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 “이스라엘군, 가자지구 묘지 불도저로 밀어…전쟁 범죄”

“일부 묘지에선 시신도 파헤쳐”…이스라엘군 “인질 시신 수색”
유대인·외국인 묘지는 ‘멀쩡’…팔레스타인 주민들 분노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인 묘지 훼손을 보도한 CNN 기사. CNN 홈페이지 캡처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묘지 최소 16곳을 훼손했다고 미국 CNN 방송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군사적 목적과 연관됐다는 명확한 증거 없이 묘지 등 종교 시설을 의도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CNN이 분석한 가자지구 위성 사진과 소셜미디어(SNS) 사진, 가자지구 내부에서 CNN이 이스라엘군과 동행 취재하며 직접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묘지를 불도저로 밀어버린 뒤 전초기지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가자 북부 가자시티에 있는 샤자이자 묘지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10일에 촬영한 이 지역 위성 사진을 비교해보면, 지난해 10월까지 묘비와 나무 등이 줄지어 있던 묘지에는 이제 이스라엘군 차량과 이들을 둘러싼 모래 언덕만이 남아있다.

묘지 가장자리에는 비교적 최근에 불도저가 지나간 자국도 보였다.

가자 남부 칸유니스 동쪽에 있는 바니 수헤일라 묘지에서도 비슷한 훼손 흔적을 볼 수 있었다. CNN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몇 주에 걸쳐 이 묘지에 불도저가 지나간 흔적이 점차 늘어났다고 전했다.

이 밖에 가자 북부 자발리야 인근의 알 팔루자 묘지, 가자시티 동쪽 알 투파 묘지 등에서도 묘비가 깨지거나 탱크나 불도저가 지나간 자국이 확인됐다.

CNN은 취재팀이 지난주 가자 중부 알부레이즈 지역을 직접 방문해서도 불도저가 무덤들 사이로 지나간 흔적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CNN이 확인한 훼손된 묘지 16곳에 대한 질문에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이스라엘군이 종종 하마스가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묘지를 공격하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CNN은 이스라엘군이 일부 묘지들에 탱크를 세워놓거나 전초기지로 쓰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고 전했다.

심지어 최근 칸유니스에서는 이스라엘군이 묘지에서 무덤을 파헤치고 시신을 꺼내는 모습이 촬영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군은 해당 작업이 하마스에 잡혀간 인질들의 흔적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CNN은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주민이 아닌 외국인이나 유대인이 묻힌 묘지는 훼손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CNN에 따르면, 훼손된 알투파 묘지로부터 채 1㎞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세계대전에서 사망한 영국과 호주 군인들이 묻힌 묘지는 100일 넘게 이어진 전쟁에도 전혀 훼손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가자 중부에 있는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묻힌 묘지에서도 이스라엘군은 탱크를 무덤을 피해 세워두는 등 팔레스타인인 묘지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짚었다.

인권 변호사 무나 하다드는 CNN에 특정 무덤만 의도적으로 훼손하는 것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면서 "(가자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법 위반이자 ‘개인의 존엄성에 대한 모욕 행위’라는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오남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