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제주문화] (76)바다거북과 인간 함께 사는 공존의 길은?
"문제 근본원인 처방해야…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안 돼"
[※ 편집자 주 = 제주에는 섬이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생성된 독특한 문화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세대가 바뀌고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지만, 문화와 함께 제주의 정체성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고 불안합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후진적이고 변방의 문화에 불과하다며 천대받았던 제주문화.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속에서 피폐해진 정신을 치유하고 환경과 더불어 공존하는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제주문화가 재조명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시'라는 우리말은 '하던 것을 되풀이해서'란 뜻 외에 '방법이나 방향을 고쳐서 새로이' 또는 '하다가 그친 것을 계속해서'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제주문화를 돌아보고 새롭게 계승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연합뉴스는 이번 기획 연재를 통해 제주문화가 우리 삶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계승해 나갈 방법을 고민합니다.]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주의 신화, 전설 속에서 신령스러운 동물인 '영물'(靈物)로 통하는 거북.
제주 사람들은 거북을 '용왕의 막내딸'이라 일컬으며 해녀 물질작업과 조업 안전, 마을의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하지만 오늘날 바다거북은 각종 개발사업으로 인한 환경파괴와 기후변화 탓에 멸종위기에 놓였다.
사람과 바다거북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제주의 역사·문화 속에서 바다거북의 문화적 의미를 짚어본 지난 연재에 이어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제주자연의벗과 함께 자연환경적 의미와 가치, 공존 방법에 대해 살펴본다.
위치추적기 달고 3천847㎞ 헤엄쳐 베트남까지
지난 2008년 10월 21일 제주 서귀포 중문해수욕장에 푸른바다거북이 방류됐다.
석 달 전 제주시 한경면 신창리 앞 정치망 그물에 걸렸다가 구조된 것으로, 당시 나이가 7∼10살로 추정된 암컷 거북이었다.
63㎝ 길이의 등딱지 앞부분에는 거북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위성추적장치가 부착됐다.
우리나라에서 바다거북에 위성추적장치를 부착해 이동 경로를 관찰한 것은 처음이었다.
손바닥만 한 위치추적기를 단 거북은 엉금엉금 모래사장을 기어가더니 유유히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이후에도 제주와 부산 등지에서 그물에 걸린 바다거북의 등에 위치추적장치를 부착해 바다로 돌려보냈다.
이들 바다거북은 다시 자연에서 잘살고 있을까.
2009년 10월 부산에서 방류된 푸른바다거북 '은북이'의 경우 제주와 일본을 거쳐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온 것이 확인됐다.
인공위성 추적장치 확인 결과 은북이는 방류되자 마자 남서쪽으로 이동해 5일만에 자신이 잡혔던 거제도 바다로 이동, 잠시 머문 뒤 다시 헤엄쳐 제주도 우도 부근 해역에 도착한 뒤 이듬해 1월 말까지 머물렀다.
이후 동쪽으로 이동한 은북이는 일본 후쿠오카 부근 해역에서 머무르다 같은 해 7월 초 우리나라 남해 고흥반도로 돌아왔다.
지난 2021년 8월 제주에서 방류된 붉은바다거북(일명 붉은이)과 초록바다거북(초록이)은 한 달 뒤 각각 남해와 제주 연안에 머물고 있는 게 확인되기도 했다.
따뜻한 아열대 해역까지 먼 거리를 헤엄쳐 이동한 녀석도 있었다.
지난 2021년 8월 제주 중문해수욕장에서 방류된 4년생 푸른바다거북 2마리가 각각 대만 남부해역, 중국 푸젠성 푸저우시 남부까지 이동하기도 했다.
이보다 앞서 2020년 9월 방류한 3년생 푸른바다거북도 3천847㎞를 헤엄쳐 베트남 동쪽 해안까지 이동한 사실이 언론에 공개됐다.
하지만 모든 바다거북이 이들처럼 구조와 방류를 거쳐 운 좋게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연안 개발과 환경오염으로 바다거북 산란지인 모래 해변이 줄어들고 있는 데다 폐비닐, 플라스틱 등 바다에 떠다니는 해양쓰레기를 먹이로 잘못 알고 먹은 바다거북이 폐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매년 30여마리의 바다거북이 제주 해안에서 죽거나 다친 채 발견된다.
장수의 상징 거북이 살아가기에 바다는 그 이전보다 훨씬 더 험난해졌다.
현재 지구상에서 발견된 바다거북은 총 7종이다.
이 중 국내 연안에 서식하는 바다거북은 붉은바다거북, 푸른바다거북, 매부리바다거북, 장수거북, 올리브바다거북 등 5종이다.
해양수산부는 국제 멸종위기종인 바다거북 보전을 위해 우리나라에 출현하는 5종을 해양 보호 생물로 지정해 포획·유통 등을 금지하고 있다.
"새끼 거북 방류한다고 돌아올까?…근본원인 해결해야"
지난 2017년 9월에는 매우 의미 있는 바다거북 방류행사가 제주에서 열렸다.
그물에 걸려 구조된 바다거북만이 아닌 인공 부화한 바다거북 새끼들을 제주 서귀포 중문해수욕장 앞바다에 풀어놓은 것이다.
한화 아쿠아플라넷 여수는 2017년 2월 국내 최초로 멸종위기종 푸른바다거북의 실내 부화에 성공, 104마리를 확보했다.
이 중 등껍질 길이가 13㎝ 이상으로 성장한 새끼 거북 80마리, 그리고 구조 후 치료된 푸른바다거북·붉은바다거북·매부리바다거북 등 3마리 등 총 83마리가 방류 대상이 됐다.
당시 인공 부화한 새끼 거북들은 신기하게도 본능적으로 바다로 향했다.
중문해수욕장은 과거 바다거북의 산란지였을 뿐만 아니라 겨울철에도 평균 수온이 14도 이상을 유지해 새끼 거북 방류에 가장 적합했다.
이후 해양수산부는 계속해서 중문 앞바다에서 인공 부화한 바다거북 새끼를 방류하고 있다.
알을 낳을 때가 되면 자기가 태어난 모래 해안으로 돌아오는 바다거북의 귀소본능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만약 새끼 바다거북이 성체가 돼 다시 돌아와 알을 낳는다면 산란지로서 중문해수욕장 해안사구의 중요성과 복원에 더 많은 관심이 모아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이들이 다시 제주로 돌아올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관련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환경단체인 제주자연의벗에 따르면 현재 중문해수욕장은 바다거북이 편하게 알을 낳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개발사업 등으로 해수욕장 일대 산란 환경이 변했기 때문이다.
바다거북은 6월 중순부터 알을 낳는데 제주해수욕장 개장시기가 예전보다 상당부분 앞당겨지면서 산란 시기와 겹친다.
또 인공조명 또는 인기척에 매우 민감한 바다거북의 특성상 해수욕장 산책로와 건물의 조명, 비개장 시기에도 북적이는 인파 등은 치명적인 문제점으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지난 2007년 바다거북의 산란 기록을 끝으로 현재까지 중문해수욕장에서 산란 흔적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해안도로와 건축물 조성 등으로 인한 제주도 해안사구의 훼손율은 80% 이상에 달한다고 한다.
바다거북이 알을 낳으려 비단 중문 해수욕장뿐만아니라 제주 여러 해안을 찾아오더라도 산란지가 파괴되거나 사람들이 자주 다녀 알을 낳을 수 없게 됐다는 뜻이다.
제주자연의벗은 바다거북의 산란지와 서식지를 보전하고 각종 위험으로부터 바다거북을 보호해야 한다며 정부와 지자체에 요구하고 있다.
바다거북 좌초에 대한 현황·조사 연구, 바다거북 혼획을 막기 위해 그물에 초록 LED 등을 다는 방안, 바다거북 산란시기 야간 중문해수욕장 산책로 조명 끄기 또는 출입 통제 등이다.
양수남 제주자연의벗 사무처장은 "바다거북에 주목하는 이유는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이라는 점도 있지만 바다거북이 차지하는 생태적 지위와 함께 환경오염을 평가하는 환경지표종이기 때문"이라며 "인류로부터 야기된 환경문제가 바다거북에게 고스란히 전이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 사무처장은 "문제의 근본원인을 처방하지 않고 해결을 추진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 바다거북과 인간이 함께 사는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바다거북을 위한 조금의 양보를 통해 중문해수욕장이 산란지로서 기능을 되찾는다면 더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될 뿐만 아니라 바다거북과 함께 사는 길을 통해 지속 가능한 관광의 모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자연의벗은 현재 중문해수욕장의 바다거북 산란지 복원을 위해 지역 마을주민과 제주도와 함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찾고 있다.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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