는 게 정설입니다. 그래서인지 부산 밀면이 유행하기 전에는 다른 지역에서 밀면을 찾아보기 참 어려웠죠.
임진왜란 때 고추가 전래됐다는 건 다들 아실 겁니다. 하지만 고려 후기 몽골의 침략 때 소주와 곰탕이 전해졌다는 건 그만큼 유명하진 않습니다. 몽골 침략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술이라고 하면 막걸리 같은 탁주였습니다. 고려 후기에 몽골의 증류식 주조법이 전해지면서 '소주'가 등장하게 됐습니다.
곰탕도 비슷합니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몽골어 해설서 '몽어유해'에 따르면 몽골에서는 물에 소와 양 등을 넣어 푹 끓인 음식을 '공탕'이라 불렀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로 전해지며 '곰탕'으로 바뀌었다는 거죠. 하나 더, 이 공탕을 몽골어로는 '슈루'라고 읽었다고 하는데요. 네. 연상되는 이름이 있죠. 설렁탕의 어원이 '슈루탕'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설렁탕과 곰탕을 늘 헷갈려했는데, 같은 음식에서 갈라져나온 것이라 그런가 봅니다.
전쟁 때문에 맛있는 음식이 개발됐으니 전쟁에도 순기능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맛있는 음식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다른 동물들이 따라할 수 없는, 인간만의 특징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합니다. 오늘 저녁엔 왠지 부대찌개를 먹어야 할 것 같네요.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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