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폐허가 된 두 공동체의 우정, 《나의 올드 오크》
희망이 사라져가는 시대, 연대와 저항 통한 공동체 회복 염원
(시사저널=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나눌 것이라고는 슬픔과 두려움뿐인 사람들 사이에 우정이 싹틀 수 있을까. 《나의 올드 오크》는 세계적 거장 켄 로치 감독이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에, 스스로 영화로써 성심껏 답한 작품이다. 지난해 제76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이 작품은 감독의 은퇴작이기도 하다. 1960년대부터 창작 활동을 이어오며 노동자들의 현실과 노동시장의 비인간성을 꼬집었던 '블루칼라의 시인'의 마지막 인사는, 모든 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힘으로 향한다. 연대와 저항을 통한 공동체의 회복. 《나의 올드 오크》를 보고 나오는 길에는, 이상적이지만 낡은 구호처럼 들리는 이 가치를 다시 한번 믿고 싶어진다.
희망은 존재하는가
영국 북동부의 한 폐광촌. 쇠락한 마을의 터줏대감 격인 펍 '올드 오크'를 운영하는 TJ는 강아지 마라가 유일한 가족인 남자다. 어느 날 시리아 난민을 가득 실은 버스가 마을로 들어오고, 여기엔 사진작가가 꿈인 소녀 야라(에블라 마리)도 있다. 주민들은 난민을 향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대놓고 표현하는가 하면, 짐짓 아닌 체하면서도 은근히 불안과 혐오를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 할 수 있는 선에서 선의를 베푸는 TJ 같은 주민은 소수에 불과하다.
가장 강경한 집단은 올드 오크의 단골이자 TJ와 오래도록 유대를 쌓았던 친구들이다. 히잡을 쓴 여성들을 비하하며 "펍에 두건 대가리 들이지 말라"고 말하거나 "마을에 받아줘봐야 저들은 모스크(이슬람교 사원)나 지을 것"이라고 빈정대는 것은 예사다. 이들은 사정도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들과 같은 사람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언급한다며 불쾌감을 드러내기 바쁘다. 그사이 TJ와 일부 주민은 묵묵하게 야라와 그의 가족, 난민 공동체를 돕는 활동을 이어간다.
《나의 올드 오크》는 켄 로치 감독의 '영국 북동부 3부작'을 마무리하는 작품이다. 앞서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는 복지의 사각지대와 관료적 절차로 신음하는 노동자를, 《미안해요, 리키》(2019)는 임시직 선호 경제의 비인간적 노동 시스템을 주목했다. 《칼라 송》(1998) 이후 켄 로치 감독과 다수의 작품을 함께 작업한 인권변호사 출신 작가 폴 래버티가 이번에도 각본을 담당했다. 촬영 전에 실제 광산 마을이었던 머튼과 호덴, 이징턴 등을 답사하며 거주민들을 취재한 이들은 방치된 지역사회를 배경으로 각기 다른 트라우마를 안은 공동체의 이야기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극의 배경인 2016년은 영국에 시리아 난민들이 처음 이주한 때다.
마을 사람들과 시리아 난민들의 구체적 상황은 서로 다르지만, 삶의 방식이 통째로 뿌리 뽑힌 이들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한쪽은 과거의 번영이 사라지고 쇠락하면서, 다른 한쪽은 당장 매일의 생존을 위협하는 전쟁 때문에 삶이 폐허로 변모했다. 폭력적인 방식이긴 해도 마을의 강경파 입장이 아예 이해 불가한 것도 아니다. 당장 자신들의 공동체도 살아갈 방법이 묘연하고 빈곤으로 신음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와중에, 난민들의 처지까지 고려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더욱 힘겨운 것은 희망 때문이다. 나아지는 속도보다 나빠지는 속도만 몇 곱절은 더 빠르게 불어날 때, 희망을 발견하기 위한 용기나 연대 그리고 저항 같은 단어들은 외칠수록 옹색해지고 빛이 바랜다. 잔인하게도 희망은 그것이 가장 간절했던 사람부터 순서대로 그 가능성을 재빠르게 빼앗는 것처럼 보인다. 연대와 저항의 가치를 믿거나 실행해 보지 않은 사람보다 이미 다 경험한 후 상처받은 사람들의 냉소와 두려움은 더 크고 두터울 수밖에 없다. 전쟁과 질병과 빈곤, 범죄와 재해 중 그 어느 것도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순간, 공동체는 와해되고 개인은 고독해진다. "잘될 거야"라는 서로의 위로에도 "평생 잘되려고 애썼지만 근처에도 못 가는" 기분만을 느껴야 하는 생애. 희망은 원망스럽고 거추장스럽다.
공동체가 이룰 수 있는 최소한의 연대
그럼에도 《나의 올드 오크》 속 현명한 이들은 고통 끝에 찾아올 희망을 믿는다. 일상과 공동체를 재건하고, 혐오 대신 우정을 발휘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풍족하고 강한 자가 발휘하는 힘으로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TJ와 야라는 약간의 토양을 다져두면 다시 폭격을 맞아 폐허가 되는 과정의 연속에서, 의심하고 흔들리면서도 다시 흙을 그러모으듯 내일을 다지려는 사람들이다. 짧지만 지속적인 절망들을 품은 채로 조금씩 회복하려는 노력만이 희망이라 부를 수 있는 그 무엇일지 모른다.
모든 것은 올드 오크 안쪽, 오래도록 단단히 걸어잠가둔 연회장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시작된다. 과거 이 마을의 광부와 가족들은 이곳에서 함께 모여 밥을 먹고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집회를 준비했다. '굶주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 같은 집단적 힘을 촉구하는 표어와 사진이 붙은 연회장은 영광과 승리와 연대의 기억이 있는 공간이다. 우연히 사춘기 딸들의 문제로 고민하는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은 야라는, 집 안에 고립된 시리아 난민들과 어려운 주민들 모두가 모여 함께 밥을 먹자는 아이디어를 낸다. "말 대신 음식이 필요한 순간이 있어요."
전쟁을 피해 당도한 이들과 새로운 분쟁을 치르기 바쁘던 마을은 이제 올드 오크를 중심으로 조금씩 화합의 장으로 변모한다. 극을 통해 켄 로치 감독이 제안하는 방식은 허기짐을 채우는 것에 있다. 실제로 제대로 음식을 먹지 못해 느끼는 허기도 있지만, 고립되어 고독하게 침잠되어 간다는 심리적 허기도 문제다. 음식을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 이는 공동체가 이룰 수 있는 최소한의 연대다.
이후 모종의 음모로 연회장의 문이 다시 닫히기도 하고, TJ 역시 마음을 크게 다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 어쩌면 이것이 더 현실에 가까운 풍경이다. 다만 《나의 올드 오크》는 그 안에서 당장의 화합까진 어렵더라도 을과 을의 또 다른 갈등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을 정확히 지적한다. "삶이 힘들 때 우린 희생양을 찾아. 절대 위는 안 보고 아래만 보면서 우리보다 약자를 비난해. 언제나 그들을 탓해. 약자의 얼굴에 낙인을 찍는 게 더 쉬우니까." TJ의 대사는 불필요한 갈등과 혐오가 있는 풍경을 가로지른다.
켄 로치 감독은 교훈적이지만 교조적이진 않고, 장황한 대신 간결한 영화를 만들어올 수 있었던 비결로 딱 한 가지를 꼽는다. "언제나 그렇듯이 경청하고 배웠다." 평생 세상이 나아지기를 소망하며 영화를 만들지만 내내 나빠지기만 하는 세상 속에서 지치지 않고 작업을 지속해 왔던 거장의 비결이다. 해야 할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는 것. 단순한 친구의 의미를 넘어 서로에게 힘이 되고 지키는 관계를 뜻하는 광부의 언어 '마라(Marra)'가, 그가 생각하는 영화와 세계의 관계일 것이다. "저항과 연대의 마지막 단계는 '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집단적 연대가 어려움과 투쟁을 모두 끝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기다려왔어요." 켄 로치 감독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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