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별·이]박혜강 작가 "문학은 음지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

박준수 2024. 1. 2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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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 문학 35년 박혜강 소설가
1989년 '검은 화산' 발표 등단..'검은 노을'로 제1회 실천문학상 수상
천불천탑의 비밀 '운주', 5·18 다룬 '꽃잎처럼', '도선비기' 등 30권 집필
"앞으로 5년은 더 소설을 쓸 생각, 마지막 불꽃 태우고 싶어"

'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작업실 서재에서 자신의 소설 세계를 설명하는 박혜강 작가. 사진 : 필자

전업 작가로서 35년째 소설을 길어 올리고 있는 69살 박혜강 작가를 만나러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으로 향했습니다.

겨울 햇살에 안개가 걷힌 본량 들녘은 시야를 저편 어등산 발밑까지 닿게 했고, 몇 차례 눈 세례를 맞았을 논들은 속살을 드러낸 채 곧 다가올 새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중간쯤에 다다랐을 때, 네비게이션이 목적지인 박 작가의 작업실에 도착했다고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자연부락을 이루고 있는 이곳은 '북성(北星)마을'로 불립니다.

하루 3개 노선의 시내버스가 드문 드문 오가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북성마을.

박 작가는 "이런 누추한 곳까지 찾아왔냐"며 반기며 집으로 안내했습니다.

10년 전, 광주시 남구 짚봉터널 부근 단독주택에 살다가 도시의 번잡함을 벗어나고자 이 곳에 둥지를 틀었다는 박 작가.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136평 대지에는 기와집을 개조한 안채와 박 작가가 주로 머무는 작업실이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7평 가량의 작업실은 창가 쪽을 제외하곤 온통 책으로 가득했습니다.

책들은 문학류가 대부분으로 각종 문예지를 비롯 소설과 수필, 철학 서적과 역사서 등이 빼곡히 칸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서가에 꽂힌 책 가운데는 박 작가가 쓴 책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박혜강 작가가 펴낸 30권의 작품집 가운데 서재에 꽂힌 책들. 사진 : 필자

박 작가는 "이곳으로 이사오면서 1톤 트럭 한 대 분량, 2천여 권의 책을 헌책방에 넘겨야 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세상에 내놓은 책은 소설과 수필, 동화 등 30여 권.

1989년 무크지 '문학예술운동' 제2집에 탄광 화재 사고를 소재로 한 중편소설 '검은 화산'을 발표하면서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은 박 작가.

박 작가는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1991년 영광원전(현재 한빛원전) 문제를 다룬 소설 '검은 노을'로 제1회 실천문학상을 수상하며 중앙 문단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 "원전 문제 1년 동안 취재..민중적 시각에서 형상화"

당시 영광 원자력 발전소가 지역 사회와 생태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커다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으며 '반핵(反核)운동'으로 까지 이어졌습니다.

"소설을 쓰기 위해 카메라와 녹음기를 들쳐 메고 1년 동안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홍농 일대를 누비고 다녔어요. 직접 제 눈과 귀로 실상을 확인해야 정확한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국가 시책에 역행하는 작품을 쓴다는 이유로 당국의 감시 대상이 되기도 했어요."

'검은 노을'은 우리나라 최초로 핵 문제를 본격적으로 파고든 장편소설로, "핵의 문제를 민중적 시각에서 탁월하게 형상화 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제1회 실천문학상 수상은 그가 소설가로 발돋움하는데 커다란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습니다.

현실의 부조리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기 시작한 그는 이어 광업소 노동조합 이야기를 소재로 한 '다시 불러보는 그대 이름'을 발표했습니다.

일련의 소설을 통해 사회적 이슈를 대중에게 끌어들인 그는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이미지를 평론가와 독자에게 각인시켰습니다.

이 무렵, 그는 광주매일신문사로부터 소설 연재를 제안받고 '운주별곡'이란 작품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이 작품은 화순 운주사를 배경으로 고려시대 '묘청의 난'을 접목해 천불천탑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대하 역사소설입니다.

당시에는 신문 연재소설이 꽤 인기가 있어 유명작가여야만 낙점받을 수 있었는데, '운이 좋았다'며 박 작가는 겸손함을 보였습니다.

박 작가는 운주사 작품을 쓰기 위해 절과 가까운 화순 사평에 작업실을 마련, 고독한 집필작업에 매진했습니다.

그 후 7년 만에 운주사 이야기가 '운주'라는 제목으로 5권짜리 대하소설로 묶여 출간됐습니다.

▲천불천탑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대하 역사소설 '운주'의 배경이 된 운주사 와불. 사진 : 필자

◇ 민중미술 운동가 홍성담으로부터 영향 받아

어느덧 중견 작가의 반열에 오른 그는 이후 '도선비기 1, 2권', '조선의 선비들 1, 2권', '매천 황편 1, 2권' 등 역사 속 인물을 조명하는 작품을 잇따라 발표했습니다.

아울러 늘 마음 한 구석에 부채 의식으로 맴돌던 5·18 문제를 소설화하는 등 리얼리즘 작가로서의 면모를 다시 한번 확고히 했습니다.

10년 간의 자료 수집과 시위 현장 취재 등 탄탄한 준비를 통해 5·18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소설 '꽃잎처럼'은 무등일보에 3년간 연재된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연재 후 5권으로 묶어 출간돼 광주항쟁의 진실을 알리고, 오월문학의 지평을 넓히는데 밑거름이 됐습니다.

그가 문단 데뷔 후 오로지 '리얼리즘 문학'을 고집해온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친구이자 민중미술 운동을 펼치는 홍성담 화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젊은 시절 조선대 앞 책방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며 참여문학에서 답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어요. 문학은 음지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다짐한 거예요."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노년기(老年期)에 접어들면서 그의 문학에도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특히 어머니가 작고하시고 누나 두 분이 잇따라 세상을 뜨면서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본질적 문제에 직면한 것입니다.

"한동안 글감이 손에 잡히지 않아 공허함과 무력감에 빠져들었어요. 그래서 무작정 무등산을 오르내렸죠. 마치 내가 암 환자인 것처럼 깊은 산 속에 몸을 맡기니 숲에서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숲의 정령이 나타나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거예요."

박 작가는 무등산 숲 속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죽음에 직면한 암 환자가 생명의 의지를 돋우며 건강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모티프로 해서 '제5의 숲'이란 소설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이 소설을 두고 스스로 "문학스럽다"고 평했습니다.

참여문학에서 순수문학으로 옮겨가는 징검다리와 같은 작품이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이 밖에도 그는 2천년 후 미래 이야기를 담은 환경 동화 '자전거 여행'이 대산창작기금을 받는 등 동화 2권을 발표해 소설 외 분야에서도 소질을 발휘했습니다.

▲벌교여고 인문학 특강에서 '오월이야기'를 들려주는 박혜강 작가. 사진 : 박혜강 작가

◇ "등짝에 쌍도끼를 메고 문학공부에 매진해야"

화제는 자연스레 지역문단 이야기로 옮겨갔습니다.

그는 자꾸만 퇴행해가는 듯한 우리 지역 문학 토양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습니다.

"과거에는 중앙지 신춘문예 당선자가 이 지역 출신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구, 부산 등 영남 지역에 밀려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한때 광주·전남이 문학이 센 고장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옛 말이 된 것 같습니다"라며 쓴 웃음을 지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지역 문학이 황폐화되고 있는 것은 기존 작가들과 문학지망생들이 치열하게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박 작가는 진단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누구보다도 소설 공부에 열심이었다고 자부합니다.

일찍이 큰 무대에서 실력을 쌓아서 작가로 성공하고 싶은 야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제1회 실천문학상을 수상한 직후 당시 작가회의 소설분과장이던 현기영 선생이 지도하는 연찬회에 참석하기 위해 매달 서울까지 올라가 소설 공부에 매진했다고 전했습니다.

▲작업실에서 컴퓨터로 작품을 집필하는 박혜강 작가. 사진 : 필자

지금도 '좋은 글을 쓰면 인정받는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는 박 작가.

그는 강의 때마다 후진들에게 "등짝에 쌍도끼를 메고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독기를 품지 않으면 작가로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기 때문입니다.

어느덧 고희를 바라보는 그이지만 요즘에도 하루 대부분을 소설을 집필하는 데 보낸다고 합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 5년은 더 글을 쓰겠다는 박 작가.

"여기가 묏자리라고 생각하고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싶어요. 거의 한 평생을 전업작가로 살아왔으니 소설에서 끝장승부를 봐야죠. 지방에서도 전업작가로 성공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고 싶습니다"라며 굳은 결기를 드러냈습니다.

그는 현재 청소년을 주제로 한 소설을 쓰는 중인데 원고가 거의 완성단계라고 전했습니다.

앞으로 그가 어떤 작품으로 소설 인생을 갈무리할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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