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은 서울시민들에게 주어진 천혜의 피서지였습니다. 반짝이는 모래톱이 이어진 유역을 따라 시민들은 봄과 가을에는 낚시, 겨울엔 썰매, 여름이면 물놀이를 즐기곤 했습니다. 1963년 서울의 확장으로 한강은 서울의 중심을 관통하며 흐르는 강이 되었고, 이곳에도 개발의 바람이 일게 되었습니다.
박정희 정부가 시행한 제1차 한강종합개발사업의 주된 목적은 ‘치수’에 있었습니다. 매해 여름 강우량이 많을 때면 한강과 각 지류의 유역에는 강물의 범람이 빈번했고, 근처 주민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곤 했습니다. 1967년부터 1970년까지 진행된 제1차 한강종합개발사업은 홍수를 막을 제방을 쌓고, 그것을 따라서 제방도로를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제방을 따라 공유수면의 매립공사가 진행되며 넓은 택지가 만들어졌고, 이곳은 국영기업체나 정부에서 일괄 매입했습니다. 정부는 이 신규택지에 아파트 단지를 조성해 일반에 분양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동부이촌동, 압구정동, 여의도, 잠실지구가 이 당시 새로 정비되었습니다.
한강을 ‘물의 공원’으로… 두 번째 한강종합개발
1981년 9월 올림픽 유치 이후, 전두환 정부는 한강종합개발계획을 다시 수립합니다. 제2차 한강종합개발을 설명하기에 앞서 당시 한강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1980년대 도시산업화로 인해 발생한 막대한 양의 도시하수가 한강으로 그대로 배출되었고, 강의 수질 오염은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동안 제방의 건설과 매립 과정에 사용된 골재는 한강에서 무계획적으로 채취되었기에 강바닥은 고르지 못하고 요철이 심했습니다. 강안은 무성한 잡초와 오염된 진흙으로 뒤덮여 도시미관상으로도 좋지 않았습니다.
서울의 규모는 날로 커졌고, 인구는 증가했습니다. 시가지가 확장하는 것에 반해 공원이나 자연의 비중은 줄어들었습니다. 도시민들의 소득증대로 인한 여가활동이 증가하고 휴식을 보내는 문화가 다양해지며 서울 내의 녹지 공간의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이러한 배경 아래 시행된 두 번째 한강개발사업은 이전의 사업과 비교해 개발의 목적과 내용에서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제2차 한강종합개발사업은 ‘물의 공원’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데, 오염된 한강을 다시 맑은 물이 흐르는 강으로 되돌려 시민들의 여가 및 휴식을 보내는 자연공간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강의 수로를 고정시켜 수상교통이 오갈 수 있게 하고 하천의 경관을 살리며 도시의 하수시설을 정비하고자 했습니다. 올림픽 기간 동안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것을 대비해 정부는 한강 개발을 통해 새롭게 정비된 한강, 발전된 서울의 모습을 보여줄 목적이었습니다.
제2차 한강종합개발은 1982년 9월 착공했습니다. 먼저 36km에 달하는 한강의 동쪽부터 서쪽 끝까지 6만 6천㎥에 달하는 저수로를 정비하여 강 전체의 수심을 2.5m로 고르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저수로를 굴착하는 공사가 아니라 지천 바닥을 다지는 지천하상 유지공사, 부유물 제거, 강 속의 각종 송유관과 케이블을 옮기는 작업, 교각의 보강과 병행해야 했습니다.
저수로가 정비되고 강바닥의 높낮음이 사라짐에 따라 한강은 막힘없이 흐르게 되었습니다. 물의 흐름은 좋아졌지만 빨라진 유속으로 강물의 취수가 어려워졌고, 밀물 때 인천 앞바다에서 한강으로 바닷물이 역류하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한강 상류인 잠실과 하류인 신곡에 수중보를 설치해 이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강의 유속과 저수량을 일 년 내내 고르게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안정된 강 위에는 유람선이 다니는 뱃길이 트였고 한강 곳곳에 승객이 타고 내릴 선착장이 들어섰습니다.
한강 수질오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하수 처리시설이 필수적이었습니다. 하수의 한강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대단위 하수처리장이 건설된 것도 이 때입니다. 한강변에 총 54.6km에 달하는 대형 분류하수관로가 설치되었고, 안양·난지·탄천 3개의 하수처리장을 신설해 서울 내 총 4개(기존의 중랑 하수처리장 포함)의 처리장에서 하수를 종말 처리하도록 했습니다.
한편 장마철 외에는 잡초와 웅덩이로 메말라 있던 한강 양안의 자연 퇴적지 약 693만㎡(210만 평)은 한강공원으로 조성되어 시민의 휴식처로 거듭났습니다. 이중 60만평은 운동시설을 갖춘 체육공원이, 나머지 110여만 평은 자연 초지로 산책로와 자연학습장 등이 들어섰습니다. 공원화된 강안 둔치에서 시민들은 수상레저와 스포츠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1982년 착공한 제2차 한강종합개발은 1986년 9월 마무리되었습니다. 4년이 넘는 대공사에는 4,198억 원의 자금과 420만 명의 노동력이 투입되었습니다. 대대적인 개발을 통해 한강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났지만, 눈부신 백사장을 자랑하던 굽이치는 한강의 모습은 흑백사진 속에서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올림픽 거점을 연결하는 올림픽대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대회라는 두 번의 대규모 국제행사를 준비하며 서울의 교통체계는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됩니다. 1970년대 서울의 도로교통망이 양적으로 크게 확장했다면, 올림픽을 앞둔 1980년대는 교통망의 연결성을 강화해 도시 네트워크가 확장된 시기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제2차 한강종합개발에는 강남과 강북을 잇고 올림픽 주요 거점을 연결하기 위해 교량이나 간선도로를 확장하거나 신설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한강 남단의 고속화도로인 올림픽대로의 건설도 이 안에 담겼습니다.
대회가 시작하면 선수단과 임원, 외국인 관광객 등 대규모 인원이 공항에서 경기장까지 이동수요가 빈번할 것이므로, 올림픽대로는 이들의 교통편의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설계되었습니다. 동시에 늘어나는 서울의 교통량을 도로망 구축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올림픽대로 준공 이전에도 한강 남쪽에는 강변로와 강남로라는 이름의 강변도로가 존재했습니다. 영등포구 양화동에서 강동구 암사동을 잇는 이 도로는 차로가 비좁고 신호 체계가 부실한 등 전체적으로 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1982년 시작된 올림픽도로 건설은 기존 4차로였던 강변도로를 왕복 8차로로 확장하고, 양화동에서 행주대교 구간까지 제방을 쌓아 그 위에 4차로를 신설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공사에는 1,4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었고, 연인원 1백만 명, 차량 28만대가 동원되었습니다.
도로 명칭 후보로는 민족번영로·88로·한강대로 등이 물망에 올랐으나, 올림픽을 앞두고 역사적 의의를 고려해 올림픽대로로 선정되었습니다. 착공 3년 8개월 만인 1986년 5월, 총연장 37km의 올림픽대로가 개통되었습니다. 이 대로는 서울의 중심부를 동서 간 관통하는 최초의 자동차 전용도로였습니다. 개통 당시 기준으로 김포공항에서 경기장이 있던 잠실까지의 주행시간이 60분에서 30분으로 절반 가까이 단축되었습니다.
초창기 올림픽대로는 동작대교를 기준으로 동쪽은 왕복 8차로, 서쪽은 왕복 4차로로 건설되었습니다. 공사 과정에서 대로의 서쪽편인 양화동에서 동작대교 구간은 기존의 강변도로인 강남3·4로(현 현충로와 노들로)를 활용하지 않고 그 옆에 왕복 4차선 도로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한강 하류구간은 거주인구가 적어 통행량이 많지 않았고, 강남3·4로가 공항대로와 직결되었기에 길을 이원화하여 교통량을 분산해 운용할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86년 52만 대였던 서울시의 자동차 등록 대수는 3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어 1989년 99만 대에 달하게 됩니다. 올림픽 특수와 경제성장의 결과로 ‘마이카’ 시대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올림픽대로는 심한 정체로 몸살을 앓았는데, 특히 8차선에서 4차선으로 차선이 절반으로 좁아지는 동작대교 인근 하행선은 정체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결국 개통한지 2년도 되지 않는 1988년 전 구간 8차선 확장에 돌입하였고, 5년 후인 1993년 완공합니다. 또 다른 상습정체 구간이었던 반포대교-청담대교 구간은 2010년 왕복 10~12차로로 넓히는 공사를 통해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참고자료>
ㅇ 손정목,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3,5」, 한울출판사
ㅇ「88올림픽과 서울」, 서울역사박물관
ㅇ「88서울올림픽, 서울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서울역사박물관
ㅇ「한강의 어제와 오늘」, 서울역사편찬원
정부기록물과 박물관 소장 자료, 신문사 데이터베이스에 잠들어 있는 빛바랜 사진들을 열어 봅니다. ‘사-연’은 그중에서도 ‘길’, ‘거리’가 담긴 사진을 중심으로 그곳의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연재입니다. 거리의 풍경, 늘어선 건물, 지나는 사람들의 옷차림 등을 같은 장소 현재의 사진과 이어 붙여 비교해볼 생각입니다. 사라진 것들, 새롭게 변한 것들과 오래도록 달라지지 않은 것들이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과거의 기록에 지금의 기록을 덧붙여 독자님들과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 나가고 싶습니다. 해당 장소에 얽힌 ‘사연’들을 댓글로 자유롭게 작성해 주세요. 아래 기자페이지의 ‘+구독’을 누르시면 연재를 놓치지 않고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