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만3세까지 재택근무 의무화' 추진하는 일본…이게 가능해?
육아 시간 확보 및 일·가정 양립 통한 출산율 상승 기대
중소기업과 제조업·서비스업 등 직종 따라 적용 어렵기도
[서울=뉴시스]김혜경 기자 = 서울에 거주하는 워킹맘 A(40)씨는 오늘도 몸이 갈려나가는 느낌이다. 하루종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워킹맘'의 일상은 오늘도 반복된다.
2020년 아이를 출산한 A씨는 코로나19 여파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육아에 도움을 받았다. 오전 8시30분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업무를 본 후 오후 5~6시께 아이를 하원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잠잠해지고 2022년 여름 재택근무가 끝나면서 시간에 쫓기는 워킹맘의 일상이 시작됐다.
A씨는 새벽 6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그리고 4살 된 아이를 억지로 깨워 세수를 시키고 옷을 입힌다. 빵이나 바나나, 쥬스 등으로 아침을 대강 먹이고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선다. 아이를 인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는 시간은 오전 7시30분께.
서둘러 마을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출근길에 오른다. 회사에 도착하면 오전 8시30분 정도다. 한 숨 돌리고 업무를 시작한다. 오후 6시에 퇴근 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업무를 본다. 목표대로 '칼퇴근'을 하고 어린이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후 7시 정도다. 친구들은 다 하원하고 혼자 놀고 있는 아이를 보면 눈물이 핑 돌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도착하면 오후 7시30분 전후다. A씨의 육아 출근은 또 시작된다. 아이 저녁을 먹이고 잠시 놀아준다. 목욕을 시키고 뒷정리를 하다 보면 어느새 밤 10시가 넘는다. 몸은 이미 천근만근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생활을 해야 하나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등하원은 대부분 A씨의 몫이다. 남편은 회사가 더 멀어 새벽같이 출근하고, 회식이나 야근 등도 잦아 퇴근시간도 들쭉날쭉이다. 한 달 100만원 정도 드는 등하원 도우미는 도저히 쓸 여유가 없다. 그렇다고 조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A씨는 "재택근무만 할 수 있다면 아이를 키우는 데 숨통이 트일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A씨의 이 같은 바람은 일본에서 추진되고 있다.
◇일본 정부, '자녀 만 3세까지 재택근무 의무화' 추진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만 3세 이하 자녀를 둔 직원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모든 기업에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재택근무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면서 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 하는 것이 전제로 한다.
또 만 3세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 자녀를 키우는 경우 일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업이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의무화한다. 재택근무 외에 유연근무제나 단시간근무제도 등 2가지 이상의 방안을 마련, 직원이 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이에 더해 야근 등 '잔업 면제권'도 지금은 만 3세 이하 자녀를 둔 직장인에게만 적용되지만, 취학 전 자녀가 있는 직원까지 확대한다.
육아휴직과 단시간근무제도, 그리고 지난해부터 실시한 8주 간의 남성 육아휴직제도 등 만으로는 육아 시간 확보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재택근무 및 유연근무제 확대를 추진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런 내용을 중심으로 이번 달 개회하는 통상국회(정기국회)에서 육아·개호 휴업법을 개정한다. 이르면 올해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일·가정 양립 통한 저출산 극복 기대감
일본의 이번 저출산 정책은 자국 내에서도 평가가 좋다. 재택근무는 출퇴근 시간을 단축하기 때문에 풀타임으로 근무하면서도 일과 가정의 양립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 마토바 야스코 수석연구원은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재택근무를 실현할 수 있다면 남녀 모두에게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저출산 극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재택근무를 비롯해 단시간근무제 등 다양한 근로방식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며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환경 조성은 결국 기업과 국가의 인재 확보로도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과연 실현 가능한 제도인지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재택근무는 어디까지나 기업의 '노력 의무'로, 이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패널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와 관련해 마토바 연구원은 "'노력 의무'는 기업에 대한 강제력은 약하지만, 의무화 될 때까지 기업이 재택근무를 실시할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정부가 기업의 재택근무 도입을 위해 기업에 다양한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에 서서히 재택근무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일본에서는 코로나19 여파로 재택근무를 하는 기업이 크게 늘었다. 재택근무를 도입한 기업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도에는 4.2%에 불과했으나 2022년에는 11.5%로 증가했다.
일본 국민들도 이번 정책이 현실에서 실현만 된다면 일과 가정의 양립에 큰 도움이 될 것이란 반응이다.
일본 사가현에 거주하는 30대 워킹맘 B씨는 "재택근무는 통근 시간이 없어지는 만큼 육아를 하는 직장인에게는 조금이라도 아이와 더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점심시간을 활용해 집안일도 할 수 있어서 편리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재택근무를 하면 단시간근무제 등을 쓸 필요 없이 풀타임 근무를 할 수 있어 월급도 줄지 않는다"며 "여성 뿐 아니라 남성도 재택근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여성에게 치우치기 쉬운 가사와 육아 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다만 재택근무가 실현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다. 일본 언론에서는 중소기업 등은 기업 규모가 작을 경우 재택근무가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또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건축 현장 및 돌봄·보육 관련 직종 등 대면 업무를 피할 수 없는 업종에서는 재택근무가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합계출산율 한국보다 높지만, 인구감소 위기감 커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2022년 기준 1.26명으로 우리나라 0.78명보다 높다. 우리나라는 2018년 합계출산율이 1.0명 이하인 0.98명으로 떨어진 이후 줄곧 내리막길이다. OECD회원국 중 꼴찌다.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 인구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자 수는 처음으로 24만명이 붕괴된 23만5039명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더 떨어져 0.68명을 찍을 것이란 전망이다.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우리나라보다는 높지만 OECD 국가 평균인 1.58명보다 낮다. 현재 인구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합계출산율 2.1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일본의 인구 감소 위기감은 상당히 크다.
한국에 주재하는 한 일본인 기자는 "일본의 저출산에 대한 위기감은 상당하다"며 "위기감은 기시다 총리가 내세운 '차원이 다른 저출산 대책'이라는 표현에서도 나타난다"고 말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해 초 인구감소 위기감 속에 '차원이 다른 저출산 대책'을 시행하겠다며, 연간 3조5000억엔(약 32조원)의 대규모 자금을 쏟아 붓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인 기자는 이어 "기업은 재택근무보다 직원들이 풀타임으로 출근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국가가 나서서 재택근무를 촉구하는 대책을 내놓은 것은 방향성 면에서 평가할 만 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재택근무 의무화 같은 파격 정책 나올까
국내에서도 일본의 이번 대책이 화제가 되면서 우리 정부도 육아기 가정에 재택근무를 도입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저출산 문제를 전담하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관계자는 일본과 같이 재택근무를 도입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일과 가정 양립을 위한 정책을 마련 중"이라고만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신년사에서 "유연근무, 재택근무, 하이브리드 근무 등 다양한 근무 형태를 노사 간 합의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일본의 이번 저출산 정책에 대해 SNS 등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우리도 재택근무하게 해주면 출산율이 올라갈 것 같다", "돈 몇 푼 쥐어주는 현금성 정책보다는 이런 정책이 필요하다", "진짜 파격적 정책이다. 우리도 일본 좋은 점은 배우자. 돈만 퍼 준다고 아이 낳는 것 아니다"라는 등의 반응이 다수를 차지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chkim@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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