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서글·로맨틱’ 김지훈·이진욱·김현주…OTT에선 섹시 빌런·액션 히어로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2022) ‘발레리나’(2023) ‘이재, 곧 죽습니다’(2023)는 공통점이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작품이라는 것과 흥행과 참패의 길은 달랐어도 이 사람은 한결같이 빛났다는 것. 배우 김지훈(43)이다.
김지훈이 오티티를 만나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변신하고 있다. ‘종이의 집’(넷플릭스)에서는 길거리 싸움꾼 출신 강도단 일원 덴버로 긴 머리에 근육을 키운 몸으로 등장하더니, ‘발레리나’(넷플릭스)에서는 여성을 협박하고 착취하는 극악무도한 최 프로로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지난 5일 파트2를 공개한 ‘이재, 곧 죽습니다’(티빙)에서는 이야기를 관통하는 연쇄살인범 재벌 2세 박태경으로 선악의 모습을 오갔다.
김지훈은 2002년 ‘러빙 유’(KBS2)로 데뷔한 이후 주로 주말과 일일 드라마에서 성실하고 서글서글한 인물을 연기했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오래전부터 변화에 목말랐지만 지상파에서는 나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를 깨기가 어려웠다”며 “오티티에서 좀 더 다양한 기회를 얻었다”고 했다.
오티티는 송강, 고민시, 이도현 등 수많은 신인을 발굴함과 동시에 새로운 역할을 갈망하는 20년 남짓 ‘경력자 배우’들의 갈증을 해소해주고 있다. 실험적인 장르가 많은데다가 제작비가 보장된 뒤 촬영을 하기 때문에 투자를 받으려고 톱스타에게 기대지 않아도 되어서다. 오티티 작품을 작업한 적 있는 한 드라마 피디는 “전세계 공개가 목표이기 때문에 우리에겐 익숙한 이미지의 배우더라도 외국에서는 신선하고 다르게 보일 수 있다”고 했다. 김지훈은 ‘종이의 집’ 이후 브라질 등에서 ‘섹시 빌런’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오티티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또 한명의 대표적인 배우가 이진욱(43)이다. 이진욱은 2020년 ‘스위트홈’ 시즌1(넷플릭스)과 2023년 ‘이두나’(넷플릭스)에 출연하며 2006년 ‘연애시대’(SBS) 이후 강조됐던 로맨틱한 면모를 씻어냈다. 지난 12월 공개된 ‘스위트홈’ 시즌2에서는 악역에 과감한 노출 액션도 펼쳤다. 티브이(TV)에서도 ‘나인: 아홉 번의 시간’(2013, tvN) 타임슬립, ‘보이즈’(2018, OCN) 스릴러, ‘너를 사랑한 시간’(2015, SBS) 로맨틱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에 출연했지만 오티티 단 두편에서 보여준 강렬함이 더 컸다. 이진욱은 지난 12월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한 인터뷰에서 “‘스위트홈’은 이전의 이진욱한테서는 상상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며 “배우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했다.
김현주(47)도 1997년 ‘내가 사는 이유’(MBC)로 데뷔하고 24년이 지나서야 2021년 ‘지옥’(넷플릭스)으로 몸을 쓰는 첫 액션을 선보일 수 있었다. 이후 출연한 ‘정이’(2023, 넷플릭스)에서는 수십년째 이어지는 내전에서 수많은 승리를 이끈 전설의 용병으로 여성 캐릭터를 확장했다. 19일 공개된 ‘선산’(넷플릭스)으로 2024년에는 미스터리 스릴러물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선산’에서는 지질하면 욕망을 품고 있는 새로운 김현주를 만날 수 있다.
이들의 변신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배우들한테 ‘재발견’의 희망을 주고 있다. 코믹한 역할을 많이 맡은 한 경력자 배우는 1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미지가 고정되어 변신이 쉽지 않겠다 포기했는데 오티티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는 배우들을 보며 기대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회를 잡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배우는 선택받는 입장이어서 새 얼굴을 애써 끄집어내 줄 구원자가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 김현주한테는 그를 ‘지옥’과 ‘선산’으로 안내해 준 연상호 감독이 있었다. 연 감독은 15일 삼청동 카페 인터뷰에서 “김현주에게서 이전까지 못 본 얼굴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진욱도 ‘스위트홈’ 시즌1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이전 작품에서 가능성을 보고 캐스팅 것은 행운이었다”며 “감독과 함께 이전 이진욱의 모습을 지워가면서 편상욱을 만들었다”고 했다.
기회가 오면 바로 잡을 수 있는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한다. 김지훈은 변신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 헤맨 지 10년 만에 ‘종이의 집’을 만났다. 그는 “2014년 ‘왔다 장보리’(MBC)가 끝난 뒤 다른 모습을 보여줄 작품을 기다리며 보낸 세월도 있었다”고 했다. 운동 등 변신에 꾸준히 대비해왔다. 제안이 오지 않아 하던 역할을 또 할 수밖에 없었지만, 기회를 찾아다닌 노력으로 2019년 ‘바벨’(TV)에서 악역을 맛볼 수 있었고 결국 ‘종이의 집’을 만났다. 그는 “‘종이의 집’ 제안이 들어왔을 때 인생을 걸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며 “이제는 예전이라면 들어오지 않을 작품들도 제안이 많이 온다”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배우들의 의외의 모습이 드라마를 보는 재미를 더한다”며 “더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국 드라마도 발전 할 것”이라고 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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