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명 목숨 잃은 석포제련소는 왜 사라지지 못하는가

봉화=이현준 기자 2024. 1. 2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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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죽음, 누군가에겐 삶

● 환경·노동단체 “죽음의 땅, 폐쇄해야”
● 아연 내수 36% 담당, 사라지면 물가상승 불가피
● 인구 1877명 동네, 석포제련소 직원만 2316명
● 3代가 초교 동문, 모르는 사람에게도 인사하는 아이들
● "여기서 결혼하고, 애 낳고, 대학 보냈는데…”
● 옆 마을은 ‘유령 아파트’로 소멸

1월 8일 경북 봉화군 석포면의 영풍 석포제련소가 수증기를 내뿜고 있다. [지호영 기자]
20개에 달하는 굴뚝에서 뭉게뭉게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수증기는 영하 15도 살 에는 날씨를 만나 금세 구름과 같이 하늘을 덮는다. '우르릉'하는 기계 작동음, 종이 울리는 듯한 철 때리는 소리, 화물을 실은 채 1분에 하나 꼴로 좁은 2차선 도로를 빠져나오는 15t 트럭, 안전모·작업복을 착용한 채 발길을 재촉하는 노동자의 모습이 더해져 공장이 한창 가동되고 있음을 짐작게 한다.

1월 8일 오전 9시 30분께 경북 봉화군 석포면 '영풍 석포제련소' 풍경이다. 제련소는 바리케이드와 울타리를 테두리로 두른 채 낙동강 물로 휘감긴 해발 500m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마치 거대한 성곽처럼 보인다.

이곳에서 노동자가 죽었다. 지난해 말 벌어진 일이다. 12월 6일 영풍 직원 두 명과 하청업체 직원 두 명이 공정 물질을 저장하는 탱크 모터 교체 작업을 하다 변을 당했다. 이들은 작업 후 호흡곤란과 복통 증세를 호소하며 병원에 입원했다. 이 가운데 협력업체 노동자 60대 A씨가 9일 숨을 거뒀다. 원인은 삼수소화 비소(아르신) 중독이다. 아르신은 수소·비소가 결합돼 생기는 물질로 폐암을 유발한다. 사망자의 몸에선 치사량 0.3ppm의 7배 수준인 2ppm의 비소가 검출됐다.

인명 사고가 처음이 아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1997년부터 8건의 사고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노동자 11명이 사망했다. 반복된 사망사고에 지난해 12월 12일 안동환경운동연합, 환경보건시민센터 등 환경·노동단체는 서울 광화문에서 영풍과 석포제련소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입을 모아 석포제련소 폐쇄를 촉구했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진현철(71) 씨는 "먹고살려고 일하다가 목숨을 잃을 뻔했다"며 "사람이 죽는데도 책임이 없다고 부인만 하는 회사는 하루속히 문을 닫아야 한다"고 성토했다. 그는 석포제련소에서 6년 9개월간 일하다 2017년 급성 백혈골수암 진단을 받았고, 지난해 11월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산재를 인정받았다.

이들은 석포제련소를 폐쇄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로 환경오염을 들었다. 김수동 안동환경연합 대표는 "공장 오염물질이 대기와 하천으로 흘러들고 있다. 산의 수목이 고사하고 낙동강을 따라 오염물질이 쌓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10년간 석포제련소는 주변 나무가 마르고, 공기가 오염되는 등 지역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 기간에 70여 차례 환경오염 법령을 위반했다. 2018년엔 폐수 70t을 낙동강에 무단 방류해 10일 조업정지를 당했다. 이강인 영풍 대표 등 임직원 8명은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총 1064회에 걸쳐 수문, 펌프 등을 통해 카드뮴을 낙동강에 유출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정감사에 10년 동안 8번 소환되는 단골손님이 됐다.

2022년 국정감사에서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은 "그 정도면 사업장을 폐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폐쇄를 촉구하는 단체들은 석포제련소를 "사람을 죽이고, 환경을 죽이는 곳"이라며 '죽음의 공장'이라고 말한다. 지역 주민의 처지는 다르다. 이들은 "없애라는 말은 너무나 무책임하다"고 말한다. 이곳엔 부모에서 자식, 또 그 자식의 자식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그들의 삶이 얽혀 있다. 추억이 서린 터전이자 일용할 양식을 주며 미래에 대한 계산을 가능케 하는 버팀목이다.

단순히 지역만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도 없다. 석포제련소가 대한민국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 때문이다. 석포제련소는 연간 약 36만t의 아연괴를 생산한다. 세계 3~4위를 오가는 규모다. 2022년 기준 국내 아연 수요(41.4만t)의 36% 수준인 15.1만t을 공급했다. 산업은 수많은 장기가 유기적으로 움직여 작동하는 사람의 몸과 같다. 석포제련소가 사라지면 산업이라는 신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는 셈이다. 그리고 이는 곧 물가상승으로 이어진다.

부조리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변화로 인한 부담을 나눠 질 수 있는지는 다르다. 전자는 쉽지만 후자는 어렵다. 삶으로 얽힌 사람들은 "석포제련소가 사라지면서 호주머니가 가벼워진대도 선뜻 폐쇄를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묻는다. 또 "이곳이 사라지면 지역이 사라진다"고 성토한다. 어떠한 선택이 다른 선택을 부정하는 '제로섬' 상황. 석포제련소는 누군가에겐 죽음, 누군가에겐 삶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걸까.

"중국 아들만 좋지 않을까예"

경북 봉화군 석포면 석포역 물류창고에서 노동자가 아연괴를 점검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석포제련소를 둘러싼 낙동강물을 따라가다 보면 귤현교로 이어진다. 이를 건너 야트막한 오르막길을 지나면 곧 석포역이 나온다. 석포제련소에서 생산된 아연괴는 석포역 승강장과 인접한 물류창고로 운반된다. 저장 가능 물량은 7000t이다. 오전 10시께 찾은 이곳엔 아연괴 덩이들이 벽돌집과 같은 모양새로 차곡차곡 쌓여 있고, 지게차가 분주히 드나들며 이를 운반했다.

아연괴 모양은 제각각 다르다. 하나에 몇㎏ 정도로 작은 것도 있고, 1t에 달할 만큼 큰 것도 있다. 창고 관계자에 따르면 1t당 가격은 300만~400만 원을 오가며 방문한 날 시세는 340만 원이다. 같은 무게여도 모양은 천차만별이다. 또 모양이 같아도 순도가 달라 빛깔에 차이가 난다. 각기 다른 고객사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다. 관계자는 '붕어빵' 원리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한 선배에게 들은 비유가 잊히지 않는단다. 어떤 틀에 넣느냐에 따라 다른 모양이 나온다는 의미다.

아연괴는 화물트럭이나 철로를 통해 운송된다. 석포역에 서는 여객열차는 하루에 8량에 그친다. 그래서 사실상 화물 운반을 위한 역처럼 쓰인다. 관계자는 "원래는 하루에 1000t가량이 밖으로 운송되는데, 지금은 700㎏ 수준밖에 안 된다"고 했다.

이유는 지난해 12월 발생한 사망사고다. 사망사고 이후 사고 발생 부문의 공정이 중지됐다. 1월 4일엔 경찰 및 고용노동부 관계자 57명에게 압수수색도 받았다. 9일엔 배상윤 석포제련소장과 해당 하청업체 대표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이러한 사정 탓인지 "생산량의 30%가량이 줄어들었다. 언제 정상화될지 기약이 없다"고 말하는 관계자의 표정이 퍽 어두웠다.

아연 시장은 고객사의 수요량이 고정돼 있고, 공급사가 이에 해당하는 물량을 제작해 납품하는 구조다. 수요량만큼 만들기에 생산하면 모두 팔린다. 즉 생산량이 감소하면 고스란히 매출 감소로 이어지는 셈이다. 고객사로선 공급사의 생산량이 감소하면 다른 공급사로부터 물량을 조달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구멍을 메우는 건 대개 중국 회사다. 국내 기업으론 고려아연이 있긴 하지만 그 역시 '케파'를 늘릴 수 없어 역부족이다.

결국 한국 고객사는 중국에서 아연을 수입해야 한다. 아연 가격은 국제시장인 LME(런던금속거래소) 가격 및 환율과 연동돼 산정된다. 아연괴 가격이 고정돼 있는 상황에 수입을 하면 운송료가 더 든다. 돈만 더 들면 다행이지만 기존 공급사로부터 납품받던 아연괴와 성분 및 형상이 달라 차질이 생긴다.

아연은 철과 합금돼 철의 부식을 막는 역할을 한다. 자동차, 조선 등 철강 제품을 많이 쓰는 한국 주요 제조업 전반에 널리 쓰인다. 산업에 빚어진 차질은 물가상승을 유발한다. 2021년 10일 조업정지 때 생긴 이러한 문제로 11월 17일 1t당 3250달러이던 아연 가격이 2022년 4월 19일 4530달러까지 꾸준히 상승했고, 이는 국내 철강 제품 가격 상승으로도 이어진 바 있다. 관계자는 말했다.

"여기가 사라지면 우리나라에선 공백을 채울 만한 회사가 없습니더. 다 중국 기업이 채울 텐데, 그 아들만 좋은 거 아닐까예."

제련소 사라지면 지역도 사라져

경복 봉화군 석포면 석포역 전경. [지호영 기자]
석포역을 등지고 지나온 길을 따라 다시 언덕을 오르면 왼편에 식당, 파출소, 편의점과 함께 마을로 향하는 길이 보인다. 길을 본 채 서면 뒤편엔 멀찍이 석포제련소가 보이고, 오른편 주차된 차량 20여 대 사이 '백두대간의 中心 희망 석포'라는 글귀가 적힌 4m 높이 비석이 여행자의 발 디딘 자리가 석포면임을 알린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쉬지 않고 달려 3시간 30분이 걸리고, 버스나 기차 등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직행 노선이 없어 태백을 경유해야 해 5시간은 걸리는 두메산골이다.
경북 봉화군 석포면 마을 초입에 놓인 비석. [이현준 기자]
석포면의 총면적은 150.2㎢지만 사실상 주민 대부분은 석포로, 석포로1길·4길을 따라 형성된 마을에서 생활한다. 마을은 서쪽 파출소를 초입으로 끝 지점에 놓인 석포중을 찍고, 마을 동쪽 사원 아파트 옆길로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오는 데 40분이 채 안 걸릴 만큼 작다. 가구수는 1058가구, 인구는 1877명, 근현대사 시대극 드라마에서 봄직한 옛 모습을 간직한 시골 마을이다.

김성필 석포면 면장에 따르면 고랭지 농업, 과수원 등을 운영하는 200가구가량을 제외하면 모두 석포제련소 관련 주민이다. 영풍 및 협력업체까지 석포제련소에서 일하는 근무자는 1300여 명, 이들의 가족까지 합하면 2316명이다. 이들 가운데 1500명, 65%가량이 석포면에 살고 있는 셈이다. 김 면장은 "석포면은 농경지가 거의 없는 척박한 땅이다. 논 한 마지기 없이 모두 밭이다. 주민 80%는 석포제련소에서 일하며 생업을 영위한다고 보면 된다"며 "석포제련소가 사라지거나 옮겨간다면 사람도, 학교도 존재할 이유가 없다. 뿔뿔이 흩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비석에서 출발해 노래연습장을 지나 편의점을 끼고 왼쪽으로 돌면 석포로가 나온다. 이 길을 따라 쭉 앞으로 나아가니 식당, 카센터, 미용실, 심지어 단란주점까지 보였다. 삼거리로 접어들면 오른편에 목욕탕과 사원아파트가 나타난다. 목욕탕은 석포제련소 공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해 운영된다. 마을 주민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사원아파트는 1단지와 2단지로 나뉜다. 목욕탕 옆에 있는 아파트가 1단지고, 여기서 80m 떨어진 성당 오른쪽 길로 100m쯤 더 나아가면 보이는 2단지는 신축이다. 총 16개동 575가구다.

지난해 5월 기준 영풍그룹은 계열사 28개를 거느린 재계 23위의 대기업이다. 이곳에 거주하는 석포제련소 임직원들은 지역에서 '큰 회사' 다니는 '큰 손'으로 통한다. 석포제련소에서 근무하는 임직원에게 지급되는 급료는 연간 1000억 원에 달한다. 이들은 석포면을 넘어 인근의 강원 태백시 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다수가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태백시 화전동 '이마트 태백점'으로 장을 보러 가기 때문이다.

노지에 선을 그어 만든 사원아파트 주차장엔 경차·소형차보다 소나타, 그랜저 등 중형급 이상인 차가 더 많이 보인다. 서너 대 정도로 몇 안 되긴 하지만 제네시스나 독일 수입차 등 고급 모델도 간혹 눈에 띈다. 두 대 건너 한 대꼴로 보이는 소렌토, 산타페, 카니발 등 중형·대형 SUV 차량은 아이가 있는 집이 제법 있음을 알린다. '먹고살 만한' 형편임을 짐작게 하는 풍경이다.

사원아파트 단지를 뒤로한 채 반대편인 성당 왼쪽 길로 몸을 틀었다. 성당을 지나치니 주변에 아무 건물도 없는 기다란 오르막길이 나왔다. 600m쯤 앞 학교가 보인다. 이 마을에 하나 있는 중학교, 석포중이다. 멀찍이 보이는 학교로부터 '츄리닝 바지'를 입고 회색 패딩으로 몸을 두른, 키 170㎝쯤 남자가 다가오는 이방인이 민망한 듯 패딩에 달린 모자를 푹 눌러쓰고 땅으로 시선을 내린 채 뛰어 내려온다. 언뜻 보이는 얼굴엔 덜 자란 수염이 듬성듬성 나 있고, 주름 하나 없이 앳되다. 살을 에는 찬바람이 괴로운 듯 질끈 이를 악 문다. 기껏해야 15세쯤 돼 보이는 나이. 학교를 반환점 삼아 조깅하는 석포중 학생인 듯하다.

지역 소멸 위기에서 빗겨난 아이들

경북 봉화군 석포면 석포초등학교 운동장에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다. [지호영 기자]
교문을 들어서니 모래가 깔린 운동장과 교직원들이 사는 작달막한 관사가 보였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들어간 본관은 총 세 층으로 나뉘어 있었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각 한 반씩, 전교생 44명이 모여 꿈을 키우는 곳이다. 3층엔 미술실, 음악실, 체육실이 있다. 체육실엔 트레드밀, 벤치프레스, 레그프레스, 다양한 종류의 아령 등이 있어 웬만한 헬스장 못잖았다. 2층엔 학급 세 개와 교무실이 모여 있고, 1층엔 과학실·전산실·행정실이 있다. 각 층 사이 진열대엔 학생들이 만든 미술품과 수상한 상패 및 트로피가 빼곡하게 놓여 있다.

계단 옆 벽에 붙은 현수막엔 모든 전교생 한명 한명의 사진이 각자의 장래 희망과 함께 새겨져 있다. 요리사, 바리스타, 웹툰 작가, 상담사, 교사 등 다양하다. 산림청 국가공무원이라는 구체적 포부도 있고, 꿈이 너무 많아 아직 정하지 못했다는 학생도 있다. 3학년 1반엔 '석포제련소 직원'이라고 적은 학생이 눈에 띈다. 현수막 위엔 이렇게 쓰여 있다. "내일을 준비하는 석포면".

내일을 준비한다는 개념의 성립은 미래가 있음을 전제로 한다. 아이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방 도시는 낮은 출생률, 일자리 부족 등 이유로 미래를 잃고 있다. 이른바 '지역 소멸'이다. 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2월 기준 전국 228개 기초지자체(시·군·구) 가운데 118곳이 소멸위험지역으로 나타났다. 봉화군도 마찬가지다. 봉화군은 소멸위험지수 0.12로 이 가운데서도 '소멸 고위험지역'이다. 소멸위험지수는 20~39세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수치다. 0.5미만은 소멸 위험지역, 0.2미만이면 소멸 고위험지역으로 분류한다.

지역이 소멸하면 아이부터 사라진다. 석포면만은 사정이 낫다. 제련소 직원 가운데 네 자녀를 둔 직원이 두 명, 세 자녀를 둔 직원이 11명이다. 젊은 인구가 늘어 주민 평균연령도 50.2세로 봉화에서 가장 낮다.

인근 지역 학생 수가 급감하는 가운데 석포중은 2022년 12명에서 지난해 20명으로 입학생이 늘었다. 권영태 석포중 행정실장은 "봉화군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춘양면의 춘양중 전교생이 29명이다. 석포중 인근 소천면의 소천중은 전교생이 8명밖에 안 된다"며 "석포면은 석포제련소 덕에 학생 수도 늘어나고 미래를 생각할 수 있다. 요즘 시골 학교에선 보기 드문 현상"이라고 말했다.

석포중은 1974년 개교했다. 석포초를 졸업한 석포제련소 임직원 자녀들을 받기 위함이다. 권 실장은 "다른 곳은 학교가 사라지는데, 이곳은 아이들이 생겨 학교가 새로 생긴 셈"이라며 "공장이 없다면 젊은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여기서 애를 키우겠나"고 했다.

석포초는 석포중과 도보로 15분 거리다. 석포중으로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 석포2교를 건넌 뒤 나오는 면사무소와 농협, 교회를 지나면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골목 사이로 석포초가 보인다. 교문을 들어서면 입구는 좁지만 안은 넓은, 마치 호리병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본관 옆 건물은 석포초 병설유치원이다. 음악소리와 함께 아이들 웃는 소리가 들렸다. 방학 중에도 유치원생들은 등원해 돌봄을 받는 듯했다. 원생 수는 37명. 봉화군 전체 공립 유치원 가운데 가장 많다.

석포초 전교생은 107명이다. 전교생 100명이 넘는 곳은 봉화군 면 단위 초등학교 가운데 이곳이 유일하다. 이동혁 석포초 교장의 말이다.

"봉화군 지역 학교는 모두 소멸 위기입니다. 통폐합되거나 분교로 격하되고 있어요. 근처 명호초, 상운초, 소천초 임기분교만 봐도 지난해 신입생이 0명입니다. 석포초는 제련소 임직원 덕에 전교생 100~120명을 쭉 유지하고 있습니다. 90%가 임직원 자녀예요. 제련소가 사라지면 학교도 사라지고 노인만 남을 겁니다. 그러면 이 지역 자체가 사라지겠죠. 면적만 넓지, '죽은 땅'이 되는 겁니다."

경북 봉화군 석포면 마을 전경. 마을 중심부 넘어 석포제련소가 보인다. [지호영 기자]

생업 이상 의미 담긴 터전

정오가 넘어 점심 식사 시간이 되니 거리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나타났다. 파출소부터 석포초와 면사무소로 이어지는 나름의 작은 상권. 상인들 각자가 생업으로 지분을 나눠 가진 거리다. 행인들은 저마다 마음에 드는 식당을 찾아 들어가 메뉴를 주문한다. 90%가 석포제련소 직원이다. 언 몸을 녹일 겸 고깃집을 찾아 갈비탕 한 그릇을 주문했다. 오전에 작별 인사를 나눈 물류창고 관계자를 다시 만나 어색한 목례를 나눴다. 어차피 갈 곳이 뻔한, 작은 시골 마을이다 싶다.

부부가 테이블 안내와 음식 제조를 맡고, 고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 아르바이트생 한 명이 서빙을 한다. 손님이 제법 많다. 40석쯤인 식당이 꽉 찬다. 갈비탕 한 그릇이 나오는데 30분이 걸렸다. 가격은 1만 원. 시킬 땐 '싸진 않네'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고기가 실하고 양이 많았다. 메뉴판에 적힌 '소주 1병 4000원'이라는 글귀도 서울과 물가 차이를 느끼게 했다.

장종일(44) 씨는 이곳의 사장이다. 서울에 살던 시절 만난 한 살 어린 아내와 8년 전부터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강원 태백시에서 장사를 하다가 2021년 이곳에 왔다. 코로나19가 덮쳐 상황이 어려워진 탓이다. 지금은 사정이 괜찮아졌다고 했다. 하루 평균 매출은 100만~150만 원을 오가고, 손님 가운데 최소 80%가 석포제련소 직원이다.

석포제련소 인근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장종일 씨.[지호영 기자]
태백에서 한번 실패를 겪은 그에게 이 식당은 두 번째 도전이다. 힘들면 고향을 찾는다고 하던가. 그는 석포면에서 태어나 석포제련소에 다니는 아버지를 보고 자랐다. 형과 함께 석포초·석포중을 나왔다. 형은 아버지처럼 석포제련소 직원이 돼 사원아파트에서 지낸다. 장 씨는 자식이 둘 있다. 큰애는 올해 아홉 살로 석포초에, 작은애는 어린이집에 다닌다. 장 씨는 "어머니도 석포초를 나왔다"고 했다. 3대가 석포초 동문이다.

제련소의 소멸은 그에게 곧 삶의 소멸이자 터전의 소멸을 의미한다. 그는 지난해 12월 석포제련소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폐쇄를 촉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안 좋다"고 했다.

"제련소가 사라지면 먹고살 길이 아예 없어요. 다른 어딘가로 가서 다시 고깃집을 하지 않을까요. 그저 막막합니다."

경북 봉화면 석포면 석포2리 경로당에서 만난 노인들은 “제련소가 사라지면 먹고살 길이 없다”고 했다. [지호영 기자]
식당 문을 나서는 데 초등학생은 될까 싶은 어린아이가 "안녕하세요"라며 살갑게 인사를 건넨다. 사람을 착각했나 싶어 겸연쩍게 인사를 받았다. 이곳의 흔한 풍경이자 특이점이다. 주민 대부분이 석포제련소 임직원 인데다 석포초·석포중 동문도 많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인지라 부모가 자녀에게 "만나는 모든 어른에게 인사해라"고 가르친단다. 장 씨와 비슷한 환경인 사람이 퍽 많은 듯했다.

맞은편 거리에서 20년간 문방구를 운영해 온 최순자(59) 씨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다. 최 씨는 석포면에서 나고 석포초·석포중을 다니며 자란 토박이다. 석포제련소를 다니는 사람과 결혼해 쭉 살았다. 남편은 지금도 석포제련소에서 일한다. 자녀는 둘. 맏이가 35세, 둘째는 32세다. 이들도 최 씨와 같은 학교를 나왔다. 경북 영주시에 있는 고등학교를 나와 지금은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문방구에 손님이 많진 않아 큰 벌이는 되지 못한다. 정부가 학교에 학용품 지원을 늘리기 시작하면서 수요가 줄어서 그렇단다. 학생이나 관공서 직원 몇이 이따금씩 와 소소하게 물건을 사가는 정도다. 최 씨가 문방구를 계속하는 이유는 마을에 문방구가 이곳 하나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사라지면 아이들이 불편을 겪을 것 같다"는 게 그의 말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애착'이다. 이곳에 터를 잡아 아이들을 키우고, 장성시켜 대학을 보낼 수 있게 한 생업. 살아온 삶과 추억의 유의어에 가까울 법한 그런 일이라서다.

"여기서 장사해서 아이들 키우고 대학 보냈거든요. 애정이 크죠. 생업이 사라지면 결국 저도 떠나야 하겠죠. 외지인들은 그나마 살던 곳으로 가면 되겠지만 저 같은 토박이는 참…."

경북 봉화군 석포면 마을엔 문방구와 피아노학원이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 [지호영 기자]

"그 사람들은 책임 안 지잖아예"

석포초 정문에서 내려오는 비탈길엔 '무지개피아노 교습소'가 있다. 이곳 역시 마을에 하나밖에 안 남은 피아노학원이다. 1981년. 김경희(67) 원장이 이곳에서 학원을 시작한 때다. 집게를 들고 연탄을 교체하는 그의 모습이 건물의 나이를 짐작게 했다.

원내로 들어가니 초등학생 둘과 중학생 하나 총 세 명이 수업을 듣고 있었다. 총 원생 수는 12명이다. 1인당 월 수업료 10만~12만 원을 받는다. 큰 벌이는 아니다. 김 원장이 학원을 운영하는 이유도 김경희 씨와 다르지 않다. 이곳이 사라지면 아이들이 피아노를 배울 곳이 없기도 하고, 애착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환갑 넘은 아줌마·아저씨들도 다 제자"라며 "전국 각지에 내 제자가 퍼져 있다"며 활짝 웃어 보였다. "원생이 1명 남아도 학원을 운영할 것"이라고도 했다.

김 원장이 석포면 토박이는 아니다. 경북 의성군에서 태어나 강원 태백시에서 초·중·고를 나와 1975년 석포제련소에 취직해 이곳에 왔다. 회사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사내 커플로 있다가 1980년 1월 퇴직하고 같은 해 2월 결혼했다. 김 원장도 각각 1980년생, 1982년생인 자녀가 있다. 이들도 석포초·석포중을 나왔단다. 석포제련소의 영풍 직원으로 일하던 남편은 정년퇴직해 협력업체에서 일한다. 지난해 12월 사고로 사망한 60대 노동자 A씨가 일하던 그 협력업체다. 김 원장은 자신과 남편 모두 사망자와 아는 사이라고 했다. "우리 부부에게 형님, 형수님 하던 분이라 마음이 아팠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 마음과 삶은 별개의 영역이다. 김 원장은 이 사고로 지인·친척들로부터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하나같이 위험하다느니, 환경이 어떻다느니 걱정을 늘어놓았단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인지 김 원장은 담담했다. 오히려 이렇게 반문했다.

"밖에서 보는 처지에서야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쉽겠죠. 모르니까 더 위험해 보이고. 예전엔 더 심했어요. 제련소 앞 낙동강에 들어가면 죽는다는 말도 있었고. 그런데 물고기도 살고, 괜찮거든요. 위험이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봐요. 설령 문제가 좀 있다고 해도 제련소를 없애면 국가에서 책임지나요? 환경단체는 책임지나요? 왜 사람 밥줄을 끊으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생업의 상실은 젊은이보다 노인에게 더 가혹하게 다가온다. 석포면사무소 앞 석포2리 경로당에서 만난 노인 10명은 입을 모아 "일단 사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이들 대다수는 석포면 토박이로 영풍에서 20~30년 일하고 정년 퇴임했다. 자식들도 석포제련소에서 일한다. 엄원자(72), 김분화(72) 씨는 "우리 같은 노인들이 이제 와서 어딜 가겠나"라며 "그나마 제련소가 있어 입에 풀칠이라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김점숙(79) 씨도 말을 보탰다.

"사고가 나서 사람이 상하거나, 환경이 상한다는 말 들으면 속상하지예. 사람이라면 그 소식 듣고 기분 좋아할 사람은 없을 낍니더. 그런데 유감으로 생각하는 거랑 그게 내 삶이랑 연결되는 건 다른 문제 아입니꺼. 공장 없애라는 사람들은 책임을 안 지잖아예."

사라지지 못한 채 오늘도 문을 연다

자동차 창밖으로 보이는 경북 봉화군 석포면 대현리 ‘유령 아파트’가 스쳐 지나가고 있다. 이 아파트는 과거 연화광업소가 성업하던 시절 영풍산업 직원들의 사택으로 쓰였다. [이현준 기자]
발길을 돌려 서울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20분쯤 흘렀을까. 석포면 대현리에 접어드니 창밖으로 황량한 느낌의 3층 높이 아파트 6개 동이 눈에 띄었다. 인기척 하나 느낄 수 없어 을씨년스러웠다. 식당이나 슈퍼 등 상점이 몇 있긴 했지만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듯했다.

지역 관계자에 따르면 이곳은 '유령 아파트'라고 불린다. 과거 영풍산업(2004년 폐업)이 연화광업소를 운영하던 시절 직원과 가족들이 살던 사택이다. 연화광업소는 한때 국내 최대 아연·납 광산이었다. 1990년대 들어 채산성이 악화돼 1993년 휴광 후 1998년 폐광했다.

사택엔 200여 가구가 살았고, 대현리 마을은 총 800가구·4000여 명이 거주할 만큼 북적댔으나 폐광 이후 사택에 살던 사람들이 떠나며 지금의 모습이 됐다. 지역 학교인 대현초등학교도 1993년 석포초 대현분교로 격하됐다가 2011년 폐교됐다. 업을 잃은 사람이 먹고살 길을 찾아 지역을 떠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 석포제련소가 없어진다면 석포면의 미래도 이와 같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석포제련소를 둘러싼 갈등의 본질은 이해관계의 상충이다. 누구의 삶에 무게추를 더 실을 것인가, 무엇을 더 우선할 것인가. 이는 분배의 문제이기도 하다. 환경오염과 지역 소멸이 맞물려 실타래처럼 얽힌 일이다. 폐광으로 존립 자체를 위협받게 된 강원 태백·삼척·영월 등이 그러하고, '탄소중립'이라는 칼날 앞에 위협받는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도 그렇다. 2022년 4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발전노조의 발표에 따르면 2034년까지 석탄발전소 30기가 폐쇄되고 7935명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이로 인해 석탄화력발전소 59기 가운데 절반이 몰려 있는 충남이 겪게 될 생산유발감소금액은 19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출생률보다 지역경제에 인구 변동 영향을 더 받는 우리나라 특성상(2022년 10월 산업분석, 산업연구원)기업이 사라지면 지역도 쇠한다. 사회 변화로 인한 흥망성쇠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해도, 이 순리의 수레바퀴 아래 짓눌리는 자에겐 가혹할 따름이다.

석포면의 주민들은 "석포제련소가 문제가 없다기보다는 먹고사는 일이 더 중요하다"며 "문제가 있다고 없애면 그만이라는 것은 단순한 생각"이라고 말한다. 없애라는 자, 지키려는 자 어느 쪽도 양보하지 않고 지속되는 싸움이다. 두 가치의 무게에 대한 저울질을 숙제로 남긴 채 석포제련소는 오늘도 문을 연다. 사라져야 해서도, 사라져선 안 돼서도 아니라 사라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봉화=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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