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일야실종대곡: 그 많던 ‘대곡’은 어디로 갔나?
[이재익의 노래로 보는 세상] 레너드 스키너드 ‘프리 버드’
뉴진스의 ‘슈퍼샤이’,아이브의 ‘애프터 라이크’, 정국의 ‘스리디’(3D). 공통점이 뭘까? 작년에사랑받았던 노래들? 맞다. 그리고 모두 2분30초 안팎의 짧은 곡이다. 3분이 되지 않는 노래들이 가요계의 주류를 차지했다. 케이(K)팝 장르에서 이런 경향이 강한데 이젠 거의 전 장르에서 노래 길이가 확연히 짧아졌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대중가요의 흥행 공식은 3분30초에서 4분 사이의 곡 길이가 불문율처럼 여겨졌다. 오죽하면 포미닛이라는 걸그룹 이름의 의미가 4분 안에 팬들을 사로잡겠다는 뜻이었을까. 그런데 이제 4분은커녕 3분도 안 되는 노래들이 가요계를 점령하고 있다.
이유도 분명하다. 쇼트폼(짧은 영상) 전성시대의 흐름에 가요도 영향을 받는 거다. 짧은 영상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음악만 긴 노래를 선호할 리 없다. 이러다가 2분도 안 되는 노래들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극단적으로 노래가 짧아지다 보니 형식도 달라졌다. 1절과 2절을 구분하지 않거나 브리지(마지막 후렴 전에 나오는 변주)를 생략한 노래도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근사한 전주나 화려한 솔로 파트는 언감생심이다. 이런 경향은 팝 시장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힙합도 댄스곡도 발라드도 다 짧아졌다. 특히 7~8분을 넘나드는 노래들이 즐비하던 대곡들의 집성촌이었던 하드록 장르에서도 고작 5분 이상의 노래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꽤 오랜 세월 국민 팝송으로 사랑받았던 ‘보헤미안 랩소디’가 6분에 이르고 ‘호텔 캘리포니아’는 6분30초, 레드 제플린의 ‘스테어웨이 투 헤븐’과 메탈리카의 ‘마스터 오브 퍼페츠’는 8분이 넘는다. 1990년대 브릿팝 밴드들도 작심하고 앨범에 한두곡은 대곡을 실었다. 21세기 들어서도 한동안 이런 전통이 이어졌으나 몇년 사이 뚝 끊겨버렸다.
좋다, 나쁘다의 문제는 아니다. 나도 괜히 질질 끄는 노래는 딱 질색이다. 옛날이 좋았다는 식의 한탄도 부당하다. 요즘 노래들도 얼마나 좋은데. 그러나 일정 길이 이상의 노래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이 사라진 점은 너무 아쉽다. 종교 음악처럼 숭고한 감정을 고조시켰던 조성모의 ‘가시나무’나 서사시와도 같은 넥스트의 노래들은 2분30초로 압축시킬 수 없다. 팝 음악에서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대곡의 향연은 일렉트로니카 듀오 다프트 펑크의 걸작 ‘랜덤 액세스 메모리스’(2013)다. 6분 넘는 노래를 4개나 실은 앨범 덕분에 전자음악과 밴드 연주의 핵융합을 제대로 경험했는데, 그런 감탄을 내뱉은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대곡 전성시대에 탄생했던 수많은 노래 중 한곡을 소개해드릴까 한다. 핑크 플로이드, 딥 퍼플, 드림시어터, 들국화, 조용필 등 위대한 이름들을 내려놓고 고른 곡은 미국 남부 하드록의 상징 레너드 스키너드의 ‘프리 버드’다. 언젠가 꼭 독자님들과 함께 듣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는데 이제 기회가 왔다. 9분짜리 원곡도 좋지만 이 영상이 노래의 본질을 더 잘 보여준다. ‘레너드 스키너스 오클랜드’로 검색하면 바로 찾을 수 있다.
이 영상에 등장하는 당시 팬들은 50년 가까운 시차를 넘어 방탄소년단 공연을 즐기는 아미들과 꼭 닮았다. 두가지 사실이 놀라운데, 관객들 대부분이 헐벗은 차림이라는 사실과 이들이 가장 열광하는 부분이 노래가 아닌 기타 연주라는 점이다.
‘내가 내일 떠나더라도 기억해줄 거야?/ 난 봐야 할 곳이 너무 많아서 계속 떠돌아야 해/ 설령 내가 여기 머무른다 해도 지금 같진 않을 거야/ 나는 새처럼 자유로운 존재고/ 넌 이 새를 길들일 수 없으니까.’
읊조림으로 시작한 노래는 중반에 이르러 갑자기 기타 솔로를 폭발시킨다. 웬만한 노래 한곡보다 더 길게 이어지는 기타 연주는 새의 비행을 닮았다. 솟구치다 떨어지고 다시 솟구쳐 바람을 가르고 바다를 넘는다. 제목과 노랫말과 연주가 어우러져 한마리 새로 빚어지는 것이다.
이 노래나 내 글에 영감을 얻은 어떤 가수가 몇달 뒤 10분짜리 대곡을 내놓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고도를 기다리듯 기다린다. 2분30초 노래에 길들고 있는 귀를 깜짝 놀라게 해줄 대곡을.
마지막으로 이 영상에 달린 6만개 가까운 댓글 중 가장 많은 공감을 받고 제일 위에 고정된 댓글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저는 아흔다섯살이고 이제 곧 날아갈 참입니다. 그래도 이 공연은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지요. 추억에 젖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에스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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