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것 없는 한반도…필요한 건 ‘평화적 두 국가 관계’

한겨레 2024. 1. 2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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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문장렬의 안보 다초점
김정은 ‘대남 신노선’ 이후
문 정부 후반부터 협력 중단 상태
연합훈련 강화 ‘전쟁 위기’ 여전
북 강경대응 ‘조건적 전환’ 성격
향후 군사주권 확보·교류 과감히
지난 15일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 북한은 이날 남북 회담과 교류를 담당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지난 연말에 열린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9차 전원회의의 결과가 남한 내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읽은 결정서 내용 중 가장 큰 관심을 끄는 두가지를 들자면 ‘남북관계 재정립’과 ‘남한 전 영토 평정’일 것이다. 그는 남북관계가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평가했다. 또한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하여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계속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교전 중인 두 국가

현재의 남북 대결 상황과 향후 더욱 악화할 가능성에 비추어 볼 때 실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하고 반문할 수도 있다. 평화협정은 차치하고 종전선언조차 못 하고 있는 남북은 70년 이상 사실상 교전 중인 두 국가였다. 북한이 전면전 도발을 감행할 경우 북한 지역에 대한 한미연합작전계획상의 반격 및 북한 점령 계획이나 한국 정부의 전시 ‘수복지역’에 대한 ‘자유화’(통치) 계획에 북한도 비슷한 방식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은 일면 당연하다.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남한의 ‘일부’ 국민들에게 아마 더 큰 충격을 준 것은 북한의 통일정책이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선언과 그 후속 조처들일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남한이 더 이상 평화적 통일의 상대가 될 수 없음을 정권붕괴론과 흡수통일론, 주적론, 헌법의 영토 조항, 대미 의존성, 공격적인 군사훈련의 실시 등을 근거로 천명했다. 남한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에 아무런 근본적인 차이가 없었다는 것도 지적했다. 구체적인 조치로 대남사업 관련 모든 조직과 기구의 폐쇄를 지시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5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대남정책을 헌법에 명기하도록 했다. 남한을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고, 김일성 시대에 마련된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 3원칙 표현을 삭제하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 대남기구들을 폐지하며, 심지어 “삼천리금수강산” “8천만 겨레” 등의 표현까지도 금지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처 역시 남북관계의 현실에서 실질적인 변화(악화)로 이어질 것 같지 않다. 이미 문재인 정부 후반기부터 남북 간의 교류와 협력은 중단되었고 어떠한 통일 관련 조직이나 기구도 남북 공히 폐업 또는 ‘개점휴업’ 상태에 있으며 상당 기간 업무를 재개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망가질 대로 망가진 남북관계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정도가 된 것이다.

전쟁 위기 역시 지속되고 있다. 새해 첫 3주간의 군사적 상황은 작년에 비해서도 더 악화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2일부터 이틀간 한국 육군은 다양한 전투부대와 화포를 동원한 사격 및 기동 훈련을 실시했고 남해상에서는 해상 사격 훈련이 미 공군의 정찰비행과 함께 진행되었다. 정례훈련이지만 규모가 커졌고 한·미 연합으로 진행되었다. 동계훈련 중인 북한은 대응을 명분으로 지난 5일 서해 북방한계선 인근에 400여발의 포탄을 발사하여 서해5도 주민이 대피했고 한국군의 대응과 북한군의 재대응 포 사격이 이어졌다.

지난 14일에 북한은 ‘신형 다단계 고출력 고체연료 추진 중장거리급 극초음속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이튿날 최선희 외무상은 러시아를 방문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회담한 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도 면담했다. 크렘린궁은 “북한과 ‘민감 분야’를 포함한 모든 관계를 발전”시키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민감하다면 분명 군사안보 협력일 것이다.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한·미·일 3국은 제주도 남방 공해상에서 연합해상훈련을 실시했다. 한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가 각 2척의 이지스급 구축함을, 미 해군이 핵추진항공모함을 포함한 5척을 동원한 이례적으로 큰 규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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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강경파가 ‘냉정 대응’ 주문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큰가?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지난 16일 한국방송(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미국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에 대해 “지나친 과장”이라고 평했다. 최근 북한의 적대적 대남 발언에 대해서도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며 북한의 위협·공갈 등 심리전에 말려들지 말고 냉정하게 상황을 보아야 한다고 했다. 든든한 한-미 동맹도 있으니 국민은 안심해도 된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역대급 강경파가 냉정을 운위하는 것이 다소 놀랍기도 하지만 왠지 수학 문제를 틀린 방법으로 풀어 답은 맞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문제는 그가 평소 주창한 대로 북한의 ‘도발’에 대하여 ‘즉시, 강력하게, 끝까지’ 대응한다면 누구도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짖는 개도 공격을 당하면 물 수 있고 이 민망한 비유가 남북에 공히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정으로 대남정책 노선에 큰 변화가 생긴 사실 자체를 부인하기 어렵다. 결정서의 다른 부분들을 보면, 북한이 작년 한해 동안 이루어낸 경제 분야 성과에 대한 자부심과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난다. 이를 바탕으로 국방·경제·외교 등의 분야에서 어엿한 ‘정상국가’로 발전해나가겠다는 결의가 보인다. 남북관계와 대남정책도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두 국가 관계로 ‘깔끔히’ 정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거나 과도하게 대응해서도 안 되겠지만 절망할 필요도 없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거니와 영원한 것은 더더욱 없다. 냉정히 보면 북한의 행동은 대응적 성격이 강하고 정책은 ‘조건에 기초한 전환’이 많다. 핵무장은 그 이전 40년간 남한에 전술핵이 배치된 사실과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함께 놓고 보아야 한다. 미사일 시험과 훈련은 한미연합작전계획과 끝없이 확대·강화되는 연합훈련에 대한 대응으로서 동의는 못 하지만 이해는 할 수 있다. 최근의 대남정책 변화와 막말들도 현재의 남한 대북정책이 변하지 않을, 또는 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따라서 북한의 대남정책 변화를 진지하게 고려하면서 더 확고한 ‘평화적 두 국가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남한 정부와 국민뿐 아니라 전체 민족을 위한 당연한 과업이다. 혹시 소위 ‘진보정부’가 집권하게 되면 북한의 부정적 평가를 뒤집을 수 있도록 본질적인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무망한 주문일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한-미 동맹 아래에서의 군사주권 문제나 제재하에서의 남북 교류협력 문제 등에서 과도하게 ‘표’에 얽매이고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았는지 성찰하고 과감하게 실천해야 한다. 남북관계는 북한이 어떻게 규정하든 남한은 ‘통일의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관계’로 ‘드팀(틈이 생겨 어긋나는 것)없이’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문장렬│전 국방대 교수
노무현 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기획실 국방담당,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군사과학 기술의 이해’ 등의 저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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