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알선수재죄, 구체적 현안 해결 대가였는지 입증해야”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해 업체와 컨설팅계약을 맺고 보수를 받았더라도 곧바로 알선수재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알선수재죄가 성립하려면 의뢰인에게 받은 보수가 구체적 현안 해결을 위한 대가였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며 예비역 장성에 대한 원심의 유죄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지난달 28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알선수재) 등으로 기소된 전직 국방부 전력자원관리실장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7500여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육군 소장 출신으로 국방부 전력지원관리실장을 지낸 A씨는 방산업체 B사로부터 5500여만원을 받고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을 알선한 것으로 조사돼 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B사로부터 ‘회사 애로사항을 군 관계자에게 설명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받았고, B사와 자문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실수령액 기준 월 300만원의 보수를 받고, 월 150만원 한도의 자문활동비를 별도 정산 받는 내용의 계약이었다.
또 그는 다른 방산업체 C사에도 고문 계약을 먼저 제안하고 군 관계자에 대한 로비 대가 명목 등으로 총 1900만원의 자문료를 지급받은 혐의도 받았다. 그는 군 재직 중 업체에서 3500여만원의 뇌물을 받았다며 수뢰 후 부정처사 및 부정처사 후 수뢰 등의 혐의로도 기소됐다.
1심과 2심은 A씨의 알선수재 혐의에 대해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 7500여만원 추징을 선고하고 수뢰 후 부정처사, 부정처사 후 수뢰 혐의에 대해선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A씨의 혐의가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해 금품이나 이익을 수수·요구 또는 약속한 사람을 처벌하는 특가법 조항에 들어맞는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A씨가 B사와 맺은 자문계약에 대해 알선수재 혐의가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알선수재죄 성립과 관련한 기준에 대해 “당사자가 붙인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이 아닌 자문 등의 계약이 체결된 경위와 시기, 의뢰 당사자가 피고인에게 사무 처리를 의뢰하고 그 대가를 제공할 만한 구체적인 현안이 존재하는지, 피고인이 지급받는 계약상 급부와 의뢰 당사자와 공무원 사이를 매개·중개한 데 대한 대가인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한 “현안의 중요도나 경제적 가치 등에 비추어 자문료 등 보수의 액수나 지급 조건이 사회 통념이나 거래 관행상 일반적인 수준인지, 보수가 정기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지 등 종합적인 사정을 바탕으로 계약의 실질에 따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해당 기준에 비춰봤을 때 대법원은 A씨가 B사와 체결한 자문 계약은 경영 일반에 관한 것일 뿐이라고 봤다. 대법원은 “이 사건 계약은 그 내용에 비추어 경영 일반에 관한 자문 용역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보수를 지급받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일반적 자문·고문계약이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해 금품을 수수한 것이라는 점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한 “A씨와 B사의 자문 계약은 회사의 임원 인사관리 규정에 의해 체결됐고, B사에는 A씨의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활용해 업무의 경제성·효율성·전문성을 도모할 유인이 있었다”면서 “자문 계약이 구체적인 현안의 직접적 해결을 염두에 두고 체결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A씨가 공무원들과 접촉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청탁이나 알선을 했다고 볼 만한 자료는 나타나 있지 않다”고 했다.
대법원은 A씨가 C사와 맺은 계약에 대해선 “알선수재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원심이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했다. 검사가 상고한 수뢰 후 부정처사와 부정처사 후 수뢰 혐의 원심의 무죄 판단에 대해서도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며 기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특가법상 알선수재죄의 성립 여부에 관해 대법원은 행위의 성격, 종류, 지급받은 보수의 산정방법이나 수준, 지급 방법 등을 고려해 각 사안별로 판단해왔다”며 “이 사건 판결은 공무원의 직무에 속하는 사항에 관한 ‘자문·고문·컨설팅계약 등이 체결’된 경우 특가법상 알선수재죄 성립을 위한 판단 기준을 최초로 제시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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